"신 의원께 반성문 쓰고, 무릎까지 꿇었는데"
 군의문사 유가족, 10개월째 국회 '출입금지'

국회 사무처 "신지호 의원실에서 해지 요청 않는 한 먼저 나설 수 없다"

등록 2009.09.14 08:48수정 2009.09.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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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14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군경 의문사 가족들이 2008년 11월 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414호실 신지호 의원실을 기습 방문했다. 유가족들이 의원집무실 입구에서 오열하며 면담을 요청하자, 모니터를 보고 있던 신지호 의원은 "나가세요. 나가세요"라며 거절했다. (오마이TV 화면)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14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군경 의문사 가족들이 2008년 11월 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414호실 신지호 의원실을 기습 방문했다. 유가족들이 의원집무실 입구에서 오열하며 면담을 요청하자, 모니터를 보고 있던 신지호 의원은 "나가세요. 나가세요"라며 거절했다. (오마이TV 화면)박정호

"우리 아이들 죽음의 진실만 알 수 있다면 정말 똥물이라도 먹겠습니다. 군대 간 아들이 죽어서 돌아왔는데, 어미가 뭔들 못하겠습니까. 신지호 의원이 벌써 10개월째 군경협 회원들의 국회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잠이 안 옵니다."

찬비가 아스팔트를 적시던 지난 7일, 김정숙(65) 군경의문사 진상규명 유가족협의회(군경협) 회장은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 앉아 울먹였다. 벌써 10개월째 거의 날마다 국회를 찾아오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의원회관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지방이 닳도록 국회를 드나들며 '군의문사 장병'들을 위한 입법로비를 벌인 덕에 의원회관을 지키는 경위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인사가 됐지만, 신지호 의원이 쳐놓은 출입금지의 벽은 넘을 수 없었다.

군경협 유가족들은 지난해 11월 18일 민주당 안규백 의원실에서 마련한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왜 연장이 필요한가'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토론을 마친 회원 20여 명은 당시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폐지 법안을 발의한 신지호 의원실을 기습 방문했다. 군대 간 아들이 의문사 당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 활동을 중단하자는 신 의원의 주장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날 군의문사 유가족들은 신 의원과 미리 약속하고 찾아온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표 격으로 5~6명 정도만 남고 나머지는 의원회관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철수했다. 이들로선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일단 대표단의 면담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던 것.

그러나, 신 의원은 약속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을 무단 방문한 것은 업무방해라며 책상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처음에는 당부하다, 애원하다, 끝내 화가 복받쳐 신발을 집어던지며 항의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 "업무방해 고발하기 전에 의원실 나가요!")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2008년 11월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열하다 경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옮겨지고 있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2008년 11월 18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실을 찾아 항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열하다 경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의무실로 옮겨지고 있다. 남소연

유가족 "우린 반성문까지 썼습니다"


신 의원은 당시 이 사건을 빌미로 군경협 회원들의 국회 출입을 봉쇄했다. 신 의원은 지난해 11월 28일 "군 의문사 유가족들이 의원실에 찾아와 행패를 부려 입법 활동에 지장을 받았다"며 유가족들의 출입을 막아달라는 공문을 국회 사무처에 보냈다.

군경협 유가족들은 신 의원의 이 같은 조치에 반발했다. 당시 신 의원 사무실에 방문하지 않은 회원들까지도 군경협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국회 출입을 금지한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경협 유가족들은 신지호 의원실에 출입금지 해지요청을 지속적으로 했다. 공문도 수차례 보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신지호 의원실 관계자들이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기 때문에, 군경협 측은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공개사과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신지호 의원실 보좌관이 사과로는 부족하다고 해서 의원실 앞으로 보내는 반성문까지 쓰게 됐다"며 "반성문까지 썼지만 신 의원실에서는 출입금지 해지조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회장은 "굴욕적이지만 의문사 당한 아이들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신지호 의원이 국회 출입금지 해지만 해준다면 못할 게 없었다"고 말했다.

군 의문사 장병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입법 활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국회 출입금지 조처가 내려졌기 때문에 군경협으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군경협은 지난 6월 24일 등기 속달로 신 의원에게 반성문을 보냈다. 이들은 "군의문사 연장법안 심의 중 유가족들이 집무실에서 고성 및 행패를 부려 노여움과 명예실추를 하게 돼 정말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의원님의 의정활동에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사죄했다.

이어 "출입금지를 풀어주기를 100번 사죄하고 애원한다"며 "존경하는 의원님께 진심으로 사과와 용서를 빌며 국회 출입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간청했다.

이와 관련, 이정구 군경협 명예회장은 "신 의원실에서 요청하는 것은 다 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며 "심지어 유족 가운데 한 분이 신지호 의원 보좌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가 이렇게 하면 출입금지를 해지하겠냐고 통곡했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가슴을 쳤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2008년 11월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를 연 뒤 군의문사위 폐지 및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에 반대하며 국회를 향해 행진하려하자 경찰에 막혀 항의하고 있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2008년 11월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를 연 뒤 군의문사위 폐지 및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에 반대하며 국회를 향해 행진하려하자 경찰에 막혀 항의하고 있다.남소연

주거침입죄, 모욕죄, 공무집행방해죄

군경협 측은 신지호 의원에게 지속적으로 사과와 해지요청을 담은 공문을 보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자, 국회 사무처를 대상으로 해지 요청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국회 사무처는 지난 2월 2일자 공문을 통해 "지난해 11월 18일과 25일 국회 출입과 의원면담의 정상적이고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국회의원의 집무실에 무단 침입해 고성과 욕설행위를 한 것은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죄 ▲형법 제311조 모욕죄 ▲형법 제136조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를 한 것"이라며 "국회청사관리규정 제5조 금지행위, 제3조 청사출입의 통제 등에 의거해 출입통제를 한 바 현재로서는 해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조성주 군경협 사무국장은 "우리는 그 뒤로도 수차례 국회 사무처 앞으로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며 "왜 회신이 없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해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회 사무처는 군경협 유가족들의 이 같은 요청에 매우 난감하다는 태도를 밝혔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특별히 출입금지를 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에서 국회 사무처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의원이 먼저 해지요청을 하지 않는 한 사무처가 먼저 나설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10개월째 출입금지가 이뤄진 것은 흔한 예는 아니다"면서 "피해를 본 쪽, 신지호 의원이 출입금지를 해지해도 좋다는 입장을 피력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금지할지 그 기간을 특정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소란행위에 따른 출입금지의 경우 기간을 특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보완이 필요한 사항인 것 같다"며 "이번 경우에도 신 의원이 해지하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언제 해지할 수 있는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제성 변호사는 "신 의원실에 방문하지 않은 유가족들까지 출입금지 조처를 내린 것은 국회의 재량권 남용"이라며 "범법행위를 한 경우에는 경호권을 발동하고 수사에 나설 수 있지만 무턱대고 군경협 회원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법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신지호 의원에게 이와 관련된 사항을 묻기 위해 몇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왜곡언론과는 대화할 게 없다", "회의 중"이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거나 받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는 신 의원의 견해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통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아래는 군경협이 신지호 의원에게 보낸 사과문이다.

존경하는 신지호 의원님께

아래의 사과문을 쓰게 된 것에 대해 무슨 말로 사과문을 올려야 존경하는 의원님의 노여움과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 오직 송구할 뿐입니다.

허나 이 사과문을 통해서 의원님의 노여움과 명예실추가 조금이나마 감해질 수 있다면 다시는 이러한 불상사가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반성과 의원님의 의정활동에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군의문사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발족되어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난 군의문사 연장 법안 심의 중 유가족들이 신 의원님 집무실에서 고성 및 행패를 부려 신 의원님의 노여움과 명예실추를 하게 되어 정말 머리 숙여 죄송할 뿐입니다.

앞으로 절대로 다시는 저번 같은 불상사가 발생되지 않을 것을 두 손 모아 약속드립니다.

젊고 유능하신 신 의원님, 유가족들을 살펴보면 하나뿐인 자식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복무중 자식을 잃어 가정이 파탄되고 부모들이 울분을 참지 못해 병들어 죽어가는 사례가 많습니다. 유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신 의원님의 넓은 마음으로 배려해 주셔서 이번 국회에서 이 법이 제정되어 만신창이가 된 유가족의 울분을 간절히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18대 국회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님 대표발의로 의안번호 3340번이 2008년 12월 30일 12인 국회의원님들의 배려로 발의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정무위에서 토의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조윤선 의원님의 대표 발의법안이 통과되도록 유가족들이 국회의원님들을 찾아 뵙고 애원하고 간청할 시기에 국회를 못 들어가게 국회 사무처에 출입금지시키신 신 의원님의 노여움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출입금지를 풀어주시기를 100번 사죄하며 애원할 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지호 의원님, 유가족으로서 진심으로 사과와 용서를 빌면서 국회 출입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군경의문사 진상규명 유가족협의회
회장 김해수, 김정숙 올림
#신지호 #군의문사 #군경협 #국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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