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용기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진윤석

등록 2009.10.05 11:01수정 2009.10.0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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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진윤석씨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남아공의 진윤석입니다.

인사드린다는 게 이제서야 안부 드립니다.

 

내일부터 한국은 추석이네요. 저희는 이번 주말에 한인 몇가족분들과 같이 바비큐로 추석연휴를 보내려고 합니다.

 

얼마 전 출장을 겸한 여행을 나미비아로 다녀왔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함께 보냅니다.

 

짧은 추석연휴지만 가족 분들과 즐거운 시간되시길 이억 만 리에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열정과 근면으로 똘똘 뭉친

대한 남아 진윤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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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올 2월에 오래 전에 진출하여 남아공에 자리 잡고 아프리카를 온 몸으로 살고 있는 진윤석씨를 케이프타운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이미 남부아프리카의 3개국 5500km를 여행한 뒤, 또 다시 이보다 더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중간쯤에서입니다.

 

a . 저는 이미 22일간을 이 트럭으로 여행하고 여행의 마지막날 이 여행동지들과 작별하고 진윤석씨를 만나기위해 이 트럭에서 내렸습니다.

. 저는 이미 22일간을 이 트럭으로 여행하고 여행의 마지막날 이 여행동지들과 작별하고 진윤석씨를 만나기위해 이 트럭에서 내렸습니다. ⓒ 이안수

▲ . 저는 이미 22일간을 이 트럭으로 여행하고 여행의 마지막날 이 여행동지들과 작별하고 진윤석씨를 만나기위해 이 트럭에서 내렸습니다. ⓒ 이안수

 

진윤석씨는 제대를 하고 한국에서 직장을 얻기 위해 이력서를 들고 기업의 문전을 전전하는 대신 한국을 박찼습니다.

 

혈혈단신이었고 배낭에 자신의 모든 것인 1천만 원을 담았습니다. 그가 택한 곳은 아프리카였습니다. 한국으로부터 멀고, 미지의 세계였으며 그러므로 자신의 역할이 비어 있을 가능성의 대륙으로 보았습니다. 몇 개월간 아프리카의 관문인 요하네스버그에서 언어를 연마하면서 이 검은 대륙에서 희망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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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영국식민지였던 탓에 정통영국영어를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연수할 수 있는 곳이 남아공입니다. 이 언어연수시장을 유럽인들이 석권하고 있지요. 진윤석씨는 이 언어연수시장은 진입에 적지 않은 희생이 따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행 분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동남아 일색의 상품에 한국 사람들이 싫증을 낼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아프리카는 호기심 많은 한국 사람들이 관심 가질 수만 개의 매력을 가진 곳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관광의 메카, 케이프타운으로 갔습니다. 지중해권인 이집트를 비롯한 북부아프리카는 이미 많이 노출되어 사람들의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그는 우선 남아공으로 오는 한국 사람들을 맞을 집을 렌트했습니다. 숙박시설을 제공하면서 기반을 만들길 원했던 것이지요. 게스트하우스를 위한 집을 렌트하면서 그는 부동산 에이전트를 찾는 대신 우선 케이프타운을 돌면서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 주인을 찾아가 자신의 목적을 말하고 집을 비워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집주인은 낯선 젊은이의 제안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며칠 뒤 그 백인 부부의 대답은 'Yes!'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도 인도양이 내려다보이는 이 흰 집이 좋아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생각을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다오. 하지만 당신의 제안을 계기로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픈 마음이 생겼소. 그동안 오랫동안 살아왔으므로 우리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이 알려준 것이요."

 

진윤석씨로서는 무모하다고 여겼던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그 집을 채울 필수 가구가 문제였습니다. 그 집에 어울릴만한 고급 가구를 사들인 다면 한국에서 가지고온 몇 푼의 돈조차 금방 바닥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품 같은 고급중고가구들이 경매로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이 경매에 참여함으로서 2가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가구를 피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첫 번째 시도의 성공으로 용기를 얻은 그는 집을 다섯 채로 늘였습니다. 김지혜씨도 합류했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오랜 연인이었던 지혜씨에게 윤석씨가 한국을 떠나오면서, 아프리카에서 자리 잡는 즉시 부르겠다는 약속이 있었기도 했지만 지혜씨도 진석씨가 한국을 떠난 이후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집의 개수와 비례한 수입을 기대했지만 총수입은 렌트비와 관리비를 좇아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애초의 종자돈 1천만원 중에서 3백만원이 남았을 때 결국 이 일을 접었습니다.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그동안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여행사를 설립하는 일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지혜씨가 한국의 한 국제회의를 유치하여 성공시킴으로서 1천만원의 새로운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혜씨는 계속해서 컨벤션업무를 진행하고 윤석씨는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남아공의 가장 큰 야생동물 보호지역인 크루거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으로 갔습니다. 6개월 동안 그곳에 근무하며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야생동물을 안내하는 레인저ranger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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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그가 다시 남아공북동부의 크루거국립공원의 음푸말랑가에서 케이프타운으로 되돌아 왔을 때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여동생이 영어를 배우겠다며 케이프타운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동생에게 좁은 집을 나누어 쓰면서 숙식을 제공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값비싼 어학연수비용을 감당할 처지의 오빠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유럽인이 운영하는 어학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원장과 담판을 했지요.

 

"내 여동생에게 학비를 면제해 달라. 대신 내가 당신의 비즈니스를 돕겠다."

 

이 제의가 받아들여졌고 여동생은 기간에 관계 없이 무료로 한 달에 수십 만원하는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동생은 2년째 그 어학원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며 남아공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케이프타운에 머물 당시 그 어학원에서 사귄 남미친구들 따라가 1개월째 아마존 일대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를 위해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이 집결하는 케이프타운의 중심거리 롱스트리트의 안전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주었으며, 해외의 유명스타들이 출입하는 대서양 파도가 발끝에 닿는 호텔에서 맛난 맥주를 사주었고, 제가 케이프타운에 머물 5일 동안 어떻게 여행할지에 대해 조언해주었습니다, 외부인은 위험해서 도저히 홀로 들어갈 수 없는 남아공의 타운쉽을 안내하고, 케이프타운의 아름다운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그널 힐Signal hill'을 안내했으며, 희망봉을 안내해주었고, 남아공의 유명 와이너를 안내해주었습니다. 유명 스시집으로 안내해 배가 부를 만큼 회를 사주었으며, 한국식당으로 안내해 칼칼한 한국음식과 소주를 맛볼 수 있게 해주었고, 다시 한 달 동안 나미비아와 보츠와나 그리고 짐바브웨를 여행할 나의 노정에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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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그가 향후 어떤 분야에 더 매진해야 하며 어떤 새로운 분야가 그의 비즈니스에 추가되어야 할지에 대해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의 열정과 삶에 임하는 진정성에 반한 저는 귀국 후에도 마음을 나누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메일과 쪽지로 그가 비즈니스에 부딪히는 고민을 터놓으면 저는 그것에 대한 해법을 함께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15년 뒤의 그의 꿈을 함께 설계하고 그것을 위해 지금부터 아프리카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말했습니다.

 

그는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용기'임을 믿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갈 수 있었고 배수진背水陣의 마음으로 아프리카를 정면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자신의 비즈니스 발판으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몸 바쳐 공헌해야할 애정의 땅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식민지배계급인 백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아파르헤이트Apartheid(인종격리정책) 탓에 도시외곽으로 쫓겨나 여전히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township타운쉽인 컬리쳐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어린이를 지원하고 자원봉사자를 연결해주고 있으며 반목이 있는 교민들을 다시 화합할 수 있도록 다리 놓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진윤석 부부의 역할이 아프리카를 무력으로 점령했던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과 착취의 상처를 아물게 하면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국경이 무의미한 이 시대에 사랑을 나누어주어서 한국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국토를 세계로 넓히는 일이지 않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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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남아공의 케이프주의 남서쪽 끝단의 암석 곶, 희망봉Cape of Good Hope.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인 아굴라스곶에서 불과 160km에 불과한 이곳은 1488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의 눈에 띄었고 그는 이곳을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고 명명했지만 포르투갈 왕 주앙 2세가 카부 다 보아 에스페란사(Cape of Good Hope 희망의 곶)로 개칭하였습니다. 디아스는 이곳에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폭풍에 의한 '절망'을 생각했고, 주앙 2세는 그 바위 곶 너머에 있는 인도에 의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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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진윤석씨는 아프리카를 검은 절망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신 기회가 넘치는 희망의 땅으로 여기고 있지요.

 

그는 분명 오늘도 그 희망만을 생각하며 여행객들과 함께 희망봉의 칼날 같은 바람의 언덕을 오르며 희망을 전파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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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아프리카 최남단의 케이프타운에서 한국의 최대명절 한가위를 그리워할 그에게 헤이리의 보름달을 찍어 보냈습니다. 잠시나마 향수가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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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과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2009.10.05 11:0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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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진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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