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북은 김대중의 집권을 원치 않았다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30회) 야합형

등록 2009.10.11 12:10수정 2009.10.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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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이 나가자 조수경은 혼자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녀는 남북 관계라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복합적이며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퇴근 준비를 했다.

다음 날 저녁 조수경은 김인철을 청사 뒷골목에 있는 일식집으로 데려갔다. 아무래도 긴 시간 동안 조용히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인철은 북풍에 관해 성실히 조사해 온 것 같았다. 그는 요점이 정리된 A4 용지 묶음을 조수경에게 내밀었다.

"먼저 선배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김 경위가 얘기하기로 했잖아?"
"제 여자 친구 말입니다. 진지하게 조언을 구하고자 합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보는 법이라고들 하더군요."

조수경은 김인철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나름대로 고민이 깊은 얼굴이었다.

"그 동안 저는 의도적으로 간간이 제 여자 친구에 대한 정보를 선배님께 흘린 겁니다."
"그런 것도 정보라고 하나?"
"같은 여자로서 선배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좋아하고 사랑하나?"
"처음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조수경이 듣기에 김인철의 여자 친구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김인철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세속적인 기질은 훨씬 더한 것 같았다.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김인철에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알겠어? 다만 나는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우선 가치관이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해."

김인철의 얼굴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관의 수준차가 심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대가 자기보다 마음도 착한 것 같지 않은 데다 치졸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사랑이나 좋은 감정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고 봐."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김인철은 뭔가 결심을 굳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은 편안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니까 선배님은 여태껏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찾고 계신 거군요?"
"먼저 사랑의 직관을 느껴야 하겠지?"
"필이라는 거?"
"그것이 있어야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겠군요?"
"어려우면 안 하면 되는 거고. 하지만 의외로 쉬울 수도 있지. 아무튼 김 경위가 신중히 생각해서 결정하기 바라겠어."
"감사합니다."

김인철은 젓가락을 들더니 생선회에 눈길을 주었다.

"선배님 드시지요. 저도 잘 먹겠습니다."
"들면서 얘기하자고."

조수경도 회 한 조각을 집었다.

"북풍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김인철은 본격적으로 북풍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북풍에는 북한이 주체가 되는 것과 남한이 주체가 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 주체의 북풍이란 말 그대로 북의 무력시위를 말하고 남한에서 조작한 북풍이란 것은 이른바 매카시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인철은 매카시즘은 반지성적이며, 여기에는 언제나 선정적인 저널리즘이 결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한의 독재세력이 획책한 북풍 공작보다 더 비열하고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북 야합의 북풍입니다. 반지성적이자 반민족적인 작태입니다."

그 날 저녁 조수경은 김인철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김인철에 의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입으로는 민주 인사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실상 북한이 지원한 것은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의도적으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행동을 했다고 했다. 1996년 총선 전 북한군이 판문점에 난입한 사건은 전형적으로 북한이 단독으로 만들어낸 북풍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남한의 언론은 이를 받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이 영향을 끼치지 않은 남한 선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김인철은, 남한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생기는 긴장 완화는 필경 북한 주민의 대남 적대 의식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선전해 온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일례로 예전의 북한은 자신에 대해 관용적인 김대중의 집권을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남한의 민주 인사에 대해 기획적으로 접근했고 평양에 초빙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사실을 남한의 안기부가 알도록 하는 공작을 여러 차례나 벌였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자금을 건넬 때에도 의도적으로 수표로 주어 한국 수사기관이 추적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선실이나 오익제, 김낙중 같은 사람들이 북한의 공작에 이용된 대표적인 경우라고 김인철은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잇속이 맞아떨어지게 된 북한과 남한의 세력이 결탁, 야합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1997년 대선 직전에 반공 정당 후보 이회창의 특보 명함을 가진 한성기 등이 북한 측 인사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실제로 남과 북의 수구 세력들이 은밀히 만나는 통로가 북경에 개설되어 있었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누가 북풍을 일으키느냐에 따라서 북한 주도의 순수 북풍, 남한 주도의 조작 북풍, 그리고 남북 합작의 야합형 북풍이 있어 왔습니다."

김인철은 1987년 대선 전의 KAL 858기 폭파 추락 사건도 야합형 북풍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 반통일, 또는 무력흡수통일론자들이 철옹성처럼 엄존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드러내서 말하기가 어려우니까 음모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른바 국우주의자와 극좌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기득권과 기득 지위를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분단 체제를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상극적인 두 세력이 잇속이 같다 보니 담합하게 된 것은 정말 가공할 비극적 희화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반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분단의 모순과 죄악상이 이 북풍 공작에 정점화되어 있습니다. 북풍공작은 비지성적인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었고 이기적인 사람을 탐욕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또 다시 시도될 때 그것을 일회성 돌발사건으로 몰고 가는 것은 너절한 우민화 선동극이 재현할 바이러스를 스스로 배양하는 일입니다."

밤이 깊도록 조수경의 머리에서는 '남북 야합형의 북풍 공작'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햇볕연쇄살인사건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심증을 굳혀 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희미한 가정에 불과했던 것이 유력한 가설로 탈바꿈해 가고 있었다.
#북풍 #김대중 #수구 #야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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