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네, 녀석들 순진하긴"

교사에게 불손한 아이들, 어떻게 할까?

등록 2009.10.19 21:10수정 2009.10.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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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영어 수업 시간,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의 이름으로 일일이 출석을 부르다가 한 아이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김 아무개"

"예."

"영어로 대답해야지. 다른 아이들도 다 영어로 대답했잖아."

"저 영어 모르는데요."

 

"그럼 따라서 해봐. 아이 해브 어 드림"

"그게 뭔데요?"

"나에게 꿈이 있어요, 라는 뜻이야."

"전 꿈이… "


아이는 꿈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멈춘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날 아이는 결국 제가 시키는 대로 영어로 대답을 했고, 또한 제가 시키는 대로 칠판에 적힌 내용을 종이에 옮겨 적기도 했습니다. 공책이 없어서 급우의 공책을 한 장 찢어 쓰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이 공책정리를 하고 있는 동안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너 조금 전에 꿈이 없다고 말하려가다 그만 둔 거지?"

"예? 예."

"너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내가 말해볼까?"

"예?"


"넌 아직 꿈이 없어. 그러니까 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 그런데도 넌 꿈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 거야. 왜 그랬을까?"

"…!?"


"꿈이 없는 것이 잘못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지. 그런데 넌 꿈이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무슨 자랑처럼 말을 하려고 했어.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방어일 수도 있고 반항일 수도 있어. 난 본래 공부 안 해요, 난 꿈같은 거 없어요, 하는 식으로 말이지. 근데 그런 식으로 말을 하려다가 보니까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든 거지. 내가 널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괜히 폼 잡고 반항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넌 지금 발전하고 있는 거야. 넌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난 네가 정말 멋진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수업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 있기 일쑤였고, 그것을 나무라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위협에 가까운 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여 동료교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저에게도 그런 태도를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화가 나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하고 막무가내로 대드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아이를 조용히 불러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팠노라고 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그는 제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수업시간에 저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사뭇 달라져 있었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도 이름을 부르면 자세를 바로 고치곤 했습니다. 이렇게 순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무렵의 일입니다. 수업시간에 또 다른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그의 짝꿍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수업분위기가 산만해서 조금 낯을 붉히고 큰 소리로 혼을 내고 있는데 한 아이가 불쑥 무슨 질문인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귀에는 실없는 장난처럼 들렸고 아이에게 기합을 줄 요량으로 팔굽혀펴기 50회를 명했습니다. 아이는 순순히 기합을 받고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수업을 계속하다가 문득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이 생각나서 영어로 아이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재수 없게 웬 영어야?' 하는 식의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순간 화가 났지만 감정을 자제하고 조용히 우리말로 다시 아이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슨 괴성 같기도 한 알아듣기 어려운 응답이 날아왔습니다. 가까이 가서 다시 확인해보니 이런 문맥이었습니다.


"제 이름은 알아서 뭐해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번에도 꿈 참았습니다. 아니, 참았다기보다는 무반응을 보였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너 금방 기합 받아서 화난 거야?" 

"그래요. 전 기합 받을 일 한 적 없거든요."

"너 선생님 한참 힘들게 말하고 있는데 엉뚱한 질문을 했잖아."

"엉뚱한 질문 아닌데요. 전 그냥 그게 궁금해서 질문을 한 거란 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선생님이 잘못한 거네?"

"예."


"알았다. 너희들이 너무 떠들어서 화가 나 있다 보니 네가 한 말을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너도 좀 그렇다. 선생님도 인간인데 실수할 수 있잖아. 그리고 팔굽혀펴기는 운동 삼아 해볼 만도 한데 선생님에게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먼저 잘못한 거니까.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사과할게. 이제는 네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냐?"

"예. 이 아무개입니다."

"맞아. 네 이름 알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은 며칠 뒤 퇴근길에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정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저를 보더니 달려와 깍듯이 인사를 했습니다. 본래 이런 아이였나 싶을 정도로 태도가 매우 싹싹하고 단정해보였습니다. 아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습니다.


"참 쉽네. 녀석들 순진하긴." 


교육은 최대의 낙관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가 교육을 통해 변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 아이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교육을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2009.10.19 21:10ⓒ 2009 OhmyNews
#순천효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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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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