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분단 최초 남북합동수사본부 결성되다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 (34회) 남북합동수사본부

등록 2009.10.27 10:14수정 2009.10.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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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합동수사본부

직위 복원을 축하해. 물론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바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수경 어머니를 뵌 감동을 먼저 말하려고 해. 수경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반씩 나눠 닮았더군. 나는 30년 만에 뵌 수경 어머니께 깊은 감동을 받았어. 남편을 피눈물 나게 저승으로 보내고 청상으로 늙은 여인의 얼굴이 전혀 아니었지. 그 당시 수경의 아버지를 비롯한 여덟 명의 젊은이를 판결 20시간 만에 사형시킨 사람들은 고문의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고 시체를 탈취하여 화장해 버렸어.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몸서리치는 과거에 초월해 계신 듯했어.

그 분은 나의 생각 이상으로 밝고 건강해 보이더군.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라고 봐. 그 분은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셨어.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수없는 고뇌와 성찰의 밤을 보냈겠지. 그 분에게는 남편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2세가 있는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거야. 아무튼 수경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어.

이제 우리들의 관심사를 논의해야 할 때군. 언제나 추정과 가정밖에는 들려주지 못했던 것이 나로서는 못내 유감스러워. 오늘도 마찬가지이지. 나는 일단 다음과 같은 추정을 해 보았어.

1) 범인은 정권의 상징성이 있으면서 경비는 오히려 느슨한 평양 대동강을 거사 장소로 벌써부터 결정해 놓고 있었다. 그는 남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살인 기계 3, 4명 정도를 북한 땅에서 훈련시켰다. 살인 기계들은 북한 주민 중에서 선정된 사람들일 것이다. 굶주리는 난민이거나 탈북자 중에서 고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 문제는 범인들의 본부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곳은 아마도 서해 깊숙이 있는 어떤 무인도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곳은 남한과 북한과 중국, 세 나라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공해상의 어디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사건은 궁극적으로 그 본부를 찾아내어 급습함으로써만 해결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의 공조수사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조수경은 용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용 부장은 그녀에게 북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이 보내온 사건 설명서에 의하면, 먼저 희생자는 셋이 아니고 넷이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알몸으로 뗏목에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네 사람은 모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엎드려 있었고, 그들의 등에는 각각 영어 대문자가 쓰여 있었다고 했다.


북한은 사체들의 등에 쓰여 있는 글자가 무엇인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남조선의 범죄와 같은 범인의 소행임이 확실시된다고만 말했다. 그렇다면 그 영문자는 'B K'임이 틀림없었다. 마지막으로 북한 인민보안성에서는 남한 경찰청과 남북합동수사를 벌일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일주일 후 조수경과 김인철은 판문점을 향하고 있었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합동수사반 결성이 합의된 결과였다. 한국의 경찰청에서는 북한 파견 수사관으로 조수경을 선임하고 그녀에게 수행 수사관을 지정하라고 했는데 그녀가 김인철을 지목한 것이었다. 경찰청은 긴급 인사명령을 내어 경정 조수경을 총경으로, 경위 김인철을 경감으로 특진시켰다. 경찰청장은 손수 두 사람에게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판문점은 서울에서 불과 60km 남짓한 거리였다. 조수경과 김인철은 경찰청에서 제공한 리무진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앞좌석에는 안내를 맡은 국정원 직원이 타고 있었다. 차량이 통일대교를 건너자 미군 헌병이 탑승한 지프가 따라 붙었다.

약간 긴장했었는지 줄곧 침묵을 지키던 김인철이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도로가 바로 1번 국도입니다."
"그래? 나는 경부고속도로가 1번인 줄 알았는데."
"1번 국도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입니다."

그들은 유엔사 경비대대 앞을 통과했다. 이어서 대전차 방어벽을 지나갔다. 양쪽으로 지뢰 매설 지역임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차량은 곧 남방한계선에 이르렀다. 평화로워 보이는 논과 밭의 풍경이 펼쳐졌다.

"비무장지대의 마을입니다."

김인철은 비무장지대에 마을이 둘 있는데, 남한의 대성동과 북한의 기정동이라고 말했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기존 주민의 거주권을 보장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생긴 마을입니다."
"나는 대성동밖에는 못 들어 봤는데."
"이 두 마을 중 하나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국기 게양대가 있습니다. 100미터가 넘습니다. 꼭대기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지요."

조수경은 일부러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김인철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웃음을 거두고 더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세계 제1의 게양대는 어디에 있는데?"
"다른 한 마을입니다. 160미터 상공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앞좌석에 있는 두 사람이 동시에 거울로 시선을 주며 웃었다. 운전하고 있는 사람도 국정원 직원이었다. 조수경과 김인철은 공동경비구역에서 차를 내려 마중 나온 북한 인민보안성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어서 그들은 북한 차량으로 옮겨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으로 향했다. 북한 측 운전사와 안내인이 두 사람에게 조금 무뚝뚝한 어조로, 그러나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네까? 남조선의 수사관들을 환영합니다."

조수경과 김인철은 동시에 응답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한적한 길이 나타났다. 조수경은 불쑥 언젠가 보았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길을 언젠가 본 적이 있어."

김인철이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셨다면 혹시 꿈에서가 아닐까요?"
"꿈은 아니야. 분명히 본 적이 있어."

조수경은 아스라이 남아 있는 기억의 실오라기를 되살려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의 기억은 한사코 가물가물하기만 했다.

앞좌석의 북한인이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내레 끼어들기가 송구스럽습네다만…."

북한인은 조수경의 얼굴을 살폈다. 조수경은 어서 말씀해 보시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 여선생님 기억이란 아마도 십 수 년 전 정주영 회장님이 소떼를 몰고 공화국을 방문하실 때 떼레비에서 보신 것 아닐까요?"
"어머!"

그녀는 활짝 웃으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북한 안내인은 조금 계면쩍어하는 어조로 말했다.

"일전에 여선생님과 똑같은 말씀하시는 남쪽 인사를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겁니다. 그때도 옆 사람이 꿈이 아니냐고 그랬더랍니다."

조수경은 불쑥 비감한 느낌이 차 올라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이 아니고서는 밟을 수 없었던 북한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북합동수사본부 #군사분계선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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