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한 데 가서 알아보니, 3년이면 오른다더라"

시골에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 엄마가 낚였다

등록 2009.10.29 16:03수정 2009.10.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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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즈음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더 없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꿈꾸는 자의 그것처럼 설레임과 기대감이 한껏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작년 7월쯤 부녀회장이 우리 집에 왔드라. 부녀회장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몰라. 진짜 야무져.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두가 길었다.

"그래서? 뭔 말인지 본론만 말해 봐."
"아이 참. 네가 자꾸 그러니까 말할 맛이 안 나잖냐. 그만 끊어라. "

전화를 끊으려는 엄마를 붙잡고 천천히 이야기 하도록 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지방 A군에 지어질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는 거였다. 부녀회장이 작년 여름에 놀러와서는 자기 동생이 경기도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데, 천만 원만 있으면 일년 후에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고, 그냥 놔두면 몇 년 후에 그 근처에 철강회사가 생기니까 아파트 값이 엄청 뛸 것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동생 소개로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고 자랑을 한 거다. 자기는 이제 노후 걱정 안 한다고.

"나 아파트 샀다, 이제 노후 걱정 안한다"


'몇 천만 원?'

애써서 농사 지어 봐야 일 년에 벌 수 있는 돈이 고작 몇 백만 원인데, 몇 천만 원이라니…. 귀가 솔깃했을 터였다. 엄마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모아 1250만 원을 마련해 덜커덕 계약을 했다.


"엄마 미쳤어? 엄마가 아파트를 분양받아? 그게 돈이 얼만데? 엄마가 농사짓는 땅 다 팔아도 아파트 한 채 어림도 없어. 융자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이자가 얼만데?"
"걱정하지 말라니까. 부녀회장 동생 말이 은행에서 공짜로 돈 빌려준다고 했고, 10월 되면 무조건적으로 팔아준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안 팔리면 분양 받은 다음에 전세를 내줘도 된다고 하더라. 그러면 이자 좀 아주 적게 내면 된다고 했어."

울화통이 터졌다. 대체 이 순진한 양반은 뭘 믿고 이렇게 태평한지, 당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였는지 알기나 한지….

"엄마, 그 사람 보고 당장 팔아달라고 해. 은행은 뭐 공짜로 돈 버는 줄 알아? 그 많은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한 달에 못 해도 몇 십만 원이야. 엄마가 뼈 빠지게 농사 지어도 그 이자 못 갚아. 그리고 취득세만 해도 몇 천 만원 할 것이고, 분양받은 뒤에 베란다 새시며 돈 들어갈 것이 얼마나 많은데?"

속도 상하고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갑갑해져서 말이 곱게 나오질 않고 목소리만 커졌다. 엄마는 당신의 꿈에 초를 치는 딸 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시골에도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 엄마가 낚였다

a  어쩌자고 부동산 광풍은 시골까지 들이닥쳐 순진한 시골 노인네까지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어쩌자고 부동산 광풍은 시골까지 들이닥쳐 순진한 시골 노인네까지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 조명자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엄마가 분양받은 방식이 합법적이었는지부터 살펴보려고 엄마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했다. 하지만 칠순이 머지 않은 엄마의 기억이란 게 한계가 있어서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엄마의 부동산 투자 또한 캐면 캘수록 어이가 없었다.

어디에 지어지는 아파트인지만 알았지 아파트 이름도, 어느 건설회사에서 짓는지도 몰랐다. 분양 가격이 얼마인지도 몰랐고, 현장 방문을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몇 평을 해야 될 지도 몰랐고, 그게 중요한 건지도 몰랐다.

부녀회장이 45평으로 하면 좋다는 말에 "그러마"고 했단다. 계약서도 직접 작성한 게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자가 도장과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을 우편으로 보냈고, 융자를 받는 것도 다른 마을에 사는 애기엄마(역시 부녀회장의 소개로 계약하게 된)와 함께 부동산중개업자가 일러준 곳으로 가서 도장을 찍고 왔다.

대충의 상황이 파악되자 부동산중개업자와 통화도 해보고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얼마간의 수수료를 내고서라도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지 아니면 가격을 낮춰서라도 팔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동산중개업자는 좀 기다리면 알아서 팔아줄텐데 자기를 믿지 않는다며 화를 냈고,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 식구만 유난을 떤다며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아마도 고향 인근에서 우리 엄마처럼 묻지마 투자를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용한 데 가서 알아보니, 3년이면 오른다더라"

부동산 중개업자에게서 뾰족한 수가 나지 않자 A군에 있는 모델하우스 겸 분양사무실을 찾아갔다. 일요일이었지만 직원 한 명만 모델하우스를 지키고 있을 뿐 방문객은 한 명도 없었다. 거기서도 결과는 뻔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길 기다렸다 팔거나 분양을 포기하거나. 그러면서 10월까지는 무이자니까 그때까지 한번 기다려보라고 분양사무실 직원이 조언을 했다.

"계약 해지를 하면 어떻게 되죠? 계약금만 포기하면 될까요?"
"아니요. 원래는 계약금이 분양가의 10%인데 저희가 고객분들 편의를 봐주기 위해 5%만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계약 해지를 하시려면 5%를 더 내셔야 합니다."

함께 간 남편과 남동생,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식의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모델하우스 근처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에도 들러보았다.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입지도 안 좋고, 분양가도 인근 아파트보다 높게 책정된 것을 왜 분양받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우리는 몇 백 손해 봐도 괜찮으니 사겠다는 사람 있으면 좀 팔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랬으면 하는 희망이었을 뿐이었다. 우리 엄마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덥썩 그 분양권을 사겠는가. 마음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공사 현장을 가보았다. 한숨만 나왔다. 읍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면 소재지 근처에 덜렁하게 지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전세를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누가 들어오기나 할지 의문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전화로 엄마를 설득했다. 가지고 있어 봤자 부담만 커질 뿐 도움이 안 되니 손해를 보더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팔든지, 그것도 아니면 계약 해지를 하자고 했다. 엄마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계약한 돈에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 때 들어온 부조금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보다 엄마가 걱정이었다. 가뜩이나 심장이랑 위도 안 좋은 양반이 충격 때문에 밥을 거르지는 않을지,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닐지….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 사람이 10월만 되면 일순위로 팔아준다고 했으니까. 자기가 뭔 속셈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냐? 그리고 내가 용한데 가서 알아보니까 3년 후면 오른다고 하더라."
"엄마, 설령 오른다고 하더라도 그동안에 들어가는 돈은 생각 안 해? 은행 이자만 해도 그렇고 취득세며 재산세며 팔 때 생기는 양도세는? 그 돈만 합해도 몇 천은 돼. 엄마 수중에 2억5천만 원이 있으면 몰라도 빚내 가지고는 몇 천 올라도 버는 게 아니야."

엄마가 미련을 못 버려 하자 우리는 10월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사이 부동산중개업자가 자기 언니인 부녀회장을 통해 '한 돈 천만 원은 벌게 해 줘야 할텐데'라는 말을 흘려 엄마 마음이 또 다시 술렁거리는 일도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애기 엄마는 아직 행복해"

엄마는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10월을 기다렸다. 추석이 지나고 남동생이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현장에 다시 다녀왔다.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고, 미분양 상태였다. 부동산중개업자에게도 전화를 해 보았지만 11월에 현장 근처로 사무실을 옮길 거라는 말만 할 뿐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하기 전, 남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누나, 몇 백만 돼도 내가 어떻게 해 보겠는데, 2500만 원이나 되니까 부담하기가 쉽지 않네."

말인즉, 계약 해지한 뒤 엄마에게는 분양권을 팔았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계약금만큼 돌려드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는 거였다.

"그냥 사실대로 말씀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어차피 엄마가 감당해야 할 몫이잖아."

꿈이 깨진 엄마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믿었던 10월이 되었어도 부동산중개업자에게서는 팔렸다는 소식은커녕 감감무소식일 뿐더러 아들이 가져온 소식도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절망적인 것뿐이었으니….

그동안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게 억울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한테 속은 게 분하기도 하고, 전화를 걸고 싶어도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지 혼자서 조바심 냈던 것이 속상하기도 하고, 날려버린 돈도 아깝고 복잡한 심사가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어쩌겠니? 욕심 부린 내 탓이 크지."
"엄마가 욕심 부려서 그랬겠어? 아버지도 안 계시고, 자식들한테 짐 안 되려고 그래서 그랬던 거잖아. 그냥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근데 엄마랑 같이 계약했다던 그 애기 엄마는 뭐라 그래?"
"아직 아무것도 모른가 보더라. 그래서 그 사람은 아직도 행복해."

전화를 끊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자고 부동산 광풍은 시골까지 들이닥쳐 순진한 시골 노인네까지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고 가는지, 애기 엄마의 행복한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제발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기만을 바랄밖에.
#아파트 분양 #부동산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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