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말리는 대학 등록금, 그 돈은 다 어디로 가는가?

책 아닌 홀서빙 쟁반 들고 뛰는 대학생들

등록 2009.11.28 13:03수정 2009.11.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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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예순이 되는 아버지는 어릴 적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지독한 공부벌레였지만 대학 등록금은 꿈도 꿀 수 없어 자신이 가고자 했던 대학교를 포기했다. 그래도 다행히 장학금을 일부 지원하는 대학을 찾았고, 목표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기회라 생각하고 입학했다고 한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40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당시와 똑같다. 아니, 사실 더 심각하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한민국 GDP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대한민국의 절대 빈곤층 숫자도 어느 순간부터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라졌다. 또한 1985년부터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이 시작되어 2001년에는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었고, 그에 따라 대한민국의 교육수준과 교육열도 발맞춰 지속해서 치솟았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학력은 높아졌으며 이제 대학입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요새는 공부만 잘하면 어느 대학이든 다 갈 수 있다?' '돈이 없어서 대학 입학을 포기했다는 말은 다 핑계다?' 가당하지 않은 소리다. 길거리 거지는 옛말이요, 우리는 OECD 10대 경제대국 반열을 눈앞에 둔다고 떠들면 무엇 하나. 국민 평균 소득이 한걸음 나아갈 때 대학등록금은 벌써 서너 걸음을 앞서가 있는 데 말이다.

         
a  전국 주요 국공립 대학교의 연평균등록금 및 전년대비 인상률(2008년)

전국 주요 국공립 대학교의 연평균등록금 및 전년대비 인상률(2008년) ⓒ 대학알리미


a  전국 주요 사립 대학교의 연평균등록금 및 전년대비 인상률(2008년)

전국 주요 사립 대학교의 연평균등록금 및 전년대비 인상률(2008년) ⓒ 대학알리미


전국 주요 대학교의 평균등록금을 비교해 보았다.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은 사립 대학에 비 해 현저히 싸긴 하지만 그 역시 일 년에 보통 500만원에 다다른다. 사립대학의 경우는 두 말할 것도 없다. 고려대의 경우 순수 등록금만 연 850만원을 넘으며 이는 졸업할 때까지 3
천 5백만 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계산이 나온다.

매학기 들어가는 돈은 등록금 자체를 제외하고도 교재비를 비롯한 학습 비용, 생활비용, 심지어 집이 학교와 먼 학생의 경우 기숙사비나 자취방비까지 더해진다. 이것들을 다 합하면 대학 생활 4년 동안의 총 지출비용이 등록금의 두세 배를 거뜬히 넘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아직도 각 대학에서는 매년 등록금 인상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많은 대학교 학생들이 불합리한 인상률에 목이 터져라 시정을 요구하지만 대학들은 힘없는 학생들 너희는 떠들어보라는 심보인지 매년 평균 7~8% 정도의 인상을 유지하고 있다.

a  도시가구 월 평균 소득과 교육비 지출률

도시가구 월 평균 소득과 교육비 지출률 ⓒ 한국은행 Ecos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말해 무엇 하랴. 한글을 떼기도 전에 자녀들을 영어, 피아노, 미술 학원을 보내야 하며 그 비용은 도시가구 평균 소득 맞벌이 부부가 발에 땀이 나도록 같이 뛰어도 허리가 휘청거릴 정도니 말이다. 어릴 때야 당장 목돈이 들어갈 정도는 아니니 이 악물고 투자한다 치더라도 어느새 자녀가 대학에 갈 때쯤이면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무시무시한 등록금 장벽에 부딪힌다.

두 자녀를 키운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두 자녀가 사립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졸업하는데 드는 비용은 등록금만 자그마치 7천만 원에 육박하며 부대비용까지 모두 합하면 1억은 족히 넘는다. 게다가 해외 어학연수다 해외 봉사활동은 언제부턴가 기본 스펙이라 모두가 외쳐대고 있으니 도대체 교육비 지출의 끝은 어디인가? 이런 실정에서 대학 자녀를 둔 부모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최고의 방도가 무엇이겠나? 등록금 인하는 절실하다. 아니 최소한 더 이상 도를 넘는 인상률은 사라져야지 않느냐 말이다.


a  수도권 모 대학교 사이트에 공시해 놓은 세입, 세출 결산 현황 중 일부

수도권 모 대학교 사이트에 공시해 놓은 세입, 세출 결산 현황 중 일부 ⓒ 손상현


물가 인상률을 훌쩍 뛰어넘어 탄생한 그 많은 대학등록금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가? 대부분 대학교 사이트에는 통계현황이 있고, 그곳에는 각 해의 재정 결산이 나와 있다. 학생들에게 재정 관리의 투명성을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다. 명목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세입, 세출의 항목에 십억 대의 비용이 들쭉날쭉하니 말이다.

일반 학생들이 이 자료를 보았을 때, 도저히 어떤 부분에 얼마가 정확히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을 뿐더러 많은 대학이 그런 부실한 내용들조차도 수년 전 최종 업데이트된 자료를 버젓이 내걸어 놓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치솟는 등록금 인상률에 대한 납득할 만한 명확한 설명과 구체적인 지출현황은 대충 덮어놓고 취업률과 연구실적 부풀리기에만 매진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배울 것은 진정 무엇인가?


인천대학교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윤모양은 공립대학교이지만 최근 몇 년 간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인상되어 가정 형편 상 2학년 때 학교를 1년 휴학하면서 등록금을 벌었다고 한다. 또한 방학 때 부족한 어학 공부를 하거나 독서량을 늘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약속했던 전국 무전여행의 꿈같은 도전계획도 편의점,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지워버렸다.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이다 못해 이제 아예 막혀버릴 지경인데 기업에서는 대학 졸업증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아 문전박대다. 등록금 내기에도 벅찬 그들에게 기타 사교육비를 들여 온갖 자격증과 해외연수를 요구한다. 아르바이트 시간으로 날려버린 꿈같은 대학시절은 생각만 해도 서러운데 왜 경력을 쌓는 데 시간 투자를 못했냐며 면박을 주니 이젠 눈물도 말라버릴 지경이다.

a  천정부지 등록금 인상은 살 에는 겨울바람보다 더 매섭다.

천정부지 등록금 인상은 살 에는 겨울바람보다 더 매섭다. ⓒ 손상현


2010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십만 명의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전쟁이 예고된다. 바로 이 피 말리는 등록금과 4년간의 전쟁이다. 그 중 많은 학생들은 40년 전 내 아버지처럼 버거운 등록금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학교의 학과 지원을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더 가난한 많은 학생들이 고심 끝에 대학진학을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수년 뒤 그들이 취업을 할 때, 사회는 온갖 잣대로 왜 대학 졸업장이 없는지, 아니면 왜 졸업장 외엔 아무 스펙이 없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

그래, 정부, 교육부 그리고 대학들 모두 다 많이 힘든 거 안다. 우리 모두 힘들다. 매년 불쌍한 서민들의 등록금 경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제발 이제는 우리 눈으로 우리 살갗으로 그 변화를 확인했으면 한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숱한 인재들은 그 무서운 등록금 고지서를 책상 위에 놓아놓고, 책이 아닌 홀 서빙 쟁반을 손에 들고 서글프게 뛰어다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대학등록금 #등록금 인상 #학부모 #학자금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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