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앞에 꿀 먹은 벙어리들, 이제 입을 열 때다

대학신문 3년, 정치에 대한 나의 결론

등록 2009.11.28 10:19수정 2009.11.2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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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전국이 떠들석 할 때 나도 촛불 하나를 들고 거리에 나섰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데모'나 하러 다닌다고 놀리기도 했다. 친구들 앞에서는 떳떳하게 말했지만 부모님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행여 방송사에서 촬영을 할 때면 얼굴을 피했고 혹시나 부모님이 TV를 보시고 화를 내시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6월 말, 대학신문사 기자로서 서울에 취재를 갔다가 길거리에서 밤을 새고 시청광장 앞 무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어머니셨다.

 

"어디냐?"

"밖이요."

"서울 아니냐?"

"네… 맞아요."

 

어머니의 갑작스런 전화와 물음에 놀랐지만 다 들통 난 것 같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불호령을 예상했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그것도 다 경험이지… 조심해서 내려와라."

 

어머니께 서울에 간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드리니 어머니는 야단보다는 걱정을 하셨다. 지난 밤 뉴스를 보니 진압을 하는 것 같던데 다친 곳은 없냐는 질문에서부터 끝까지 조심하다가 내려오라는 말씀이셨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침에 진압 경찰에 쫓겨 도망가던 이야기에서 부터 사람이 엄청 많다는 이야기까지 아들의 무사함에 어머니도 웃으셨고 나도 함께 웃었다. 전화 통화를 하며 "공부하는 놈이 거기를 왜갔냐"는 아버님의 야단에 걱정하는 내게 괜찮다고 말씀해주시는 어머니의 웃음이 어느덧 1년하고도 6개월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정치가만 정치를 하나?

 

경상북도, 그것도 북부 지역에서 계속 거주해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연스레 보수적인 생각을 하시기 마련이였다. 나 역시 그런 영향을 받았지만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는 정치는 어른들의 이야기이고 우리와는 먼 이야기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신문사에 들어가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님은 전형적인 한나라당의 지지층이었고, 대학에서 만난 선배들은 진보적이라는 민주당,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들 중간에 위치한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한미FTA는 해야 한다는 내 주장에 선배들은 나를 설득했고, 대운하 홍보 동영상을 보며 입을 쩍 벌리던 내게 대운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같은 경상도이니까, 이명박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대꾸하던 나는 어느샌가 정치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음을 느꼈다. 정치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면 '정치를 하는 사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정치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이고 술맛만 떨어뜨리는 이야기라고 놀린다. 나는 20살 짜리 대학생에게 정치가 어디에 쓰이겠냐고 이내 꼬리를 내린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박조차 못하던 내게 이명박이 어떻고, 정동영이 어떻고 하던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1시간을 연설하던 선배의 말에 기억 남는 말은 2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국회의원을 뽑는 건 그 지역의 지역민이고 대통령을 뽑는 건 국민인데, 과연 이들이 자신의 지역민과 국민들의 의견을 듣느냐는 거야. 국회의원, 대통령은 자기 잘나서 하는 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몇 만의 지역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수 천만의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변인 일 뿐이라는 거지. 지역민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하고, 자기 생각, 당의 이념이 지역민의 생각인 마냥 행동을 한다는 거지. 그러면서 막상 선거철이 오면 그 국회의원이, 그 정당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투표를 한다는 거야. 만약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정당이 이런 정책을 내세우는데 나는 반대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찍으면 되는 거야."

 

사실 선배의 말을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대학을 다니는 요즘 정치는 먼 이야기다. 자신과 이념이 틀리다며 나무라는 교수님도 계시고 정치는 어른들이 하는 것이니 젊은 대학생은 공부에 전념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정치라는 것이 몹시 대단한 것 처럼 느껴지면서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건 사실이다.

 

정치(?)적인 집안

 

대학에 들어가고 그 해,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우리집안도 예외는 아니였다. 선거를 앞두고 고향집에 갔더니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밥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TV에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나온다. 이내 아버지는 리모컨으로 TV를 끄신다. 아버지가 일을 하시러 집을 나서시고 얼마 뒤 어머니가 말을 거신다.

 

"너는 이번에 누구 찍을꺼냐?"

"엄마, 그건 비밀이지."

"너도 이명박 찍는 거 아냐? 이래서 안된다니까."

"나는 다른사람 찍을 거라니까."

 

어머니에게 장황하게 내가 지지하는 후보와 그 이유를 설명하니 어머니는 긴 사연을 이야기하신다. 아버지가 이명박 후보를 찍자고 하셨는데, 어머니는 반대하시고 이회창 후보를 찍자고 하신 것이다. 선거 기간동안 부모님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셨고 공약을 가지고 싸우기도 하시고 누가 잘났니, 못났니 싸우기도 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던 터라 기회다 싶어 부모님을 설득했다. 이 사람이 어떤 공약을 내세우고 있고, 되면 어떻게 한다더라. 그렇게 설명을 하고나면 어머니가 오히려 나를 설득하신다. 그래도 몇 번 나와 본 사람이 하는게 좋지 않겠냐며 대통령 선거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었다. 결과는 아버지의 승리였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 이후 아버지는 누구보다 좋아하셨고, 어머니와 나는 그렇지 못했다.

 

옳고, 그르다의 구분

 

아버지의 승리로 2008년이라는 새해가 시작된지 한참 때 아닌 촛불집회로 전국이 시끄럽게 됐다. 난생 처음 집회라는 곳에 갔다가 고향집으로 향하는 나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였다. 어머니의 괜찮다는 전화가 있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MB OUT"을 외친 내게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던 것이다.

 

막상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의 불호령은 없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하며 TV에 중계 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저러니까, 잘못 뽑았다니까. 지 멋대로 할꺼면 그게 무슨 대통령이야."

"미국산 쇠고기 먹는다고 무조건 죽나! 다 경제 발전 시킬려고 하는 거지."

 

어머니의 독설에 아버지는 응수를 놓는다. 지켜보는 나는 밥을 한숟갈 입에 물며 눈치를 봤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를 했지만 부모님 중 어느 누구의 지지도 하지 않았다.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 보다 부모님의 관심에 기뻤을 뿐이다. 밥을 먹으며 언젠가 선생님께 들은 말이 떠 오른다.

 

"정치에 옳고, 그른 것이 있으면 정치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찬성이 있으면 반대가 있고, 그걸 조절하는게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아니겠나. 다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각자에게 있는 것이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욕하고, 헐뜯는건 옳지 못하다. 정치인은 이러한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하는 것이고 정치인의 주관적인 사고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닌 독재다."

 

지금 돌아보면 한나라당을 지지한 아버지,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한 어머니, 진보적인 정치색을 가진 선배들 모두가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신념을 가지는데 1+1은 무엇이냐는 물음이 아닌 이상 한 주제에 대해 의견은 분분할 수 밖에 없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우리집안에서 가장 어린 내가 느낀 점은 그랬다. 아버지의 말도 옳고, 어머니의 말도 옳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정치인들이 한다. 그러나 그 정치인들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민, 국민들의 의견에 경청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지역에 방문한 국회의원에게 지역민들이 어깨를 숙이고 인사하며, 지역민의 접근에 비서는 접근을 막는다.

 

왜? 우리가 뽑은 대변인일 뿐인데. 우리를 대신해 국회에 가 있는 것인데, 왜 그들에게 우리가 굽신거려야 하고 존경의 눈총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정치, 막연한 두려움

 

2009년 4대강 문제로 한참 시끄러 울 때 택시를 탄 내게 중년의 한 기사 아저씨가 현 정권에 대해 묻는다.

 

"요즘 대학생들은 4대강이나, 미디어법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중년의, 그것도 경상도 중에서도 가장 심하다는 대구의 한 복판. 택시 기사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연신 생각을 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다가는 싸움이 날 것 같고, 현 정권을 옹호한다고 말하자니 그것도 꺼림찍 한 것이다. 나의 긴 생각에 택시 기사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건낸다.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대운하, 4대강 다 좋은데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하는데 왜 강행하냐는 것이에요. 물론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논란이 있는 부분이면 국회 표결로 밀어부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의견은 어떤지 여론조사를 하거나, 투표를 하거나 그렇게 결정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솔직히 4대강 하는 예산의 몇 %만 다른 곳에 써봐요. 유류지원금을 늘린다거나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투자를 하면 국민들 생활은 바로 바뀝니다. 큰 숲을 보는 정치인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작은 나무를 바라보는 우리는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기사 아저씨의 말이 충격적으로 들렸다. 솔직히 보수적이라 불리는 경상도, 그것도 대구에서 정치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의 눈치를 보며 남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 생각은 어떠냐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갖던, 무관심하던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다툼을 하고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 통과시킨다. 내가 무관심을 가질 수록 좋아했던 것은 바로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의견을 자신있게 밝힐 때 그것이 여론이 되고 그 여론에 따르지 않는 정치인이야 말로 질타를 받는 것이지, 여론과 다르다고 해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내가 욕을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9.11.28 10:19ⓒ 2009 OhmyNews
#정치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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