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89) 우려

[우리 말에 마음쓰기 821] 토박이말 '근심-걱정-끌탕' 잡아먹는 못된 '우려'

등록 2009.12.21 11:39수정 2009.12.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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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지배될 우려가 있다

 

.. 안과 밖의 투쟁이라는 이분법의 흑백 논리에 지배될 우려가 있다 ..  《김윤식-우리 문학의 넓이와 깊이》(서래헌,1979) 9쪽

 

 "안과 밖의 투쟁(鬪爭)이라는"은 "안과 밖이 싸운다는"이나 "안과 밖이 다툰다는"으로 다듬습니다. "이분법의 흑백 논리에"는 "이분법에"라고만 쓰거나 "흑백 논리에"라고만 적으면 됩니다. '흑백 논리'와 '이분법'은 서로 같은 말이잖아요. '지배(支配)될'은 '휘둘릴'이나 '휩쓸릴'로 손질해 줍니다.

 

 ┌ 우려(憂慮) : 근심하거나 걱정함

 │   - 우려를 낳다 / 앞으로 발생할 문제점에 대하여 우려를 표시했다 /

 │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은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 지배될 우려가 있다

 │(1)→ 지배될 수가 있다

 │(2)→ 지배될까 걱정이다

 │(2)→ 지배될까 걱정스럽다

 └ …

 

 우리 말 '걱정'이나 '근심'을 한자로 옮겨적는 낱말이 '우려'입니다. 이런 한자말을 굳이 써야 할까 싶은데, 글쓰는 분들은 '우려'라는 낱말을 입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떼어내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걱정'이나 '근심'이라는 토박이말은 거의 안 쓰고 있습니다. 요새는 글을 안 쓰며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입에서도 '우려'라는 낱말이 차츰차츰 튀어나옵니다. 텔레비전 새소식을 알리는 사회자들도 '우려'라고만 할 뿐이며, 텔레비전 연속극에서조차 '우려'가 뻔질나게 나타납니다. '걱정-근심-끌탕'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몹시 힘듭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글쟁이 사회나 지식인 사회로 탈바꿈했다고 할 만하기에,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이 같은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말살림이며 글살림이며 나날이 엇나간다고 하겠습니다.

 

 ┌ 우려를 낳다

 │→ 걱정스럽다 / 근심스럽다 / 걱정이 된다 / 근심이 된다

 ├ 앞으로 발생할 문제점에 대하여 우려를 표시했다

 │→ 앞으로 터질 문제점을 걱정했다

 │→ 앞으로 생길 잘잘못을 근심했다

 ├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아이들 마음을 다칠까 걱정이 된다

 │→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할까 근심스럽다

 └ …

 

 '우려'라는 낱말을 털어내지 못하는 우리 매무새 하나가 씨앗이 되어 우리 말과 글을 어지럽힐까 근심스럽습니다. '우려'라는 낱말 하나로 그치지 않고 자꾸자꾸 더 얄궂은 낱말과 말투가 퍼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낱말 하나로 그치는 말잘못이란 없습니다. 말투 하나로 그치는 글잘못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또다른 말잘못을 불러들이고, 노상 새로운 글잘못을 끌어들입니다.

 

 우리 삶은 언제쯤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고, 우리 넋과 말은 어느 때쯤 제길을 접어들 수 있을까 근심입니다.

 

ㄴ. 우려가 있다

 

.. 서로의 발목을 끌게 될 우려가 있다나 봐 ..  《이시키 마코토/박선영 옮김-피아노의 숲 (14)》(삼양출판사,2007) 189쪽

 

 "서로의 발목을 끌게"가 아닌 "서로서로 발목을 끌게"입니다. 그리고, "발목을 끌게"도 "발목을 끌까 봐"나 "발목을 끌까 싶어"로 손질해 줍니다.

 

 ┌ 서로의 발목을 끌게 될 우려가 있다

 │

 │→ 서로 발목을 끌까 봐 걱정된다

 │→ 서로 발목을 끌지 모른다

 │→ 서로 발목을 끌 수 있다

 └ …

 

 '근심'이나 '걱정'이 되기 때문에 '우려(憂慮)'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렇게 될 수 있'기에, 또는 '그렇게 될지 모르'기에 '우려'라는 말을 넣습니다. 꼭 '우려'가 아니더라도 '가능성(可能性)' 같은 말이 쓰였을 수 있어요.

 

 ┌ 서로서로 발목을 잡을까 걱정스럽다

 ├ 서로서로 발목잡기가 될까 근심스럽다

 ├ 서로한테 발목이 잡히는 일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 서로가 발목을 잡지 않을까 근심이 된다

 └ …

 

 글쓴이가 무슨 뜻인지를 좀더 찬찬히 살피면 좋겠습니다. 걱정이 된다면 걱정이 된다고, 근심이 된다면 근심스럽다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면 어찌 될지 모른다고,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있는 그대로 알맞게 쓰면 좋겠습니다.

 

ㄷ. 우려도 하실

 

.. 혁명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도 하실 텐데요, 저 스스로도 성찰하고 있습니다 ..  《손석춘,김규항,박노자,손낙구,김상봉,김송이,하종강,서경식-후퇴하는 민주주의》(철수와영희,2009) 13쪽

 

 "남발(濫發)하는 게 아니냐고"는 "자주 쓰지 않느냐고"나 "함부로 쓰지 않느냐고"로 다듬고, '성찰(省察)하고'는 '뉘우치고'나 '부끄러워 하고'로 다듬어 줍니다.

 

 ┌ 우려도 하실 텐데요

 │

 │→ 걱정도 하실 텐데요

 │→ 생각도 하실 텐데요

 │→ 느끼기도 하실 텐데요

 │→ 여기기도 하실 텐데요

 └ …

 

 이 자리에 나타난 한자말 '우려'는 '걱정'이나 '근심'을 가리킨다고 여길 수 있고, '생각'이나 '느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기 나름이며, 우리 깜냥껏 들여다보기 나름입니다. 어느 낱말을 골라서 넣느냐는 우리 마음입니다. 어느 낱말로 우리 뜻을 드러내고자 하는지는 우리한테 달렸습니다.

 

 다만, 옳고 바르게 넣어야 합니다. 알맞고 알차게 넣어야 합니다. 흐트러진 말이나 일그러진 글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뒤숭숭한 말이나 뒤틀린 글로 엇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서로 나누는 말임을 헤아리고, 함께 주고받는 글임을 곱씹어 주면 좋겠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말임을 살피고, 다 같이 손잡는 글임을 깨달아 주면 반겠습니다. 내뱉는 말이 아닌 펼치는 말입니다. 툭툭 내갈기는 글이 아닌 찬찬히 사랑을 담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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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1 11:3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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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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