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마들여성학교 32기 수료식...'수료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한 것'

등록 2010.02.27 16:59수정 2010.02.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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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배우면 둘을 까먹어" "배운 것도 생각해서 쓰려면 머릿속이 하얘져 답답하지" 하시는 어머니들이지만 그래도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행사를 가졌다.


"오늘(25일)은 우리 마들여성학교 32기 수료식입니다.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김희선 교사의 사회로 식이 시작되었다. 마들여성학교는 늦깎이 학생들이 모여 글을 배우는 곳이다.

 

연세 많으신 분들의 몸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여기 저기 아픈 몸 때문에 장기결석을 하시기도 하시는 분들이 많다. 또 가정사가 우선이라 아들의 혹은 딸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면서 결석을 하신다. 그런 난관들을 뚫고 6개월 기간 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상중의 상인 '으뜸 개근상'도 주어졌다.


'참 여성상'은 마들여성학교를 위해 열심히 봉사한 총학생회의 부회장 어머니가 받으셨다.

사회자가 상 받으실 것을 예상했느냐고 묻는다.


"아유, 그런 걸 왜 물어요.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서 있기도 힘들구만"하시면서도 "부족한 게 많은데 잘 보아줘서 감사해요. 응어리진 한을 풀어줄 공간을 만나 행복했고, 공부는 잘 못하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시 한 번 감사해요" 하신다.

 

딸의 손에 이끌려 처음 학교를 찾았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셨다. 딸이 학부모가 되어 대신 상담을 하는 동안에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눈물만 흘리고 계셨던 분이 이제는 이렇게 말씀도 잘 하신다.

 

a  2월 25일 마들여성학교 근처에 있는 성민복지관 강당에서 수료식 하는 장면

2월 25일 마들여성학교 근처에 있는 성민복지관 강당에서 수료식 하는 장면 ⓒ 박금옥

2월 25일 마들여성학교 근처에 있는 성민복지관 강당에서 수료식 하는 장면 ⓒ 박금옥

 

축사도 끝나고 상장 수여도 마치고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수료식은 늦게나마 배움의 길에 들어선 어머니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한 것이다. 엄숙함이나 경건함보다는 "잘 살았다. 고생했다"로 서로를 위해 박수를 쳐주며 즐기는 시간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이정하)를 낭독하신 우리 반 어머니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짓이었지만 어찌나 감성이 묻어나는 목소리인지 박수가 터졌다. 무대 오르기 전에 연습 하실 때 잘하셔서 "어머니 잘하시네요" 라고 칭찬을 해 드렸더니 "우리 선생님 앞이니까 잘하는 거지"하시는데, 어린 선생에게 마음을 열고 온전히 의지하시려는 그 심정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진다.

 

a  상도 받으시고

상도 받으시고 ⓒ 박금옥

상도 받으시고 ⓒ 박금옥

 

a  장기 자랑도 하시고

장기 자랑도 하시고 ⓒ 박금옥

장기 자랑도 하시고 ⓒ 박금옥

 

어느 반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개사해서 부른다.

 

"어느 세월에 글자 모두 익혀 점하나를 찍을까, 공부는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음정, 박자, 가사 제각각으로 불러서 처음부터 다시 부르기를 해 웃음이 식장을 채웠다.

 

사회자가 어머니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시는데 교사도 답례를 해야 한다면서 즉석에서 한 교사에게 노래를 부탁하고 함께 어울린다.

 

a  교사도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

교사도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 ⓒ 박금옥

교사도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 ⓒ 박금옥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를 끝으로 그만 두는 교사의 인사가 있었다.

 

"우리 어머니를 만나는 느낌으로 처음 이곳에 왔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어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 졌고, 살아가는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들과 정들었던 교사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눈물이 글썽해서 "사랑합니다"란 인사로 대신 한다.


사회를 맡은 교사가 마무리 멘트를 한다.

 

"어머니들 수고하셨습니다. 글자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하시고요. 마들여성학교에서 그 응어리를 마음껏 깨트리시기 바랍니다"


식을 마친 어머니들은 6개월 동안 함께한 담임교사들과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로해 준다. 교사에 대한 고마움을 어머니들은 끌어안는 것으로 표현하신다.


박노해 시인의 <다시>속에서 다음 기에 '다시' 만날 어머니들과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다시> /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2010.02.27 16:59ⓒ 2010 OhmyNews
#마들여성학교 #수료식 #문해교육 #노원구 #한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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