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가는 말(馬)들, 잡초와 돌무덤을 지나야 했다
퇴적층으로 이뤄진 돌덩어리들 위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곶자왈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은 가파른 언덕길을 올레꾼 부자가 오순도순 걷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이 올레길 풍경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차마 길을 앞지르지 못하고 느릿느릿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바로 '몰길', 즉 말(馬)이 다니던 길이었다. '몰길'은 제주어로 '말길'을 의미한다. 이 '몰길'은 원나라 치하에 있던 고려시대 때 말들이 다니던 길이었다. 박수기정 위의 너른 들판에서 키우던 말을 원나라로 싣고 가기 위해서는 대평포구까지 말을 끌고 가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을 통해야만 했으리라.
제주의 여느 길이 다 그렇듯이 '몰길'은 척박했다. 잡초와 돌무덤이 범벅된 길이었으니까 말이다. 잡초 속에 길이 나 있다는 것이 의심할 정도였다.
박수기정 위 너른 들판은 황토 흙
곶자왈 같은 숲 지대를 빠져 나오자 평평한 밭길이었다. 드디어 대평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봄 감자를 심고 있는 대평리 사람들은 벌써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주의 흙이 검은 줄만 알았는데, 밭은 온통 황토흙이었다. 벌건 흙 위에 주저앉아 감자를 심는 농부들의 손놀림은 느릿느릿 걷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야속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기정길 전망대, 안전보호 장치 아쉽다
기정(절벽)길 전망대에 섰다. 전망대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다. 순간 아찔했다. 밧줄 하나를 경계선으로 쳐 놓았을 뿐 아무런 안전보호 장치를 하지 않았다. 조금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절벽아래 몸을 웅크리고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의 모습은 박수기정의 깎아 세운 절벽보다도 더욱 알싸한 풍경이었다.
거칠지만 포근한 돌무덤 길을 걷다
은빛 바다위에 서 있는 형제 섬, 산방산이 가까워질수록 원나라 말들이 다녔던 '몰길'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박수기정의 몸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박수기정 절벽 위를 걸었던 것이다. 그 절벽 위는 곶자왈 지대였다.
박수기정 절벽 위로 걷는 올레 9코스, 그 길은 박수기정의 너른 들판에서 기른 말들이 원나라로 가기 위해 대평포구로 끌려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 길은 거칠지만 포근했다. 돌무덤 속에서도 생명이 잉태하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길이었다.
2010.03.11 13:31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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