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우리 동네 고사리꽃 13

등록 2010.03.15 14:20수정 2010.03.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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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꼬마, 은행나무 그리고 토끼

꼬마, 은행나무 그리고 토끼 ⓒ 토마스 알트누르메

꼬마, 은행나무 그리고 토끼 ⓒ 토마스 알트누르메

노루가 그 말을 끝내고 쥐가 그 나무 거인을 따라 그 집안으로 사라지자, 순식간에 여러 동물들이 내게 모여들어서는 가지각색의 목소리로 재잘대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고사리꽃이 드디어 피었구나, 정말로 네가 그 꽃을 보게 될 줄이야."

"어제 여기서 피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다시 이렇게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참...."

 

분명 동물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전부 내가 익히 듣던 목소리와는 많이 달랐다. 근엄하던 시계병원 아저씨가 천천히 말씀하시는 말투보다도 더 낮은 것 같기도 하고, 시장에서 사소한 다툼이 붙어서 시비가 붙은 아주머니의 목소리보다 더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있었다.

 

그 조회라는 모임은 그렇게 엉성하게 끝이 난 듯했고, 동물들은 처음에 모인 그대로 각자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얼굴을 익혔던 너구리와 곰은 내게 와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많이 놀랐지? 아주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거야, 내일 또 봐."

 

곰은, 농구공이 땅에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곰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몸이 하늘로 붕 떠오르면서 순식간에 붉어져 가는 하늘에 검은 점을 남기더니 산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러고보니 하늘 곳곳에 그런 검은 점들이 점점히 박혀서 마치 비행접시처럼 하늘 여기 저기를 날고 있엇다.

 

동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은행나무 주위에 흐드러지게 반짝이던 작은 불꽃들도 하나 하나 꺼져갔다. 그렇게 모든 불꽃들이 사그라지고 단 두개의 불꽃만 남았을 때, 나는 그 나무 주변에 토끼와 단둘이 남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토끼는 말 없이 내 옆에 서서 내가 자기를 알아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듯 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아까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을 토끼에게 다시 물었다.

 

"저, 나무 사람은 뭐야? 그리고 너 우리 할아버지가 썼다는 글씨 옆에 있는 그림이 너 맞지?"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될 거야.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그나저나 어머니가 기다리시겠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야지. 너 내일 학교가 끝나면 이곳으로 다시 와줄 수 있니?"

 

생각해보니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있었다. 내가 들어오지 않아 엄마는 시장입구며 육교 위며 놀이터들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난 토끼에게 내일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와 집을 향해 달려갔다. 연이어 이어진 신기한 일들로 흥분했던 나는, 다리에 무척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난 집에 들어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괜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집에 들어가서는 시내에서 오리 밖에 떨어져 있는 친구 집에 잠시 다녀왔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친구는 우리 어머니도 호감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어서 난 별달리 혼이 나지 않고, 별 탈 없이 저녁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암튼, 그날의 흥분을 잊지 못한 나는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

 

난 학교에 가자마자 책상 위에 가방을 내팽겨쳐 두고 닭이며 토끼며 동물들이 자라고 있는 학교 축사로 달려갔다. 혹시 그 녀석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 녀석들은, 어제 은행나무에서 보았던 녀석들과는 달리 눈에 생기도 없었고 그냥 구석에 웅크리고 있거나 의미없는 몸짓을 해대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그 토끼가 그 고사리꽃을 보면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수업 시작 후에도 어제 은행나무 앞 공터에서 보았던 것을 되새김질하느라 정신이 팔려 선생님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해서 몇 번 혼이 났지만, 수업이 끝나서 청소를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은행나무 아래로 뛰어갔다.

 

단 한번 뜀박질을 멈추지도 않고 계속 뛰어 은행나무 아래로 달려갔지만 거기엔 동물 한마리도 볼 수 없었다. 토끼도 쥐도 부엉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평소 은행나무를 끔찍이 사랑하시던 할아버지만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계신 듯, 계단 입구에 서계시기만 할 뿐.

 

나를 보신 할아버지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아주 엄하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을 거셨다.

 

 "여긴 왜 온거냐?"

 

답변을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에게 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선뜻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제 만난 토끼를 만나러 왔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거대한 나무 거인을 본 적이 없느냐고 물어보아야 하나... 난 멋적어 하다가 그냥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계단 아래로 다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다시 나를 부른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법이 어딨냐, 이놈아, 토끼 때문에 왔지?"

 

"예?"

 

맞다는 말인지 아니라는 말인지, 말을 하는 나조차도 헷갈릴 정도로 애매한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돌리시더니 말씀 하셨다.

 

 "저 집 안으로 들어가 보거라."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긴 의자에 앉아서 담배불을 붙였다.

덧붙이는 글 | 삽화가 소개 - 에스토니아 출신 그래픽 아티스트, 토마스 알트누르메. 이곳에 사용된 작품은, 모두 정식으로 그의 허가를 받고 게재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들어갈 삽화로 흰토끼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2010.03.15 14:2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삽화가 소개 - 에스토니아 출신 그래픽 아티스트, 토마스 알트누르메. 이곳에 사용된 작품은, 모두 정식으로 그의 허가를 받고 게재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들어갈 삽화로 흰토끼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고사리꽃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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