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추행 신부를 감싼 일이 들러나 바티칸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농아학교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로렌스 머피 신부의 미사 집전 사진(왼쪽에서 세번째).
뉴욕 타임즈
바티칸이 다시 한번 스캔들에 휩싸였다. 부활절을 열흘 앞둔 3월 26일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가 베네딕토 16세 현 교황이 1980년 뮌헨 추기경 시절 당시에 한 미국 출신 성직자의 성추행 사건을 덮어준 사실을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고 있다.
이 신문에 의하면 독일의 에센에서 성직생활을 했던 피터 훌러만 미국 신부는 청각장애자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 200명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이유로 부모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성직에서 임시 정지처분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당시 추기경이었던 현 교황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문제의 신부를 뮌헨의 한 교구에 새로 발령을 낸 것이다. 당연히 거기에서도 새로운 사건이 다시 재현되어졌다.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이라는 주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이들 성추행 사건의 상당수가 가톨릭 사제들의 의무적인 독신생활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결혼과 사제 생활이 공식적으로 겸용될 수 없게 된 12세기부터 사제들의 성추행이 만연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톨릭 측에서는 이런 사실을 은연중에 묵인하는 게 관례가 되어왔으니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예외적인 사실은 아니다.
성경에도 성 생활을 장려하고 있는데가톨릭에서 성직자에게 독신을 요구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4세기 부터였다. 이는 오귀스탱 성인의 영향으로 이루어졌는데 4-5세기 당시 유행했던 신플라톤 철학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오귀스탱 성인은 결혼과 특히 성생활을 둘러싼 육체관계를 치욕적인 일로 간주해버렸다.
아담과 이브에게 인류의 원죄를 뒤집어씌운 인물이 바로 오귀스탱 성인인데 그에 의하면 인류의 원죄가 성생활을 통해서 차후 세대로 전파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가톨릭에서는 성생활을 반대한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창세기 1장 28절에는 '성장하고 자손의 수를 번창하여서 지구를 가득 채워라'고 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성생활을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 물론 성생활의 목적을 생식에만 두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초기에 사제들이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만큼 성생활을 적대시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성직자의 독신이 점점 선택의 영역으로 확산되고 많은 성직자들이 독신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12세기까지는 독신자와 결혼한 성직자가 공존하게 되는데 성직자들의 결혼생활로 인해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사제 사망 후 자식들이 부친의 유산 상속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의 재산이란 결국 교회의 재산에 다름 아니라 유산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줄 수도 없는 묘한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직자들의 독신이 하나의 해답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일부 종교전통에 의하면 성직자들이 미사를 집전하기 전날에 성생활을 금하게끔 되어있다는 것이다. 매일 미사를 집전해야 하는 사제들에게 결혼생활은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교구는 1139년에 들어서 성직자의 결혼과 사제생활을 겸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취하게 되었고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독신이어야 한다는 법을 규정화했다. 이후 성직자들은 전적으로 신과 교회, 교구민에게 전념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게 되었고 성직자의 독신은 가톨릭의 상징이 되었다.
변화한 시대에 적응 못하는 가톨릭그러나 세상은 매일 변하고 있다. 성과 섹스가 금기로 여겨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각종 미디어에서 성과 섹스가 중요한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 사회에서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은 점점 더 그 의미를 잃어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전세계에서 9만여 명의 사제들이 (프랑스 사제는 1만여 명) 결혼을 위해 사제직을 벗었다. 사제직을 원하는 젊은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50년 전에 프랑스에서 한 해에 1만여 명의 새로운 사도들이 등장했지만 지금은 1백명 미만으로 줄어들어서 2009년에 새로 사제직에 임명된 자의 수가 90명에 불과했다. 당연히 사제 수가 부족해 외국에서 사제를 수입해오는 이변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5월 27-28일 이틀 동안 종교 일간지인 <라 크로와>는 신도, 비신도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의 국민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신부가 점점 드물어지는게 독신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6%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고 신부의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71%가 찬성, 15%가 반대, 14%는 의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숙인 구호 공동체 '엠마위스'를 창설한 아베 피에르 신부는 사망하기 2년 전인 2005년에 <신이여, 왜 그렇습니까?>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당시 93세의 노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들의 성적생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는 성직자의 결혼생활에 반대하지 않으며 자신도 젊은 시절에 성경험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아베 피에르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사랑'이다. 그런데 인류의 사랑을 주장하는 가톨릭에서 사제들 개인의 사랑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숨어서 사는 사제들의 '아내'들식욕이나 성욕 등 인간의 기본 욕구가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면 편법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편법 중의 하나가 비밀가정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사제 옷을 벗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 남모르게 비밀가정을 이루는 사제들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고행은 시작된다.
성직자의 감추어진 아내들은 세상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이들 사이에서 생긴 아이들도 항상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살고 있다. 1996년에 음지에 놓여있는 이들 신부 아내의 일부가 '대낮'이라는 협회를 형성했는데 자신들의 처지를 양지화시키고 성직자들의 독신을 철폐하겠다는 이중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 앞에 놓여진 바티칸의 벽은 너무 두껍고 높다. 현재 성직자들의 감추어진 아내와 자식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협회 창설 당시 300여 명의 여인이 연락을 취해온 것만 보아도 그 수가 그렇게 적은 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이들이 자신의 고통스런 생활을 책으로 발간함으로써 이들의 억눌린 목소리가 서서히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또 다른 편법 중의 하나는 성직자들이 동성연애 혹은 소아성애자 성향을 보임으로써 성욕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현재 유럽 전체를 뒤흔드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일부에서는 성직자들에게 결혼을 허용함으로써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을 방지시키자는 의견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소아 성애자들의 대부분이 기혼남성인 점을 감안하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이견도 있다.
이와 정반대의 의견도 있는데 성직자의 독신 생활이 오히려 소아 성애자들을 신학교에 끌리게 할 수 있는 요건이 되고 이런 자들이 성직자가 되어서 아동 성추행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닭과 계란 중 어느 게 먼저일까라는 수수께끼와 동일한 문제다.
요한 바오로 2세 "육체는 신의 신비 드러낼 사명이 있다"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은 교황 중에서는 드물게 육체의 즐거움을 강조한 분이다. 그는 교황이 되기 전 40대인 1960년대에 <사랑과 책임>이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교인 커플들에게 성의 즐거움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창세기를 다시 읽고 나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는 전 교황은 인간이 신의 모형을 본받아 창조되었으므로 인간의 성기관도 당연히 신과 가깝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육체는 신의 신비를 드러낼 사명이 있다"(위의 책 인용)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은 1993년 7월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독신이 성직에 있어 핵심은 아니다. 독신을 예수가 얘기한 법처럼 공포해서는 안 된다."
베네딕토 16세 현 교황은 이 점에 있어 전 교황보다는 보수적이다. 그는 최근에 독일에서 발생된 성직자 아동 성추행 스캔들과 관련해 성직자들의 결혼문제가 다시 거두되었지만 한 발짝도 물러설 기세가 없다.
교황은 이번 주말에 몰타 섬을 방문할 예정에 있는데 3명의 성직자가 아동성추행으로 고소되어 있는 상태이고 교황이 고소한 자들을 만날 예정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추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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