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릉. 숙종과 인현왕후가 나란히 묻힌 곳. 사진 왼쪽이 인현왕후, 오른쪽이 숙종. 명릉에는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도 함께 묻혀 있다.
성낙선
조선 제19대 왕인 숙종은 부인이 모두 9명이었다. 그중 정실 왕비만 3명이었다. 왕비로는 차례로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가 있었고, 후궁으로는 장희빈과 최숙빈 등이 있었다. 장희빈이 한때 인현왕후를 밀어내고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만, 인현왕후를 모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빈으로 강등됐다.
서오릉에는 숙종과 세 왕비, 그리고 장희빈의 묘가 있다. 조선 역사상 한 시대에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죽어서 다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다. 최숙빈의 묘마저 서오릉에 함께 있었다면 좀 더 극적이었을 텐데, 정실들이 묻힌 자리에 후궁들까지 묻힐 자리는 없었던 모양이다. 최숙빈의 묘는 서오릉에서 북쪽으로 20여km 떨어진 곳에 있다.
장희빈의 묘(대빈묘)는 애초 경기도 광주시에 있었던 것을 1969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숙종과 인현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명릉과는 완전히 반대편 구역에 들어섰다. 군사정권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장희빈의 묘는 주변에 석장을 두르는 등 어느 정도 위엄을 갖추기는 했으나, 다른 왕가의 무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왜소하다. 한때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사람의 무덤치곤 상당히 초라하다.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서오릉 안에 별도의 능(익능)에 묻혀 있고,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가 숙종과 함께 하나의 능(명릉) 안에 묻혀 있는 것에 비하면, 장희빈은 죽어서까지 홀대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하긴 살아서 그렇게 미워했던 인현왕후가 숙종과 함께 묻혀 있는 걸 보느니, 차라리 멀찌감치 돌아앉아 있는 게 더 나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