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밥 먹는 사람들 아십니까

작은책 단행본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를 읽고

등록 2010.07.20 17:14수정 2010.07.20 17:14
0
원고료로 응원
a  화장실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 추위를 피해 화장실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변기에 오즘이얼어 있는 것이 보인다.

화장실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 추위를 피해 화장실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변기에 오즘이얼어 있는 것이 보인다. ⓒ 작은책


지난 겨울 월간 <작은책> 안건모 대표가 역사 기행을 갔다가 화장실서 밥먹는 사진을 찍어왔다. 남자 소변기에 누렇게 오줌이 얼어있는 화장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라면을 끓여 찬밥과 먹는 장면이었다. 

"어휴 심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떻게 화장실서 아무렇지도 않게 라면을 끓여 먹어요?"라고 했지만 곧 나도 길거리서 밥도 먹고 라면도 먹어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하철 역에서 무가지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서너 시간 동안 쉼 없이 돌아다니며 신문을 올리고 접다보면 참을 수 없이 허기가 몰려 들었다. 때문에 20년 이상 입에도 대지 않던 커피믹스도 몇 잔씩 마시게 됐고, 노점상 하는 분들과 함께 길에 박스를 펴 놓고 라면도 먹고 밥도 먹었다.

허기지고 추워서 견뎌낼 재간이 없으니 남들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게 됐었다. 나도 길거리서 몇 번 밥을 먹어보긴 했지만 만일 찬밥과 김치 쪽을 옆 칸에서 누군가 '푸지직 뿡~' 용변 보는 화장실에서 먹어야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그것도 매일같이.

"전국 대학에 처음부터 청소아주머니들의 휴게실을 만든 학교는 없어요. 지금도 노동조합이 없는 학교에서는 청소 아주머니들이 계단 밑에 박스 깔아 놓고 점심을 먹습니다. 노조가 생긴 이화여대는 건물 밖 계단 밑을 막아 청소 아주머니들의 휴게실을 만들었어요. 건물 밖에 작은 공간이 생기고 나서 아주머니들은 천국에 온 것처럼 행복하다고 했어요. 작은 냉장고 하나 들여놓고 집에서 가져다 놓은 김치랑 밥 먹으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금남의 방이라 남자들 절대 못 들어오는 곳인데 특별히 허락해 준다고 해서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

하종강(한울노동문제 연구소 소장) 소장이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강의를 했을 때 우리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a 15년 간 일터의 목소리를 담은 단행본들  저 3권의 책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간 노동자둘이 일터에서 겪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15년 간 일터의 목소리를 담은 단행본들 저 3권의 책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간 노동자둘이 일터에서 겪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 이명옥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글 모음인  월간 <작은 책> 세 번째 단행본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에는 실제로 화장실서 밥을 먹어야 했던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대로 글로 담겨 있었다. 또 다시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그 당시 우리는 점심으로 싸가지고 온 찬밥을 여자 화장실 맨 구석 좁은 한 칸에서 둘이 무릎을 세우고 먹었습니다. 학생들이 바로 옆 칸에  와서 "푸드득, 뿡~" 하고 용변을 보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김치 쪽을 소리 안 나게 씹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학교 신문과 방송에서 알고 학생들이 취재해갔고 그 상황을 대자보로 붙여서 온 학교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지부에서 학교와 협상해서 오늘날과 같이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쉼터를 얻게 되었습니다(정정순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 인하대청소용역분회, 2009년 10월).

쉼터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환경미화원들의 환경은 대부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환경미화원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퇴근을 하거나 먼지 구덩이, 한데서 밥을 먹는다. 심지어 새로 짓는 삐까번쩍한 수십 층짜리 고층 건물에도 환경미화원을 위한 작은 쉼터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어디서 숨을 돌리고 쉬어야 할까.


인하대 도서관을 새로 건축하고 문을 열면서 여자 15명, 남자 3명이 소장 감독 아래서 일하게 됐습니다. 나는 직장 생활도 미화원 일도 처음이어서 많이 서툴기도 하고 모든 점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소장은 날마다 직원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하루에 세 번씩 아침, 점심, 퇴근 직전에 쭉 세워놓고 "나는 100명도 짤라봤다. 재계약 땐 집에 애기 보러 갈 사람이 많다. 돈은 좋고 일하긴 싫고" 하면서 겁을 줬습니다. 일을 다 끝내고도 편히 쉬지 못하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도서실 깊은 한쪽 구석에서 파트너와 둘이 빗자루, 쓰레받기, 걸레 등을 옆에 놓고 몰래몰래 잠깐씩 쉬어야 했습니다.

저런 열악한 환경이니 환경미화원은 청소반장이나 직원들의 눈치를 봐가며 밥을 먹고 귀퉁이에서 잠깐씩 아픈 허리를 펴야한다. 얼마 전 모 대학에서 환경미화원 아주머니께 폭언을 퍼부은 여학생 사건, 오후 세 시가 넘도록 아침과 점심을 거른 청소미화원 할머니가 매니저 눈을 피해 허기를 메우려고 냉면을 시킨 뒤 화장실서 작은 목소리로 "색시 이리로 좀 들어와 달라"고 했다던 글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a 화장실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청소용역 노동자인 정정순의 글 '화장실에서 밥을 먹었습니다'라는 글이 작은책 단행본 3권에 실려있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청소용역 노동자인 정정순의 글 '화장실에서 밥을 먹었습니다'라는 글이 작은책 단행본 3권에 실려있다. ⓒ 이명옥


지금도 지하철 역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숨 돌릴 틈 없을 만큼 바빠진다. 승객들의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과 천정에서 새는 빗물을 밀어내고 박스를 펴서 사람들이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바닥에 까느라 매양 허리를 굽히고 있어야 한다.

박스는 펴놓자마자 물에 푹 담가 놓은 것처럼 금세 젖어버리는데 젖은 박스만 보면 어김없이 청소반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이, 아줌마 이리 좀 와봐! 저거 다 젖었는데 새로 갈지 않고 뭘해!" 

장마철이 되니 애먼 소리 들어가며 출근 시간 내내  박스 갈고 걸레질 하던 지하철 역 청소아주머니들과 무가지 신문을 돌리며 길거리서 라면을 나눠 먹던 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부끄러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자들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자본을 굴려 이윤을 내는 이들은 말할 것이다. 그동안 월급을 올려줬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것은 가진 것은 몸뚱이 뿐인 노동자의 삶을 모르는 배부른 자의 변명일 뿐이다.

그들 중 누가 화장실이나 길거리서 밥을 먹어봤을까. 눈물에 젖은 빵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 버스비가 얼마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은 물가는 성난 말처럼 내닫는데 쥐꼬리만큼 임금을 인상해주고 생색을 낸다. 자본가들이여! 양심이 있다면 제발 좀 나눠먹자. 그동안 혼자 너무 마이 묵었다 아이가!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

작은책 편집부 엮음,
작은책, 2010


#작은책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