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삼백 년 전 제대로 된 루저, 두보

이 시대에 다시 돌아보는 두보의 인간적인 시

등록 2010.08.03 14:54수정 2010.08.0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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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보시선

두보시선 ⓒ 지만지

예전부터 한 번은 두보를 읽으려고 했다. 이백의 화려한 시와 두보의 쓸쓸한 시가 같은 시대의 양면 같은 느낌이 있어서다. 당시(唐詩)를 현대에 읽는 일은 솔직히 약 70% 정도의 사실성 밖에는 없다. 당시에 쓰인 말들은 천오백 년 전 그것도 중국에서 쓰던 말이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나머지는 각자의 감정으로 채우는 것이 당시를 읽는 묘미라면 묘미다.

두보의 시를 읽는 첫 느낌은 '심심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저번 주말에 언뜻 읽었던 김남주의 시에 비하면 슬픔과 고통의 세기가 근처에도 못가는 듯하고. 모든 것이 번개 같이 움직이는 오늘날 시집, 그것도 천삼백 년 전에 쓴 심심한 시집 읽을 일 있나. 그 지루함을 꾹 참고 시집의 중간을 넘기면 60년도 못 살고 객사한 두보를 중국인들이 이백보다 사랑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두보는 평생을 자신의 뜻대로 해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나쁘지 않은 배경에 태어나서 과거에 실패하고 관직을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권력자 비위 맞추기에는 역부족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관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도 않았고, 결국 십 년 넘어 기다린 직책이 요즘으로 말하면 무기고 관리직 같은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잘 나가고 글 잘쓰던 유생은 머리 세고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나약한 중늙은이가 되고, 전쟁통에 자식이 굶어죽는 비참함도 맛본다.

두보는 권력의 부패와 민중의 어려운 삶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시로 남겼는데 그 수가 1450여 수나 된다. 그 시들은 고단한 그의 육체와 정신이 선명히 빛나는 유일한 수단이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비유와 선명하고 사실적인 표현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백의 시는 대단히 화려하고 풍요롭다. 비유도 과장되었고 읽는 이를 충분히 흥분시킨다. 반면 두보의 시는 현실적이고 우울하다. 그는 항상 자신의 모자람에, 도리를 다하지 못함에 자책하고 그러면서도 뭔가 제대로 하는 바가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관직을 구걸하고, 한 잔 술을 얻어 마시며 시름을 잊는 것, 말직에 있으면서 일을 제대로 하기보다는 현실의 비탄에 종종 빠지는 그는 제대로 된 루저였다.

그러나 두보는 시대에 저항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황제를 사랑했고 황제 옆에 충정어린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였다. 자신이 변방에서 하는 일없는 유생으로 일생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황제 옆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속에서 살았다. 성도나 귀주에서 그나마 안정된 삶을 살다가 중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선상 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런 의지가 없었다면 삶을 연명해야 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던 것이 두보의 삶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우리가 누구나 느껴보았을 인생의 비애, 자신에 대한 질책이 깔려 있다. 그의 일생이 계속 조금씩 나락으로 떨어져서 나중에는 집도 절도 없이 배에서 죽었지만 그의 시 세계는 그와 반비례하여 완성되어 갔다.


일생을 루저로 살아간 두보이지만 시인으로서 그의 능력은 탁월했던 것 같다. 등악양루처럼 절과 구의 대비도 아름답고(우리가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간결한 문장 속에 감동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멋진 시도 좋지만 루저로서, 병든 시인의 아련함이 단촐하게 묻어나는 시들은 두고두고 마음이 저려온다. 설날 아들 종무에게 쓴 '설날 종무에게'의 첫 구절은

"너는 우는구나, 내 손이 떨려서. 나는 웃는다, 네가 자란 것 보고"


로 시작한다. 두보시의 여운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잔잔한 슬픔과 그 속에 약간 비치는 따뜻함, 회한, 과장되지 않으면서 정확한 묘사. 어느 시대의 누구든지 공감하는 것이다.

그가 성도에서 중원으로 오는 배안에서 쓴 시 '상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회포를 풀어보다'는 시가 갖는 서정성과 특유의 현실감각,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감정을 균형감 있게 표현한 수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시에는 젊음과 늙음의 갈등, 한 시인의 일생에 대한 회한, 뱃사공의 솜씨와 강의 움직임 등 구체적 사물의 묘사와 심리적 묘사가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며 구성되었다. 이백의 시처럼 넘치는 풍요로움은 없지만 균형미와 묘사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음식으로 말하면 오래 묵힌 동치미 같다고나 할까, 깔끔한 평양냉면 한그릇 같다고 할까.

2010년 7월 두보의 시를 읽는 일에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천삼백 년 전 루저였던 시인의 감정은 언뜻 마음에 와 닿기 힘들다. 그러나 그 언덕을 넘으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 사랑, 희망, 좌절을 과장 없이 엮어낸 시의 아름다움에 가슴 속이 서늘해짐을 느낄 수 있다. 또 그 감정들이 언제나 내 안에 있었던 것임을 깨닫고는 슬그머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두보 시선

두보 지음, 김의정 옮김,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두보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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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며 인테리어 디자인과 디자인 컨설팅 분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통건축의 현대화와 중국전통건축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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