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공간을 초월하다.

배찬효 개인전 ‘Fairy Tale Project’리뷰

등록 2010.09.05 16:18수정 2010.09.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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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isting in Costume - Snow White 230x180Cm C-Print 2010

Existing in Costume - Snow White 230x180Cm C-Print 2010 ⓒ 배찬효


일반적으로 셀프포츄레이트(Self Portrait)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사진과 사회문화적인 현실을 풍자하는 사진으로 거칠게 구분 할 수 있다. 즉 전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것이고, 후자는 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을 한 대표적인 작가가 로버트 메이플 소프와 신디 셔먼이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이후 현대사진은 현실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시각화한다. 이처럼 현실을 연출하고 구성해서 '자화상'을 찍는 배찬효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현실을 풍자하는 사진 찍기를 한다. 작가는 동양인으로서 영국에서 생활하며 겪은 문화적인 충돌과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표현한다. 남성인 자신이 서양의 귀족부인으로 분장을 하고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에 갤러리 트렁크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에서도 이와 같은 '자화상'사진을 찍어서 전시했다. 백설 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미녀와 야수 등 서양동화의 서사구조를 차용해 동양인으로서 체험한 문화적인 혹은 심리적인 갈등을 알레고적으로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마치 영화감독이나 연극연출자와 같이 특정한 콘티를 바탕으로 상황을 설정해서 찍었는데,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에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조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모델들도 등장한다. 그래서 최종 결과물 자체가 영화나 연극의 홍보 포스터같이 느껴진다.

작가는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주제를 시각화하기 위해서 특정한 공간과 모델을 섭외하고  의상, 소품 등을 준비한다. 그 이후에 촬영과정에서도 영화나 광고사진을 찍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인공조명을 사용해서 현실을 제어한다. 그로 인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는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사진가라기보다는 영화감독과 같은 역할을 해서 최종 결과물을 생산한다.

a  Existing in Costume - Beauty and the Beast 230x180Cm C-Print_2009

Existing in Costume - Beauty and the Beast 230x180Cm C-Print_2009 ⓒ 배찬효


정교하게 현실을 꾸미고 구성해서 국가, 문화, 계급과 관련된 특정한 사회문화적인 현실을 풍자한 결과물이 배찬효의 셀프포츄레이트 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작가 자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은 작가의 정교한 연출력과 분장으로 인해 작가의 성적인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만큼 작가가 자신이 전달하고자하는 주제를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정교하게 꾸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결과이다.

사진은 오랫동안 현실의 거울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동시대 예술사진은 현실 그 자체를 재현해서 결과물을 생산하기 보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특정한 장면을 구성해서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한 결과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창조된 현실을 통해서 작가의 주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배찬효의 작품은 그러한 동시대 현대사진을 특정한 단면을 반영한다. 현실의 모방을 통해서 작가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과 창조적인 사고력이 개입되어 최종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이 현대사진의 표현양식이자 미학이다. 그 결과 현대사진은 탈장르적이고 종합예술 그 자체이다. 배찬효의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획득하는데 성공한 여러 사례 중에 하나이다.

덧붙이는 글 | 장소: 트렁크갤러리
기간: 2010-09-02~2010-09-28


덧붙이는 글 장소: 트렁크갤러리
기간: 2010-09-02~2010-09-28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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