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다룬 작품을 즐긴다. 그것은 범죄소설일 수도 있고 영화 또는 드라마, 심지어는 오페라일 수도 있다. 무엇이건 간에 범죄물은 니코틴이나 알코올처럼 중독을 유발시킨다.
독일의 한 방송국은 아예 금요일을 '범죄물의 날'로 정했다. 금요일 밤이면 많은 독일 국민들이 TV 앞에 모여서 살인범을 추적하는 짜릿한 장면을 지켜본다.
왜 사람들은 범죄물을 좋아할까. 실제 살인사건이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한다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활자 속 또는 브라운관 안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자신과는 무관하게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범죄물들은 대부분 혼란스럽게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질서를 찾는다.
범인의 정체가 폭로되고 정의는 승리를 거둔다. 그러면 독자는 책을 덮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범죄와 살인사건이라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즐거움도 있다. 모든 구경 중에서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이다. 그 싸움을 극단으로 밀어부친 것이 살인사건이다. 당연히 그 자체로 재미있지 않을까.
자백을 받기위해 중세에 유행한 고문
외르크 폰 우트만의 <킬러, 형사, 탐정클럽>에는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 부제처럼 이 책에서는 고금의 독특한 살인사건과 잔인한 연쇄살인, 그리고 살인을 다룬 소설과 영화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건수사에 관한 역사도 함께 다룬다. 과거에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문을 주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용의자의 자백이야말로 '증거의 여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고문은 합법이었고 법전에도 피고를 '고통스럽게 심문'할 수 있다고 명시 되어 있었다.
고문의 방법도 다양했다. 사지를 늘어뜨린 피고에게 10리터 이상의 물을 먹이고, '스페인 장화'라는 이름의 도구로 다리를 비틀기도 했다. 팔다리에 족쇄를 채워서 몸을 늘리는 고문도 있었다. 당시 한 형리는 "신이 창조한 것보다 1피트는 족히 늘렸다"라는 식으로 자랑(?)했다고 한다.
고문이 통하지 않을 때 또는 유죄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에는 '신의 판결'에 진실을 결정하는 권한을 넘겼다. 신의 판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결투였고, 불타는 장작더미 사이를 걸어서 통과하는 것을 불의 심판이라 불렀다. 끓는 물에서 맨손으로 특정한 물건을 꺼내는 시험도 있었다. 이런 시험을 통과한다면 피고는 무죄라고 증명되었다.
이런 고문이 유럽에서 없어진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고문이 없어지면 어떻게 자백을 받을까. 당연히 논리적인 정황증거나 물적증거의 수집 등이 요구되었다. 범죄자가 현장에 남겨놓은 흔적을 추적하고 용의자에게 알리바이가 있는지 탐문한다. 지문과 DNA 대조 기법이 생겨났고, 독살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사체에 남아있는 독극물을 추출해내는 방법도 꾸준히 발달한다.
연쇄살인범의 대명사 '살인마 잭'
이렇게 범죄수사방식이 변하면서 탐정도 생겨난다. 최초로 탐정을 세상에 내보낸 것은 에드거 앨런 포였다. 그는 1841년에 단편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몰락한 귀족 오귀스트 뒤팽을 등장시킨다.
이후에 수많은 탐정들이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한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아로, 존 딕슨 카아의 기드온 펠 박사, 반 다인의 파일로 반스 등. 이들은 모두 천재적인 관찰력, 종합적인 통찰력, 천리안과 같은 직관으로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아들인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눈에 띄는 범죄양식 중 하나는 바로 연쇄살인이다. 저자는 '여러 장소와 여러 시점에 일련의 쾌락살인을 범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연쇄살인범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연쇄살인범들은 80-90년대에 많이 등장했다. 53명의 여성을 살해한 테드 번디, '요크샤이어 살인마' 피터 서트클리프, '나이트 스토커' 리처드 라미레즈, 100명 이상의 여성을 죽이고 그 중 몇 명은 '생선처럼 저민'것을 자랑스러워 했던 헨리 리 루카스가 그런 연쇄살인범들이다.
끝내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들도 있다. 19세기 말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마 잭, 잠자는 사람들을 도끼로 찍어죽인 도끼남자, 젊은 커플을 대상으로 살인을 했던 조디악이 대표적이다. 이중에서 조디악은 공개편지를 통해서 "나는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라고 밝히지만, 몇 달 후의 다른 편지에서는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나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연쇄살인은 더이상 멀리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2년간 13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정남규, 20명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이 보도되면서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연쇄살인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닌 셈이다.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살인이라는 범죄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다. 인류역사의 시작이 살인사건과 함께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쯤은 범죄를 상상한다. 친절한 지킬 박사는 마법의 음료를 마시고 살인마 하이드로 변신했고,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는 "내 가슴 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살고 있네"라고 탄식했다.
세상 어디에나 범죄가 있다. 가장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곳, 사회의 상류층과 권력자들이 모인 곳에서도 범죄는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네 명의 대통령이 살해당했고 암살미수도 여섯 차례나 있지 않았던가.
<킬러, 형사, 탐정클럽>에서는 이밖에도 범죄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유나마버' 테오도르 카진스키와 프로파일링, 독약을 사용했던 많은 여성살인범들, 한 지붕 아래에 함께 살았던 두 명의 살인범, 고대 로마부터 지금까지 사형제도의 변천사, 정신이상자의 범죄는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등.
살인은 끔찍한 범죄이지만, 인류가 존속하는 이상 결코 없어지지 않을 범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스케치하는 살인과 범죄, 사형제도 등의 이야기 속을 가볍게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 심각한 범죄에 대한 해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산책하는 동안 많은 흥미로운 풍경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킬러, 형사, 탐정클럽 -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
외르크 폰 우트만 지음, 김수은 옮김,
열대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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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한다.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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