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이란 것은 제주도에 있는 김녕사굴(金寧蛇窟)을 가리킨다. 화산 폭발로 인해서 생긴 이 용암동굴은 내부가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입구가 뱀의 아가리 같다고 해서 '사굴'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동굴에는 뱀과 관련된 전설도 있다. 오래전에 이 동굴에는 커다란 뱀이 한마리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뱀이 이 밭 저 밭 할 것 없이 곡식밭을 다 밟아 휘저어 버려서 대 흉년이 들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매년 섬에서는 처녀 한 사람씩을 제물로 바치는 큰 굿을 벌여서 뱀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이런 뱀의 횡포도 중종 10년(1515)에 멈춘다. 그 해에 서련이라는 판관이 제주에 부임한다. 서 판관은 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개해서 직접 굿판에 참가한다.
그리고 굿이 한참 진행될 때 나타난 뱀을 창검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섬은 평온해졌고 지금도 김녕사굴 옆에는 서 판관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김녕사굴의 전설과 의문의 죽음
신진오의 <무녀굴>은 이 전설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뱀이건 사람이건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음을 맞았다면 그 영혼은 쉽게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어쩌면 그 사무친 원한 때문에 영혼은 원귀로 변해서 다른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무녀굴>은 김주열이라는 의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주열의 후배이자 퇴마사인 진명은 주열의 시신이 놓여있는 병원 영안실에서 주열의 영혼을 불러낸다. 그리고 주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사가 아니라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원귀에 의해서 희생된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제 진명의 관심은 주열의 아내 금주와 6살 된 딸 세연에게로 향한다. 원귀가 주열을 노린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귀의 다음 목표는 금주와 세연이 될 가능성이 많다.
진명은 금주에게 찾아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금주는 당연히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안 그래도 남편이 죽어서 정신이 산란한 판국에 남편이 귀신 때문에 죽었다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명은 사람을 현혹해서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 취급당하며 쫓겨나지만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남편의 죽음 이후에 금주의 주변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악몽을 꾸는가하면 혼자 있으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주위 사람이 남편과 비슷한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결국 금주는 진명에게 연락을 하게되고 둘은 함께 원귀의 정체를 찾아 나선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무녀의 혼
<무녀굴>이라는 제목처럼 작품 속의 원귀는 무녀와 연관이 있다. 일반 사람들도 한을 품고 죽으면 원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제나 무녀가 원귀가 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하급 귀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선 악신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귀신을 달래서 저승세계로 돌려보내는 천도의식이 한참 더 힘들어진다.
악신을 달래서 선한 신으로 만들어 직접 모시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악신을 강제로 소멸시켜야 한다. 그야말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셈이다. 악신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퇴마사의 목숨까지도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다루기 어려운 것 처럼 귀신을 다루는 것도 힘든 일이다.
미신이라고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무녀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것이다. 무녀는 푸닥거리를 통해서 신을 모셔 잘 대접하고 다시 돌려보낸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병을 치료하고 집안의 행복을 기원한다.
무녀는 다른 종교의 사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악한 길로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 무녀가 어떤 원한이 쌓였기에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원귀로 변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이 원귀를 달랠 수 있을까. <무녀굴>을 읽다보면 공포 대신에 슬픔이 느껴진다. 망자가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무섭다기보다는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무녀굴> 신진오 지음. 황금가지 펴냄.
2010.09.20 09:42 | ⓒ 2010 OhmyNews |
|
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신진오 지음,
황금가지, 2010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