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만 '스스로춤', 예술인들이 다시 지피다

21일, 안산여자정보고 <김기인 교수 49재 추모예술제> 열려

등록 2010.10.20 18:03수정 2010.10.20 18:03
0
원고료로 응원
a 김기인(왼쪽) 교수   김기인 교수가 금강산문학축전에서 스스로춤을 선보이고 있다.

김기인(왼쪽) 교수 김기인 교수가 금강산문학축전에서 스스로춤을 선보이고 있다. ⓒ 이종찬

▲ 김기인(왼쪽) 교수 김기인 교수가 금강산문학축전에서 스스로춤을 선보이고 있다. ⓒ 이종찬

 

그때 창밖에는 성난 바람의 갈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산자락 너머 팔매질하듯 건너온 그 바람은  

침묵 속에 웅크린 한 여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그대 검은 눈동자가 영원 속으로 흔들거렸다

그리하여 당신은 침목처럼 단단한 세상 밖으로 저만치

달려가고 길 떠난 발뒤꿈치를 향해 태양 속 흑점 같은

그리움이 오롯이 머물다 갔다 때마침 창공 속으로

울며불며 뭇 새들이 허위단심 휘돌며 떠나가고 있었다

안산 고잔 뜰 강당 모퉁이쯤 여태껏 잠들지 못한

허허로운 목소리들이 빗장거리로 수없이 넘어지며

살결마다 켜켜이 외로웠을 육신의 꽃불을 어루만졌다

 

그때 그대 눈빛은 내 뱃구레를 지나 목울대 위까지 

청솔 같은 외침과 함께 세차게 너울치고 있었다

아슴푸레한 새벽녘 쓰린 공복처럼 알싸하던 그 미소

끝내 이승의 뭇 삶을 흔들어 깨우며 우릴 미혹케 했다

그날 못 다 한 耳順의 아침이 뗏목처럼 떠내려갔다

그대 뼈마디가 스스로춤이라고 命名하던 영혼의 피와

한껏 지상 위로 솟구치던 탱탱한 살점이 감탕질하듯

끝내 서로를 이슥토록 얼싸안다가 더 깊게 더 아래로

저 혼자 눈부셨을 육신의 불꽃만을 호명하고 있었다

 

때론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가느다랗던 네 종아리

그대 볼 틈새를 마악 빠져 나온 비련의 보조개들이

한동안 차바퀴처럼 잉잉거리며 예서저서 맴돌았다

그때 이후로 침묵으로 말하던 자들은 둘둘셋씩 모여 앉아

그대가 밟고 떠난 원목의 마룻바닥만 서럽도록 서성거렸다  

차렷 자세의 빗방울들이 그대 목청인양 때론 휘몰아쳤다

'고단한 삶을 터뜨리고 가슴속에 차오르는 달을 만나려'*

그대는 이다지도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려 했음인가?

당신 몸짓과 차마 못 잊힐 그대 가뿐 숨결이 그때

산언덕 가득 스스로 타올라 만장처럼 훨훨훨 나부꼈다

곰삭은 서산 어리굴젓처럼 때론 새콤달콤하다가

갈 之 자 같던 세상 향해 꼿꼿이 응시하던 네 눈빛

그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가슴속에 조곤조곤 머물다가

해설피 젖어 있던 눈빛으로 다시금 달려오고 있었다

- 이승철 '육신의 꽃불 혹은 불꽃―스스로춤꾼 김기인 님을 추모하면서'

 

* '고단한 삶을 터뜨리고 가슴속에 차오르는 달을 만나려' 인용 부분은 <스스로춤-열락 2010> 프롤로그에 실린 김기인 교수의 말에서 인용.

 

지난 가을 들머리께(9월 3일), 서울예대 안산캠퍼스에서 밤늦게까지 학생들 공연연습에 따른 지도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심근경색'으로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린 스스로 춤꾼 김기인 교수. 그는 그렇게 사흘 동안 꼬박 고대안산병원 영안실 B101호실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를 찾아가지 못했다. 그가 지난 6일 오전 9시 서울예대 안산캠퍼스에서 서울예술대학장을 치른 뒤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던 그날에도 글쓴이는 그를 찾아가지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 그 어이없는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평화포럼> 행사가 열릴 때마다 늘 저만치 서서 '김기인과 스스로춤패' 공연을 깊숙이 바라보고 있던 그.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그가 남긴 춤추는 사진 몇 장 보면서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가 떠난 빈 자리, 누가 '스스로춤'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는 그를 마음 속에서 영원히 떠나보낼 때가 다가왔다. 그를 추모하는 '49재 추모예술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a 고 김기인 교수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김기인(향년 57세)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로 일했다

고 김기인 교수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김기인(향년 57세)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로 일했다 ⓒ 이종찬

▲ 고 김기인 교수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김기인(향년 57세)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로 일했다 ⓒ 이종찬

 

'월인천강 넘나드는 춤추는 그 연인은 어디 있는가

 

달이 강에 도착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

접신을 고대하는 나무들이

저녁을 마친 마을을 향해

고요히 눈을 줄 때

그때 허공의 목마른 새들

수미산이 고향이라는

한 떠돌이별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춤이 하염없이 이어지고

아직 세상의 거짓을 배우지 않은

갈대꽃 첫 고갱이들도 몸을 열어

함께 춤을 추었을 것이다

그 춤 참으로 황홀했을 것이다

사무치는 것들이 너무 많은 땅

차마 기다림 저버리지 못하여

가여운 춤 멈출 수 없었기에

근자 월인천강 마음도 많이 먹먹했을 시간

기인은 지금 어디 계신 것인가

만산홍엽이 섧은

정선 아라리 소리 속으로 들어가

월면불 춤이 되신 것인가

아니면 반도의 끝

한 불우한 시인의 생애

비장한 춤이라도 되신 것인가

또 아니면 천지사방 온통 파헤쳐놓은

강이 너무 아파 침묵의 춤

오랜 선정에라도 들어가신 것인가

그대 그리운 춤의 사람아

월인천강 넘나드는 춤의 연인이여

김기인 스스로춤이시여 -홍일선, '월인천강 춤의 연인이여―스스로춤 김기인님 49재에' 모두

 

가을이 점점 깊어가면서 쌀쌀한 바람에 병든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는 이때, 지난 9월 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린 서울예대 무용과 '김기인(1953~2010) 교수 49재 추모예술제'가 열린다. 21일(목) 저녁 5시 안산여자정보고등학교(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 798) 미도관 2층 다목적실이 그곳이다.

 

작가 강기희 사회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홍일선(시인)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이 고인을 되돌아보고 추모하는 인사말로 시작된다. 이어 구순을 훌쩍 넘긴 이기형(시인) 한국문학평화포럼 고문이 추도사를 읊은 뒤 장순향(장순향한반도춤패 대표) 한양대 교수가 나와 추모 전통춤으로 일찍 떨어져버린 김기인 넋을 달랜다.

 

추모시 낭송에는 시인 손태연(한국문학평화포럼 이사), 정용국(시인,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이승철(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홍일선(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이 나와 고 김기인 춤꾼을 위로하는 시를 마치 '눈물로 쓴 시'처럼 슬프게 읽는다. 손태연 시인은 '그 아름다운 사람'이란 시에서 "몇 해 전 가을 / 공원에서 열리는 문학행사, 해가 지고 무대의 조명이 켜졌습니다 / 불빛이 어룽이는 공원 한 켠 / 어스름 속에 희미한 움직임 / 거기 맨발의 무용가가 혼자 리허설을 하고 있었습니다"라며 고 김기인 삶을 되짚는다. 

정용국 시인은 '긴, 기인 그대'라는 시에서 "어디쯤 가고 계십니까 / 단풍 붉게 타고, / 성률이 혜미 / 재언이 가슴도 / 마냥 타들어 가는데 / 뒤도 안 돌아보시고 / 어딜 그리 가십니까"라며 "고까짓 한 나절, / 더해야 눈 깜박할 틈 / 앞서고 뒤따르는 것 / 무에 크게 다르겠습니까"라고 스스로 쓰린 마음을 다잡는다.

 

시낭송이 끝나면 가수 김현성이 나와 김기인 교수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고, 박선욱(시인) 성악가와 가수 인디언수니가 잇따라 나와 짧고 굵게 살 떠난 한 춤꾼을 기리는 노래를 부른다. 이어 김기인 교수 추모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서울예대 무용과에 다니는 <김기인과스스로춤> 제자들(박성율, 최재언, 김석중, 최성희, 정혜미, 이재능)이 나와 추모 현대춤을 추면서 김기인 교수 49재 추모예술제는 막을 내린다.

 

a 김기인 교수 금강산문학축전에서 스스로춤을 추고 있는 김기인 교수(오른쪽)

김기인 교수 금강산문학축전에서 스스로춤을 추고 있는 김기인 교수(오른쪽) ⓒ 이종찬

▲ 김기인 교수 금강산문학축전에서 스스로춤을 추고 있는 김기인 교수(오른쪽) ⓒ 이종찬

 

한국현대무용협회 이사 맡아 우리 현대춤 널리 알려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김기인(향년 57세)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서울예대 무용과 교수로 일했다. 그는 한국현대무용협회 이사를 맡아 우리 현대춤을 새롭게 창작하면서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섰으며, '김기인과 스스로춤 모임' 예술감독으로 '열락' 등 많은 작품활동을 했으며 후배 기르기에도 힘을 쏟았다.

 

홍일선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은 20일 낮 전화통화에서 "고 김기인 교수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창립회원이자 이사로서 지난 2004년부터 한국문학평화포럼이 매년 주최, 주관했던 <문학축전> 행사에서 <김기인과 스스로춤모임>의 예술감독으로서 현대춤 공연에 열정적으로 참가해왔다"며 고인에 얽힌 추억을 더듬었다.

 

이승철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은 "21일 고인의 49재를 맞아 <김기인 교수 사십구재 추모예술제>를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함께 치르기로 했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 그와 인연이 있었던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참석했으면 좋겠다. 추모예술제에 참가할 분은 4호선 안산 상록수역에서 내려 본오우체국 앞으로 오면 된다"고 말했다.

 

김기인 교수 49제 추모예술제에 참석하고자 하는 분은 21일 낮 2시 경운동 수운회관 앞에 있는 대절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승철 총장은 "참가신청을 미리 문자로 해주시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오셔도 된다"며 "추모예술제가 끝난 뒤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남도음식주점 시인에서 뒤풀이를 하면서 고인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a 김기인과스스로춤패 김기인 교수가 지도하는 스스로춤패 단원들이 스스로춤을 추고 있다.

김기인과스스로춤패 김기인 교수가 지도하는 스스로춤패 단원들이 스스로춤을 추고 있다. ⓒ 이종찬

▲ 김기인과스스로춤패 김기인 교수가 지도하는 스스로춤패 단원들이 스스로춤을 추고 있다. ⓒ 이종찬

 

'스스로 춤', 형식 의식 버리고 자신 이끄는 무의식으로 추는 춤

 

김기인 교수는 살아생전 "인간의 원초적 진실을 드러내는 춤이 정형화 의식화되면서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춤'이란 형식과 의식적인 면을 모두 배제하고 자신을 이끌어주는 무의식에 의존해 추는 춤"이라며 "이는 서양적 테크닉에 의존한 안무나, 텍스트의 한계를 극복, 동양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수도와 정진을 통한 자기 성찰과 내면에 흐르는 氣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못 박았다.

 

김기인 춤꾼이 선보인 스스로춤은 '도(道)의 길로 가는 스스로 춤'이다. 그는 지난 1988년부터 스스로 춤을 통하여 사람이 수도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의 길→씨앗→돔→든→ 무→건→곤'으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춤을 선보였다. 그는 공연 때마다 형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낀대로" 춤으로 드러냈다.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김기인은 단원들에게 무언가를 표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몸을 화두 삼아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무심의 경지를 그대로 느껴보라고 가르친다"며 "그는 불교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불성을 가진 인간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알아듣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경애는 "그는 일체의 잡념을 버린 반야심경의 상태에서 몸을 통해 흐르는 파장(에너지)을 형상화한다든지, 내재된 무의식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극도로 절제해 밀도를 느끼게 하는 춤을 추구하고 있다"며 "얼핏 자기 구도로서의 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에너지의 수축과 팽창에 대한 열정은 보는 이를 감동시킨다"고 거듭 호평했다.

 

고 김기인 교수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학사 및 석사(현대무용) 과정을 마쳤으며 '스스로춤' 모임 대표를 맡았다. 그는 '대한민국 무용제'에서 안무대상을 받았으며, 현대무용협회 신인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2010.10.20 18:03ⓒ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고 김기인 #스스로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