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지시엔 불응... 지시보다 법이 먼저"

[인터뷰] 전 진실위 인권침해국장 이명춘 변호사

등록 2011.01.12 16:37수정 2011.01.1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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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춘 변호사
이명춘 변호사이명춘

이명춘 변호사는 지난 4년여 간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자행된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는 인권침해국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8월 19일 당시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이 포항지역 미군폭격사건과 관련해 전원위원회에서 진실규명된 5건의 사건을 결과 고지 대신 재검토를 하라고 지시한 TF팀 팀장에 임명된다. (관련기사 : 진실위 조사결과 뒤집은 간 큰 이영조 위원장)

이영조 위원장은 당시 특별보좌관이던 이명춘 변호사에게 '진실규명'으로 결정(2010. 6. 30)된 포항미군사건을 '진실규명불능'으로 수정해 보고서를 재작성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명춘 변호사가 "진실위 전원위원회(전원위) 결정내용을 바꾸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다"고 하자 이영조 위원장은 결정내용이 아닌 본문 내용만을 수정해 상정하라고 지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변호사는 조사관들과 주문과 내용을 기존의 '진실규명' 결정안을 1안으로 이영조 위원장 및 김용직 상임위원의 '진실규명불능' 요구를 2안으로 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영조 위원장은 위 보고서를 전원위에 재상정(실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기에 재상정은 맞지 않고 보고 등으로 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하였다. 전원위(2010. 9. 14.)는 위 안건을 논의하면서 재심의는 불가, 변경된 내용으로 확인하는 것도 불가, 다만 내용을 보고(아무런 결정의 효력이 없다)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영조 위원장이 '진실규명불능'으로 결재를 올리라고 지시하자 이명춘 변호사는 '부당한 지시엔 불응한다'며 결재상신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이영조 위원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변호사를 면직시켰다. 결국 김용직 상임위원이 비서를 통해 결재를 상신하게하고, 자신을 통해 위원장 결재를 받도록 하였으며 이렇게 '진실규명불능'으로 변조된 내용이 신청인들에게 통지되었다.

또한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이영조 위원장이 전원위에서 심의·의결된 사건들을 3개월 이상이나 결재하지 않자 이명춘 변호사는 진실위 직장협의회와 더불어 결재를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이영조 위원장은 미국 출장 전까지 결재를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영조 위원장은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기고 해외출장 전까지 미군폭격사건에 대한 결재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약속을 깨뜨리고 이영조 위원장이 외유성 해외출장을 가자, 지난 9월 30일 이명춘 변호사는 "이영조 위원장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최종의결 후 3개월 동안 결재를 하지 않은 것은 공직자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주어진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법이 정한 신청인의 권리와 이익을 심대하게 침해한 것" 이라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귀국 후 이영조 위원장은 몇 달간 이유 없이 결재를 미뤄왔던 사건들에 대해 부랴부랴 결재했다. 


로봇처럼 맹목적으로 상관의 지시에 따르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많은 나라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반면 부당한 상관의 지시에 불응하고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공무원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 다음은 부당한 지시보다 정당한 법을 앞세우는 이명춘 변호사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이메일로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지난해 12월 23일 전원위에서 이영조 위원장은 이의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전쟁 중 미군이 포항에서 자행한 폭격사건 중 신광면 마북리 사건에 대해 기존의 진상규명불능 결정을 다시 원래 결정인 '진실규명'으로 번복했다. 하지만 포항 망천리 사건과 이가리·월포리 사건은 거듭 '불능' 처리했다. 이런 위원회의 번복, 즉 이영조 위원장의 즉흥적인 결정과정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나?
"진실위 같이 위원들의 지혜와 식견을 합하여 결정하는 위원회 조직은 한번 결정하게 되면 결정한 위원회조차 그 내용을 바꿀 수 없는 것이 행정법의 일반원칙이다. 또한 이런 조직의 결정은 위원들 간의 위임도 상당히 제한된다. 즉 위원들의 발언과 토론이 전제되지 않고 누구에게 위임할 수 없으며, 포괄적인 위임을 떠나 구체적인 위임도 제한된다. 따라서 2010. 6. 30. 결정내용은 법원의 판결을 제외하고는 진실위를 포함하여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


따라서 원래결정을 번복한 것은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다. 다만 진실위의 마북리 사건에 대한 번복이 신청인의 이의신청에 따른 결정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위가 국가기관으로서 원칙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나아가 사건 일부를 진실규명으로 한 것은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나 망천리와 월포리 사건들이 '진실규명불능'으로 번복된 것은 위법상태가 계속되는 것으로 본다.

- 유족들의 입장은 어떤가?
"유족들은 진실위에 이의신청을 하여 마북리 사건을 바로 잡았고, 청와대에 진정서(감사원으로 이첩된 것으로 통지받음)를 제출하였다. 아울러 검찰에 이영조 위원장과 김용직 상임위원을 직권남용으로 고소했다. 나아가 진실위에 행정심판(진실위가 2010. 12. 31. 종료되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 없음)을 제기하였고, 최종적으로 법원에 행정소송(손해배상소송을 포함)을 제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 진보나 보수를 떠나서 진실위 위원 중 법조인들도 꽤 있는데 어떻게 법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런 결정이 이루어 질 수 있었나.
"진실위 결정을 법적으로만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기관은 위법한 결정을 할 수는 없다. 일부 법조인 위원들은 이영조 위원장의 요구에 묵묵부답하기도 하였고, 또 일부 위원들은 강하게 항의하였다. 이것이 이영조 위원장이 재심의, 승인하려는 강행을 막아냈고, 보고한 것으로 본다는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 지난달 진실위에서 발간한 종합보고서와 관련해서도 지금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다. 이상환 전 진실위 상임위원도 "종합보고서에 유족과 피해자의 구제와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전혀 담기지 않은" 종합권고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려는 것에 항의하여 전원위에서 퇴장한 바있다. 심지어 전 진실위 조사관들이 별도보고서를 제작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이렇게 진실위 종합보고서와 권고에 대해 비판과 논란이 많은데?
"구체적인 사건에서 한 권고 등을 상당히 누락하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긴급조치사건을 결정하면서 위헌적인 긴급조치에 따른 판결을 무효화할 법률을 제정하라는 권고, 다른 위원회에서 권고하였고 진실위에서도 개별사건 진실규명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국가보안법이 철폐 내지 수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하였다.

또한 1954년 이전의 군법회의(헌법에 군법회의 근거조항이 1954년 11월 24일에 비로소 규정되므로 군법회의 판결은 헌법에 근거하지 못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이다)에 의한 판결이 헌법에 근거가 없는 군법회의이므로 무효(최능진 사건)이므로 이를 확인하는 법률제정 권고 등이 빠졌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써는 과거사재단, 한국전쟁 전후의 집단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법률제정, 유기된 희생자들의 유해발굴과 위령사업 등도 재차 강력하게 권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단지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의 정책 권고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 종합권고는 진실위가 활동한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가 취해야할 화해조치 의무와 향후과제 등에 대하여 권고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 기본법 상에 명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배․보상 특별법의 제정', '과거사재단의 설립', '유해발굴과 안장시설 건립' 등이라 본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항목을 이미 안병욱 위원장 재임 시에 건의한 바 있다고 하여 따로 항목을 정하여 기술하고 종합권고에서는 그 내용을 제외시켰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세 조항이 제외되었기에 종합권고의 의의가 반감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진실위의 과거사 정리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지속적으로 과거사정리가 되어야 할 국민적 요구가 있다고 본다면 이를 수렴하기 위한 위 세 가지 권고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를 강행할 경우에는 국가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는 논의를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당면한 과거사정리문제를 외면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현재의 공권력행사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법적인 한계를 주는 의미 있는 권고내용을 빠뜨린 것은 문제다."

- 한국전쟁 중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과 관련하여서도 '미국의 사과'와 '피해구제'를 언급한 초안은 '국가가 피해구제방안을 마련하고 미국 측과 그 방안을 노력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문구로 대체되어 가해자인 미국 측의 책임을 전혀 촉구하지 않는 이상한 권고가 되어버렸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재 미군 폭격문제에 대하여 '노근리사건'에서 미국의 입장과 한국의 입장이 갈려 있었다. 이에 진실위가 미국의 입장에 가까운 미군의 책임을 면해주는 듯 한 결정과 권고는 향후 외교, 정치 등에서 후과가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군폭격문제는 엄청난 피해에 비하여 사회적 조명이 너무 미미하였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고 본다."

- 원래 권고안에는 '오·남용의 우려가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들어 있었는데 나중에 '국가보안법의 적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문구로 교체되면서 의미자체가 완전히 왜곡되어 버렸다는 입장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물론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에는 여러 편차가 있다. 그러나 진실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사건을 통하여 국가보안법의 폐해, 오남용의 실태를 보아온 진실위로써는 장기적인 국가정책의 방향을 '권고'하는 차원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포함되었어야 한다. 단기적인 판단으로 국가보안법을 인정한 상태에서 적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타협적인 권고는 진실위의 역사적 임무와 한참 거리가 있다."

- 지난 5년간 진실위 활동을 통해 어려웠던 점과 한계 그리고 나누고 싶은 보람과 감회가 있다면?
"과거사 정리의 문제는 격변의 현대사에서 언제나 있어왔다. 반민특위, 4.19직후의 민간인집단희생 규명노력, 5공특위, 언론특위, 그리고 2000년대의 의문사 등 과거사정리 노력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는 이슈에 따른 단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항상 문제가 있다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따른 화해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구암살사건을 비롯한 반민특위 와해사건, 장준하의문사 등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진실위의 한계라고 본다. 또한 허원근 일병 사건 등 의문사사건 등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재일동포간첩조작의혹사건도 잘 밝히지도 않은 채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가면서 중형을 선고한 대한민국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심정을 알았을 때 이들에게 대한민국이란 조국은 어떠하였는지···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물론 많은 조작의혹사건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에서 비전문가의 눈으로도 강기훈과 김기설의 필적이 다른 점이 너무나 분명한데 국과수 공무원의 감정서를 이유로 그 많은 감정과 자신의 직접적인 판단을 안 한 듯하고 검찰, 법관들이 강기훈을 유죄로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후 진실위에서 이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던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또 국회(군의문사위법에서 노태우정권까지의 군의문사는 진실위에서 조사하고 자신들은 이후의 것만 조사하도록 법에 규정하면서)에서 진실위 조사종기를 노태우 정권까지라는 명백한 의견이 있었음에도 동의대사건, 전교조사건, 방양균사건 등을 권위주의 통치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각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기훈사건 등이 노태우정권의 시절이었음에도 진실규명 하였던 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미군폭격사건에 대하여 진실위는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였지만, 해결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지속적인 과거사진실규명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명춘 변호사 약력
1978년 전주고 졸
1983년 서울 법대 졸
1985년~1997년 서울 영등포, 구로지역 노동운동
2003년부터 현재까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이사
2004년 1월 사법연구원 제33기 수료
2004년 2월~2006년 5월 오성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청솔 변호사
2004년 ~ 2006년 학교법인 인권학원 관선이사장
2006년 5월 ~ 2010년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인권침해조사국장 등
2011년 1월 ~ 법무법인 청솔 변호사 복귀
#김성수 #이명춘 #진실화해 #종합보고서 #미군사건 #과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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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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