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이 제주지사도 무시하는 상황... 특단의 조치 취하라"

일방적으로 공사 밀어붙이는 상황, 도민사회 도지사에 '역할' 요구

등록 2011.10.08 22:18수정 2011.10.0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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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정마을회와 범대위가 7일 오후 3시에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지사에게 '특단의 결정'을 요구했다.

강정마을회와 범대위가 7일 오후 3시에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지사에게 '특단의 결정'을 요구했다. ⓒ 장태욱


해군이 제주지사의 재검증 요구까지 무시하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제주지사에게 '특단의 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세를 얻고 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지난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은 해군기지 문제를 정치적으로 잘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국방부와 강정마을 주민들이 서로 실익을 챙길 수 있는 해법('윈윈해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우근민 지사의 공언에 강정마을 주민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해군기지 문제를 대하는 중앙정부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바라던 대로 부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진 것도 아니고, 그동안 전·현직 지사들이 공언했던 대로 중앙정부로부터 지역발전을 위한 인센티브가 명확하게 제시된 것도 아니다. 

'윈윈 해법'을 공언하던 우근민 지사는 시간이 흐르자 "도지사로서 쓸 수 있는 권한이 남아있지 않다"며, 강정마을 주민들과 중앙정부 사이에서 요구되던 지렛대 역할을 사실상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우역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27일에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었다. 도지사가 지렛대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직접 몸으로 중앙정부와 싸워야 했다. 주민들은 경찰에 연행되고 재판을 받고 벌금을 납부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주민들과 평화 운동가들의 집요한 싸움으로 공사는 몇 달 동안 중단되자, 경찰은 강정마을에 대규모 경찰병력을 배치하여 공안 분위기를 조성했다. 경찰은 마을회장을 강제로 연행하여 구속시켰고, 법원은 정부가 제기한 공사금지가처분신청을 대부분 받아들여 주민과 평화 운동가들의 손과 발을 모두 묶어 놓았다.

이런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우근민 정부는 해군기지 공사에 대한 주도권을 전혀 쥐지 못했다.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전개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도지사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9월 1일이 되자 해군기지 공사장에서 뜻하지 않던 소식이 전해졌다. 공사장에서 청동기시대 후기와 탐라국 초기의 것과 조선시대의 것 등을 포함하는 문화 유적들이 두루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 2009년 4월에 정부당국과 제주도가 체결한 업무협약서가 이중계약으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주도가 애초에 강정마을에 군항을 건설할 때 내걸었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눈가림에 불과했다는 의구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도지사가 새롭게 불거지는 문제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해군기지 성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제주도의회는 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행정사무조사에 돌입했고 제주도도 전문조사팀(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하여 공사 전반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했다.

제주도의회와 제주도 조사팀이 각각 별도로 조사를 벌인 결과, 현재 해군이 강정마을에 건설하고 있는 항만은 애초에 공언했던 15만 톤급 크루즈선 두 척이 동시에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관광미항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도의회는 물론이고 그동안 정부와 유대의 끈을 붙잡고 있던 제주지사도 정부를 향해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지난 9월 30일에 국방부와 해군에 보낸 공문을 통해 "현재 진행되는 민군복합항은 15만 톤급 크루즈선 두 척이 동시에 이용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항만공사에 대해 재검증에 나설 것과 요구했다. 그리고 "검증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2009년 4월)기본협약서를 체결했던 다른 당사자인 제주도와 국토해양부와 공사와 일정 등에 대하여 반드시 사전에 협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공개적인 답신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을 동원하여 공사장에 들어간 대학생들을 폭행했으며, 폭약을 이용하여 구럼비 바위를 폭파했다. 해군이 공문을 보낸 제주지사를 철저하게 무시한 셈이다.

제주도는 해군을 향해 "해군의 일방적인 업무 행태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시험발파를 강행할 경우 제주도로서는 향후 도정의 정책 방향과 의지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반격에 나섰다. 이젠 제주도의 공식적인 요청까지도 작정하고 무시하는 해군의 태도에 적잖이 불쾌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도내 교수들과 시민사회단체, 강정마을회, 야5당이 도지사에게 제대로 특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a  지난 6일 제주도 야5당 대표들이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근민 제주지사에게 "정부와 해군에 대해 공개사과와 공사 중단 및 원점재검토 등을 요구하라"고 압박했다.

지난 6일 제주도 야5당 대표들이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근민 제주지사에게 "정부와 해군에 대해 공개사과와 공사 중단 및 원점재검토 등을 요구하라"고 압박했다. ⓒ 장태욱


7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는 제주도 내 교수 133명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교수들은 "(해군이) 도민들과 지사의 요구도 묵살한 채 해군은 구럼비 발파작업을 시작하는 폭거를 저질러…제주도민의 자존심을 일거에 무너뜨렸다"고 규탄한 뒤, 우근민 지사에게 "도지사직을 걸고서라도 강력하게 공사 중단을 정부와 해군에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정마을회와 군사기지 저지 범대위도 같은 날 오후 3시에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해군이) 제주의 미래를 파괴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우리는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제주도가 이미 해군의 행동에 대해 강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특단의 조치를 당장 실행하라"고 요구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기 전날, 제주도 야5당도 기자회견을 열고 도지사에게 야5당의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야5당은 이 자리에서 "정부와 해군이 도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며, 적대시하고 있다…정부와 해군의 야만과 폭력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근민 지사를 향해서 "절대보전지역변경처분취소권과 공유수면매립승인취소권 등 실질적인 힘도 가지고 있음을 직시하여, 정부와 해군에 대해 공개사과와 공사 중단 및 원점재검토 등을 요구하라"고 압박했다.

해군기지 공사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수많은 문제와 도민사회의 요구에 대해 우근민 제주시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아직까지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다만 해군이 기지공사와 관련하여 제주도를 더 이상 협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상태에서 뭔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우근민 지사가 어떤 행보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지 그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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