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비극의 축제'를 아시나요

[두물머리 통신 ④] 두리반 지키던 뮤지션들, 두물머리로 달려간다

등록 2011.10.11 14:39수정 2011.10.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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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4대강 공사 완공행사를 연다고 하지만,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는 '한 삽'도 뜨지 못했습니다. 경기도는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그대로 둘 수 없다면서 행정대집행을 위해 3차 계고장을 발송했지만, 오는 15일 두물머리 유기농 공동체는 강변가요제를 엽니다. 경기도가 강제집행을 하지 않는 한 '두물머리 통신'을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기자 말>

a  The Punishment of Midas c. 1620 - Hendrik de Clerck. 음악경연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미다스.

The Punishment of Midas c. 1620 - Hendrik de Clerck. 음악경연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미다스. ⓒ 자료사진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해 밤잠을 설쳐가며 즐거워했던 미다스 왕은 탐욕의 전형이다. 마
침내 먹는 음식까지 금으로 변해 굶어죽을 처지에 놓이자 디오니소스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미다스 왕은 이제 아둔함의 전형이다. 그런 미다스 왕에게 또 다른 설화가 있으니 우리가 익히 아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다.

어느 날 아둔하고 욕심 많은 미다스 왕이 음악경연대회에서 심판을 보게 되었다. 참가자는
둘이었다. 아폴론과 숲의 신 마르시아스였다. 선수입장! 아폴론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심판석에 앉은 미다스는 귓구멍을 후벼 파며 아폴론의 노래를 심히 불성실하게 들었다. 아폴론 23점! 다음 차례는 마르시아스! 마르시아스의 노래는 시종 흐느끼듯 미다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미다스는 엄청 감동한 나머지 100점 만점제인데 500점을 주었다.

마르시아스는 자신의 가창력을 믿었기에 우승컵을 받아들었지만 별로 기쁘지 않았다. 반면 아폴론은 신들 사회에서 갖는 자신의 포지션도 있고 해서 몹시 쪽팔려했다. 격한 감정대로라면 미다스를 당장 지하세계의 하데스한테 보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치졸할 줄 몰랐다는 얘기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아폴론은 머리를 한참 굴렸다. 얼마나 굴렸을까? 아폴론은 결론을 내리고 행동에 옮겼다. 미다스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그 미다스가 이번에는 디오니소스의 단짝인 실레노스를 찾았다. 실레노스는 머리와 다리가 짐승이고 가슴과 팔이 인간인 괴물이다. 미다스는 괴물 실레노스에게 아주 심각한 철학자의 목소리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실레노스는 뿔이 둘 달린 거대한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 쾌락과 우연과 수고가 낳은, 쉽게 말해 섹스의 결과물인 이 가련한 자여! 왜 듣지 않느
니만 못한 말을 내게서 듣고자 하는가? 안됐지만 당신에게 가장 큰 행복은 당신의 능력과는 무관하다.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 존재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태어났으니 어쩌란 말인가? 두 번째로 좋은 것? 아, 그것을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가? 빨리 되지는 것뿐이다."

너무나 절망스럽고 황당한 나머지 미다스는 자신의 당나귀 귀를 잡아당겨 입으로 물어뜯었다. 담배를 뻑뻑 빨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것은 KT&G에서 씨월대는 설이 아닐까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실레노스의 말에 살맛을 잃은 오늘의 사람들에게 니체의 처방전이 전해지고 있음은 불행 중 다행이다.


"실레노스의 말에 탄복한 나머지 이제 죽고자 한다면 경청할지어다. 비극은 우리에게 제시
된 새로운 형태의 미적 의식일 뿐이다. 무슨 소리냐? 비극적 세상과의 단절, 우리 모두 황
도천을 넘으라는 말이냐? 천만에! 희망의 시선, 욕망의 시선 외에도 비극적 시선으로 세상
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는 얘기다. 이때 주의할 사항! 음악은 우리의 시선에 풍요로움과 깊
이를 한없이 더해준다. 음악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의지 자체
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예술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두리반, 그 비극의 축제


a  악기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두리반 사람들. 531일일 동안 두리반은 쉼없는 축제의 장이었다. 비극의 축제.

악기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두리반 사람들. 531일일 동안 두리반은 쉼없는 축제의 장이었다. 비극의 축제. ⓒ 두리반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 칼국수보쌈전문점 두리반이 있었다. 두리반은 2009년 12월 24일에 강제철거당했다. 탐욕의 시선 앞에 두리반은 보이지 않았다. 단 한 차례의 협상도 필요 없을 만큼 무생명체였던 것이다. 두리반은 강제철거에 맞서 531일 동안 농성했다. 생명체임을 쉼 없이 알렸다. 그것은 축제였다.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850여 인디밴드 중 무려 250여 밴드가 두리반 축제에 연대했다.

인디밴드들, 실은 그들 역시 쫓겨난 자들이다. 천민 자본에 떠밀려 신촌에서 홍대 앞으로 쫓겨 왔으나 홍대 앞에서도 더는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공연할 클럽의 월세는 불과 몇 년 새에 두세 배나 뛰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몇 클럽은 재개발지역으로 묶여 곧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공연할 공간이 이 모양인데, 뮤지션들이 먹고 자고 싸야 할 지하방이나 옥탑방의 월세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왜 우리는 사람을 끌어 모았으되, 돈만 아는 저질들한테 쫓겨나야 하는가? 왜 우리의 존재
는 날마다 상업자본의 총알받이가 되어 나가떨어져야 하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뮤지션들은 건설자본에 농락당한 두리반으로 모여들었다. 다큐상영회, 촛불예배, 문학포럼, 낭독회, 3층강좌를 통해 생계터전이 박살난 두리반을 평면적으로 알리는 동안, 뮤지션들은 음악을 통해 두리반이 가고자하는 최후의 의지를 배가시켰다. 비극의 현장에서 전자가 비극의 진실을 알리는 동안, 음악은 비극의 축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 결과, 비극을 외면해온 이 땅의 관객들은 비극을 주목했다. 아들과 운전수를 위장 취업
시켜 세금을 포탈한 좀팽이가 약속한 747공약의 희망 대신, 관객들은 비극의 시선에 주목
했다. 모로 가도 5년이면 정권이 바뀐다는 희망의 시선 대신, 관객들은 비극의 시선에 주목
했다.

비극의 축제는 그치지 않았고 비극의 축제는 계속되었다. 그러니 탐욕의 시선 말고는 다른
어떤 시선도 없었던 건설자본에게 비극의 축제는 당혹스러웠다. 건설자본은 이례적인 철거 현장의 축제를 두고, 좀처럼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두리반이 생명체임을 인정하고 두리반이 홍대 앞 인근에서 다시 문을 열어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2011년 6월 8일의 일이다. 두리반이 농성을 시작한 지는 531일 만이다.

또 다른 비극의 현장으로 달려간 뮤지션들

a  두리반 51+ 자립음악가대회, 세계노동절에 맞추어 행사가 진행된 두리반의 축제. 51개의 인디밴드와 수천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두리반 51+ 자립음악가대회, 세계노동절에 맞추어 행사가 진행된 두리반의 축제. 51개의 인디밴드와 수천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 박김형준, 두리반


뮤지션들은 떠났다. 그들은 비극의 중층결정 지역인 두물머리로 향했다.

두물머리는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유기농을 살리겠다고 맹세한 약속의 땅이다. 두물머리는 4대강사업을 저지하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탐욕의 시선은 유기농지를 철거해 자전거도로와 공원을 만든다고 했다. 탐욕의 시선은 강심을 파헤쳐 보를 만든다고 했다. 탐욕의 시선은 수도권 식수원 윗물에 오리보트와 잉꼬보트를 띄워 관광객들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마침내 그렇게 했다. 탐욕의 시선 앞에서 농민들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탐욕의 시선 앞에서 강물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탐욕의 시선 앞에서 담양쑥부쟁이와 수달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탐욕의 시선은 언제나 희망만을 얘기했다. 자신들이 투기한 강변땅값의 시세차익으로 벌어들일 돈의 희망만을 얘기했다. 4대강사업비용 60조 원 중 자신들에게 돌아올 돈의 희망만을 얘기했다. 두물머리의 농민들은 지난 3년 동안 일관되게 그 탐욕의 시선과 맞서 비극의 시선에 대해 말해왔다. 두물머리 미사터에서는 600일이 다 되도록 생명평화미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비극의 시선은 탐욕의 시선에 의해 늘 짓이겨져왔을 뿐이다. 10월 22일, 마침내 탐욕의 주인공들은 4대강토건사업의 완공행사를 열기로 했다. 돈만 아는 저질들이 돈 잔치를 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그 비극의 진정성에 생명을 불어넣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뮤지션들이 두물머리에 함께하고 있다. 뮤지션들은 말한다.

"10월 15일, 두물머리로 오라! 비극의 축제, 무섭게 타오르는 그 비극미의 정점에서 돈만
아는 저질들을 아름답게 농락하자!"

a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포스터. 3개 스테이지에 총 26개 밴드가 출연한다. 스테이지 외에도, 먹거리 장터, 벼룩시장, 4대강 싫어 물풍손, 날밤독립영화관, 두물머리 나이트 댄스파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포스터. 3개 스테이지에 총 26개 밴드가 출연한다. 스테이지 외에도, 먹거리 장터, 벼룩시장, 4대강 싫어 물풍손, 날밤독립영화관, 두물머리 나이트 댄스파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덧붙이는 글 | *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누리집 : http://riverun.org/dmf
* 유채림 기자는 소설가입니다.


덧붙이는 글 * 두물머리 강변가요제 누리집 : http://riverun.org/dmf
* 유채림 기자는 소설가입니다.
#4대강사업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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