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노순택
단식과 영성 치유를 함께 하는 순례자, 스스로 '나이 칠순이 넘은 노전사'로 소개하는 생명평화결사 100일 순례단장 권술룡. 그는 해군에게 수용 당한 농로 주변 밭에 고구마를 심고 해바라기 씨를 뿌렸다. 또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를 위해 세운 중덕해안의 비닐하우스를 가리켜 "강정의 비닐하우스가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집인 까닭은 바로 이곳이 세계평화의 순례지로 거듭 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들어온 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강정과 호흡을 같이하니 토박이 제주사람들이야 더 이를 게 없다. 민주노동당 전 의원 현애자의 쇠사슬 투쟁은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는 진보 정치인의 비장한 의지의 결과다.
현애자의 싸움이 비장미로 점철되어 있다면 트위터를 통해 강정마을 소식을 전하고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 온라인 정당 '강정당'을 만든 춤꾼 김세리의 그것은 훨씬 흥겨운 것이다. 강정당의 첫 사업은 제주도지사에게 공사를 직권으로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자필 서명운동이었다.
'한 5천 명만 모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만에 무려 2만6313명이 자필서명 용지를 우편으로 보내왔으니 요샛말로 '대박'을 쳤다. "상식이 짓밟히면 누구나 분노하죠.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라는 그는 자신을 확신범으로 만든 주범이 '군사주의와 부당한 공권력'이었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가치 하나는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강정마을 회장 강정균. 그가 생각하는 평화는 단순 명쾌하다. "친구 만나면 술 한 잔 나누고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고…… 이웃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평화라고 생각해요."
기름통에 그린 군사용 경고가 아이의 눈을 통해 '평화를 위한 경고'로 극적 반전을 이루고 있는 그라피티(graffiti, 낙서화)를 그린 작가 고길천은 '시내(제주) 사람'이다. 자신의 'DNA 자체가 제주도고, 제주도로부터 모든 것을 수유 받는다'는 그는 촘스키 교수와 미국 학계 인사 40인의 지지를 이끌어낸 주인공이었다.
군사기지 문제는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 살아온 마을사람들 사이에 굵직한 경계를 만들어 놓았다. '평화 백합꽃' 키우는 '액비맨' 강희웅. 형과 200미터 간격으로 살지만 형제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해군기지 문제가 피붙이조차 갈라놓은 것이다.
4·3 때에도 드문 경우라며 마을 주민들은 안타까워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형제가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궨당'이라고 불리는 제주의 독특한 정서에도 굳이 기지 반대운동에 나선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고통 받게 생겼는데 세상 어느 부모가 그걸 모른 척합니까."
물질한 지 28년 된 이웃 법환마을 해녀회장 강애심도 형님 아우로 정을 나누던 강정마을 해녀회와 남남이 되었다. 강정의 해녀회가 보상금을 받고 기지 건설에 찬성하자, 그이는 143명 법환마을 해녀들을 모아 강정마을 해녀 몫까지 싸웠다.
"바다를 판 해녀는 해녀자격이 없어요. 아무리 돈이 귀중하다 해도 영원히 바다를 버린다는 것은 용서가 안 됩니다." 그이에게 바다는 '어려울 때 사람을 살려주는 곳'이다. 그런 바다에 물고기들은 강정과 법환바다를 넘나들지만 사람들은 담을 치게 된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 '복잡한 것은 단순함으로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