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사물이라고 봐야'하는 좀 긴 시간"

[서평] 박재동의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등록 2011.11.23 20:06수정 2011.11.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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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겉그림 〈손바닥 아트〉

책겉그림 〈손바닥 아트〉 ⓒ 한겨례출판

▲ 책겉그림 〈손바닥 아트〉 ⓒ 한겨례출판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소중해 지고 꽃을 그리면 꽃이 소중해 지고 돌맹이를 그리면 돌맹이가 소중해진다."

 

이는 박재동이 쓰고 그린 <손바닥 아트〉의 표지 그림에 새겨진 글귀다. 그가 10년부터 그런 그림을 그렸으니 지금쯤 수천 점이 쌓이지 않았을까?

 

그때마다 모아서 가끔씩 전시회도 했고, 이번에는 그 중에서 220편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제1부 '마음을 그리다', 제2부 '손바닥 만인화', 제3부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 제4부 '풍경의 안과 밖', 제5부 '찌라시 아트'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육교 위 노점상 상인, 택시기사, 지하철에서 노래 듣는 아가씨, 동네 앞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 대학생, 정원 벤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 과일장수, 포장마차 아줌마가 바로 그들이다.

 

"노량진 역 옆 신발가게 SPRIS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솔나리에게 들렀다. 같이 일하는 종업원 오빠(복학하기 전까지 일한다는) 말이 솔나리가 손님한테 싹싹하게 일을 잘한다고 한다. 무척 기분이 좋다. 자식이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잘 한다는 것만큼 듣기 좋은 소리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대학 진학을 못하고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화목하게 일하면서 살면 안 되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꿈을 위해 진학을 했으면 하는 게 아비의 심정이다. 이런 점원이 안 되려고 신분상승을 위해 가는 대학이 아니라 언제든 더 배우고 싶을 때 가는 것이 대학인 세상을 꿈꾸어 본다." (본문 중에서)

 

간혹 유명인들도 그려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범함을 초연한 평범한 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손 그림들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명진 스님과 김예슬에 관한 손 그림이 그것이다. 아울러 동갑내기 만화가 이희재에 대한 진솔한 고백도 살갑게 다가온다. 만화계의 대부인 <고바우> 김성환 선생에 대한 근황은 정말로 인상 깊다.

 

"<고바우> 김성환 선생은 요즘 아이들은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 신문 만화의 살아 있는 역사이시다. 이승만 시대부터 탄압을 받아 오다 박정희 시대에는 절정을 맞는다. 언제나 꿋꿋하고 의연할 뿐만 아니라 매우 영리하기도 하다. 탄압을 할라치면 '해라, 외신이 좋아할 걸?'하고 오히려 기다리기도 했다 한다. <고바우> 만화 연재를 1만4319회 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일이다. 우표 수집의 대가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손 그림은 그렇게 따뜻하고 살가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가끔 코믹한 그림들이 들어 있어서 박장대소하게 한다. 가령 남자 화장실에 청소부 아줌마가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서 이렇게 적어놨다. 나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다.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다. 서로를 사람이 아니고 '사물이라고 봐야'하는 좀 긴 시간"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번뜩이는 지혜도 얻게 한다. 물고기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손 그림이라든지, 여자 구두 속에 여러 동물들이 사는 모습이라든지, 꽃이 피어 있는 지하철 풍경을 연상하는 그림,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누워서 책을 보는 아이들 그림은 상상의 나래를 넘어 기발한 현실 아이디어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2011.11.23 20:06ⓒ 2011 OhmyNews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박재동 지음,
한겨레출판, 2011


#박재동 화백 #손바닥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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