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서울시청 토건족'에게 당했다고?
"이상만 좇으면 실패... 난 슬로건 운동가 아냐"

[인터뷰] 취임 두 달 앞둔 박원순 서울시장... "혁신과 통합 진전 보며 입당 시기 결정"

등록 2011.12.23 15:14수정 2011.12.2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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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유성호

지난 20일자 <경향신문>에 매우 도발적인 글이 한 편 실렸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경제학)가 '시청 토건족 그리고 박원순의 위기'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연재물에 올린 것. 이 도발적인 글의 요지는 "박원순 시장이 '시청 토건족'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오염지역의 '친환경 스케이트장'에서 처음 토건족한테 당했고, 가락시영 '종상향'으로 반은 먹혔다. 서울시 안의 토건족 관료들 그리고 그들에게 줄을 대고 있는 토건 교수들이 한 달 만에 다시 기지재를 켜기 시작했다. 그들 입에서 '박원순, 별거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대로 가면 박원순도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우 박사는 "박원순 시장이 김상곤의 길이 아니라 노무현의 길에 가깝게 가 있다"고도 했다. 모피아(재정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과거 재무부의 영문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편집자주) 등 관료집단에게 학습당한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한미FTA를 추진했듯이 박원순 시장도 '시청 토건족'과 손을 잡고 '가락시영 종상향'과 같은 '토건주의 도시개발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시민의 정부가 '토건의 정부'로 변질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하면서 박 시장의 핵심참모인 김수현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장을 불신임하라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이상만 추구하면 현실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경향신문> 12월 20일자.
<경향신문> 12월 20일자.경향신문 PDF

우 박사의 칼럼을 챙겨서 읽은 박 시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의 한 인사는 "특히 지지자라고 생각했던 우 박사가 그런 칼럼을 써서 박 시장이 열 좀 받았다"며 "우 박사가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유성호
박 시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의 서울시장인 저는 우 박사처럼 언론의 자유를 즐기지 못한다"며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에도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시장은 "우 박사 이야기는 지나치다"고 지적한 뒤, "가락시영 종상향 결정은 독립적인 의결기구인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거기에 시 소속 공무원이 일부 가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 시장은 "2종에서 3종으로 상향됐지만 늘어난 20% 용적률은 임대주택(959세대)과 관련된 것이고 생태구역, 보행자 편의 보도, 복지시설 등 공공성이 많이 지켜졌다"며 "이 지역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일반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시장은 "임대주택 8만호 건설이라는 선거공약 때문에 종상향을 결정한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하는데 공약에 집착해 그것을 결정한 게 아니다"라며 "최선을 다하면 되지 선거공약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일각의 시각을 일축했다.  

박 시장은 '가락시영 종상향 결정을 재심의하라고 도시계획위원회에 지시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도시계획위원회가 (독립된) 의결기구인데 그걸 할 수 있나"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날 인터뷰에 배석한 류경기 대변인은 "어떤 상황의 변화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박 시장은 "후락했고 불편해서 도저히 살 수 없다며 옥인동 뉴타운에 찬성하는 분들의 개발욕구에도 합리성이 있는데 이것이 현실적인 행정가들의 고민"이라며 "우 박사 등이 하는 얘기는 이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이렇게 많은 주민들의 욕구와 그들의 현실이 있어서 무작정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박 시장은 "우 박사가 스케이트장을 토건사업이라고 했던데 왜 그게 토건이랑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확히 이해하고 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5년째 스케이트장으로 쓰고 있고 1년에 20만~3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돼 취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나도 시민운동을 해봤지만 이상과 현실을 잘 접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이상을 놓치면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수구가 되고, 그렇다고 이상만 추구하면 현실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며 "김상곤 교육감이든 노무현 대통령이든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우 박사가 서울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며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이 많이 고뇌하고 많은 현실적인 이해 사이에서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독선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박 시장은 "나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부패방지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수십 개의 법률안을 개정하거나 제정했다"며 "이론보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늘 생각해왔고 서울시에 와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기존의 관료시스템으로 보면 내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나는 일반 시민운동가와 다르다"며 "주변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따지는 사람이어서 큰 이론이나 슬로건으로 하는 운동가와는 다르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 수사, 검찰의 명예와 신뢰가 달린 문제"

유성호
최근 큰 논란이 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과 관련, 박 시장은 "이것은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와 선거제도를 유린하는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국가기관에서 충분히 조사하고 그에 대한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게 중요한데 계속 은폐했던 부분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며 "단독범행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공범이 있고, 돈거래가 있었다는 걸 보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신뢰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이 사건은 검찰의 명예와 신뢰가 달린 문제"라며 "만약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하면 특검으로 가고, 특검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면 그렇지 않아도 신뢰가 많이 떨어진 검찰은 더욱 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통합당 입당 시기와 관련, 박 시장은 "무조건 입당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라며 "내가 얘기한 '혁신과 통합'이 진전되는 걸 보면서 입당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민주통합당과 진보통합당이 완전히 통합되면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며 "좀더 큰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욕구가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좀더 큰 혁신과 통합에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하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박 시장은 일부 언론에서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후보직을 포기한 상태에서 박 시장에게 후보직을 넘겼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언급할 가치가 없는 얘기"라며 "설사 안 교수가 정말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의절할 수 없을 정도로 안 교수와 제가 만들어온 우정이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서울시장보다 더 큰 꿈을 꾸기 바라냐'는 질문에는 "내가 바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본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박 시장은 강용석 의원이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의혹들을 계속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 "외국의 경우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바로 보도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누가 뭐라고 하면 바로 보도하니까 그런(강용석 의원과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박 시장은 "나는 이번 선거(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언론이 '3류 옐로 페이퍼'랑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며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판단해서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터뷰 전문은 딸림 기사 참조).

유성호

#박원순 #우석훈 #가락시영 종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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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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