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후보 공천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치인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한다. 심지어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는 '노무현정신'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야권단일후보 1위를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노무현의 부활'이라고 할 만한 시대가 다가왔다. 앞으로의 총선과 대선 모두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말하고 있지만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적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소탈한 전직 대통령부터, 나라를 위기에 빠지게 한 무능한 정치인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구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의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 그가 시행했던 정책도 역시 피상적인 이미지로 만 소비되고 있다.
그런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로스쿨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세상에 나오는 이 순간에도 로스쿨에 대한 이야기는, 찬성하는 사람은 그저 사법개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저 부자들을 위한 귀족학교로,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로스쿨이 왜 도입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세상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어떤 정책이였는지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진다.
로스쿨 이전의 사법시험 제도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폐단이 있었다. 전관예우, 사회현실과 괴리된 법조인, 고시낭인 등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의 제도였다. 하지만 이런 사법시험 제도가 수십 년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건 단 하나의 이유였다. 바로 계층상승의 욕망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시험만 통과한다면 '영감님'이 될 수 있다는 계층상승의 희망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사법시험 제도는 그런 역할을 수행해왔고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논거도 그런 계층상승의 희망이였다. 그리고 심지어 로스쿨을 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사법시험 제도의 수혜자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계층상승의 희망을 줘야만 한다고 역설했던 대통령이자 스스로 그런 기회를 이용한 대통령이 그 제도를 폐지한 이유는 생각 외로 단순하다.
왜냐하면 사법시험 제도는 사실상 신분상승의 기회라는 순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법률저널>이 2009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고시생이 평균 한 달에 소비하는 돈은 70~100만원이 31.6%로 다수를 차지했고 100만 원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18.1% 이상이였다. 그리고 이 비용 부담자는 73%가 부모이고 12.4%가 부모와 스스로가 함께 부담한다고 했다. 80% 이상의 부모가 자녀의 수험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2012년 2월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261만 원이였다. 수험비용에 대한 조사년도가 2009년이라는걸 고려해볼때 평범한 가정이라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수험비용으로 투자해야 한다. 사실상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만이 고시생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이 되기에는 고시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턱은 학벌의 벽을 더하면 더욱 공고해진다. 2012년 42기 사법시험 연수생의 출신 대학을 분석하면 서울대 29.7%(290명), 고려대 18.6%(181명) 연세대 12.5%(122명), 이른바 SKY가 차지하는 비율이 60.9%(593명)으로 단 3개의 대학이 과반을 차지한다. 거기에 흔히 말하는 서울 상위권 대학인 성균관대 79명(8.1%), 한양대 69명(7.1%)을 더하면 사실상 70~80% 이상을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 독점하고 있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 진학하는사람들이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라는 걸 감안해본다면 사법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의 문은 저소득층에게 사실상 봉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하고 학벌이 좋지 않더라도 열심히만 하면 합격할 수 있던 시험에서 부유하고 좋은 학벌을 가져야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으로 사법시험을 극적인 변화를 거친 것이다.
사법시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계층상승이 로또에 불과한 환상으로 변했을 때 사법시험 제도에는 분명 강한 변화가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로스쿨을 선택했다. 로스쿨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을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사법시험의 비용 부담자는 100% 가족과 본인의 부담으로 이루어진다. 수험생활에서 들어가는 의식주와 교육비 어떤 부분에서도 국가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힘든 과정을 거쳐서 합격한 사람은 본인의 노력과 가족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 어디에서도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에게 받은것이 없는 법조인이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기존의 법조인들은 국가가 아닌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로스쿨은 사적으로 이루어지던 법조인의 과정을 공적인 영역으로 포함시켰다. 로스쿨을 통해서 국가가 교육을 시키며 등록금을 정부가 보증해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사법시험제도에서는 하기 힘든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특별전형 등을 통해 성적이 부족하더라도 가난한 계층을 위한 평등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 기존의 사법시험 제도에서 국가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로스쿨에서는 부족하나마 국가라는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로스쿨은 설립될 때부터 지역에 안분되어 설치되었다. 이 덕분에 지방대에서도 서울권 대학과 비슷한 수준의 법조인을 배출할 수도 있으며 지방 대학생들도 쉅게 법조인의 길에 대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결국 학벌제도가 완화되고 다양한 출신 성분의 법조인이 탄생할 수 있다. 그로 인해서 지역대학에 우수한 인재가 와서 또 다른 활력을 얻게 해줄 수 있다.
이처럼 로스쿨은 도입되는 순간부터 두가지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가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영역으로 전환해주는 것이며, 두 번째로 지역대학에 대한 부활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로스쿨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사법시험 제도에서도 신분상승은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매년 만들어진다. 이처럼 학벌과 가정형편 등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영웅 같은 사람들은 매년 있다.
하지만 로스쿨은 그런 영웅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힘들다. 하지만 로스쿨은 하나의 제도이다. 영웅이 되지 않아도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가난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기회를 줄 수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겠지만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제도적인 기회를 통해서 법조인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이처럼 영웅이 되지 않더라도 제도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부족한 사람을 공동체가 도와줘서 성공한 사람을 만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정말 공동체에 대한 감사함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것이다.
단지 스스로의 힘으로만 성공한 사람에게 공동체가 정말 그에 대한 보답을 요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로스쿨의 의의에도 불과하고 실제 실행되고 있는 로스쿨의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로스쿨 입시에서도 특정대학 선호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장학제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을 말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누구도 로스쿨에 설립 의의를 살릴 수 있는 국가의 개입을 말하고 있지 않다. 사법개혁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지금도 로스쿨에 대한 정책은 여당 야당 어디에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정을 표방하는 민주통합당에서조차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에 대한 실행과 정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게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마케팅의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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