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구박한 며느리... 이건 아니죠

눈물 흘리며 딸집으로 피신한 할머니, 괜찮으시죠?

등록 2012.03.09 13:10수정 2012.03.0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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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한 분이 사진관에 오셨는데 왠지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다. 따듯한 차부터 한잔 내어드렸더니 결국은 눈물을 떨어트리고 마신다. 어떤 사연으로 하여금 생면부지의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됐는지…. 가슴이 시려온다.


동전지갑에서 증명사진을 하나 내어 주시는데 할아버지 사진이다. 돌아가신지 이태가 됐는데, 며느리 구박이 심해 딸 집으로 피신을 하신단다. 며느리가 찾으러 올 테니 할아버지 사진을 크게 만들어 액자에 넣어 달라고 하신다. 시어머니를 구박해서 내쫒는 며느리가 돌아가신 시아버지 영정사진을 찾으러 온다?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틀이 지나 전화가 왔다. 며느리였다.

"아저씨!"

아이고,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수화기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

"아저씨 죽은 사람 사진을 왜 재수 없게 방에다 걸어놔요. 아저씨 같으면 그러겠어요? 노인네가 만들어 달라고 해도 아저씨가 말려야지, 장사를 왜 그렇게 해요 동네에서. 지금 갈게요."

사진 장사 20년 만에 손님과 싸우다


a  동강할미꽃, 우리도 이다음에 늙으면 할미꽃처럼 고개를 숙이겠지요.

동강할미꽃, 우리도 이다음에 늙으면 할미꽃처럼 고개를 숙이겠지요. ⓒ 조상연


별난 사람 다 있구나 하고 있는데, 집이 가까운지 어느새 식식거리며 들어온다. 얼굴이 익은 꽤나 젊은 여자였다. 어차피 영정사진을 곱게 찾아갈 사람도 아닐뿐더러 찾아간다 해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게 뻔해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돈으로 돌려줬다. 그러더니 눈을 흘기며 장사를 그따위로 하느냐 삿대질이다. 삿대질하는 손가락을 잡아채 있는 힘껏 움켜쥐고 한마디해줬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손님들하고 싸우지 않았는데, 사진관 열고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신, 아들만 둘 있죠?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도 아들한테 지금 당신이 하는 짓 그 이상으로 당할 테니 두고 보쇼.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하늘이 당신을 벌할 거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오."


여자 얼굴이 벌겋게 변하더니 손가락이 부러진 것 같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나간다. 한식경이 지났을까 이 여자가 웬 어줍은 사내 녀석 하나를 끌고 와서는 저 사람이 자기 손가락 을 부러트렸다느니 욕을 했다느니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사내에게 설명을 한다. 그러나 여자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상황은 역전되고 말았다.

"어? 형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라니? 내 사진관에 내가 사장이다. 왜?"
"예, 그렇군요. 장사는 잘 되세요?"
"장사 안 되면 네가 먹여 살릴래?"
"아이고 형님 여전하시네요. 하하."

"웃어? 옆에 있는 사람이 네 아내냐?"
"예, 형님."
"예? 나한테 할 말 없냐?"
"예?"

"네 어머니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아냐? 네 마누라 등쌀에 집 나가신 거 알아 몰라? 이런 못된 놈."
"죄송합니다, 형님."
"아이고 답답해! 네 어머니한테 죽을 죄를 지어놓고 왜 나한테 죄송해?"
"아무튼 죄송합니다."
"어머니한테 잘 해드려.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
"예. 죄송합니다."

a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 조상연


젊은 부인이 분이 안 풀려 신랑이라고 데려왔는가 본데 하필이면 예전에 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후배였다. 사진관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어이없는 광경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밖을 내다보니 둘이서 티격태격하며 가는데 기어코 저 잘났다며 후배 녀석을 닦달하는 모양새다.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큰 소리로 둘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길 한가운데 서서 동네가 떠나갈 듯 큰소리로 후배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다.

"야! 이놈아! 너, 아내 잘 가르쳐서 데리고 살든지 해야지 안 그러면 네 인생 종친다. 네 인생만 잘못되면 괜찮은데 어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인생마저도 서글퍼지는 거여.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네 마누라 생각 고쳐먹거들랑 어머니 모셔다 놓고 형 좀 초대해라. 어머니 모시고 정답게 술 한잔하자. 알았냐?"

지나던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 그 여성은 창피한 줄은 아는지 부랴부랴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후배 녀석의 뒷모습이 며느리에게 쫓겨나는 녀석의 어머니만큼이나 처량 맞다. 바보 같은 녀석.

a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 조상연


<효경>(孝經)의 '기효행장'(紀孝行章)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부모가 집에 계실 때에는 공경을 다하고 즐겁게 해드리며, 편찮으실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그 슬픔을 다한다. 그리고 영혼을 제사 지낼 때에는 그 근엄함을 다한다." 

굳이 <효경>(孝經)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물가 물 긷는 아낙도 아는 보편적인 상식이 아니던가? 나중에라도 자식에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식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부모님께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언젠가는 무덤가에 피어난 할미꽃처럼 고개 숙일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영정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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