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치 떨어진다... 금 모으세요

[서평] 한 나라의 화폐정책, 트라우마가 결정... <화폐 트라우마>

등록 2012.03.13 11:18수정 2012.03.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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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를 당한 후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후 넥타이를 매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의학용어로는 트라우마(Trauma)라고 한다. 어떤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신체적인 손상의 회복과 관계없이 충격시 받았던 정신적인 타격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을 말한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사고를 당했을 때와 비슷한 환경에 놓이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불안해하며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이전의 충격을 재경험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트라우마를 치료할 때는 상담 및 적절한 수준의 약물 투여는 물론, 트라우마를 자극하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잘 조절해줘야 한다. 

독일의 신문 <디벨트(Die Welt)>지의 경제 기자인 다니엘 D.엑케르트가 지은 <화폐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작용하는 트라우마의 이러한 특성을 국가차원까지 확장시켜, 지금 이후의 세계의 화폐·금융정책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예측한 책이다. 엑케르트는 이 책에서 미국과 중국, 유럽 등 현재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트라우마들과 그 트라우마들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지를 분석했다.

미국인과 달러의 트라우마, 1929년 대공황

a  <화폐 트라우마>

<화폐 트라우마> ⓒ 위츠

현대의 화폐는 국가에 의해 유통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맞춰 화폐를 더 찍어 경기부양을 유도하기도, 유통되는 화폐의 양을 줄여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도 한다. 결국 화폐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조절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적확한 판단을 했음에도 도저히 화폐 정책에 옮길 수 없는 예외 상황이 있다. 바로 국민이 싫어하는 경우, 경제적인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경우다.

저자는 세계를 지배하는 화폐로 미국의 달러, 중국의 위안, 유럽의 유로를 꼽았다. 달러와 위안, 유로는 해당 국가의 역사적 사건에 따라 각각 다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한 나라의 트라우마는 그 나라의 행동양식을 규정하게 된다.

달러의 트라우마는 1929년의 대공황이다. 산업생산량이 50% 가까이 줄어들고 남성인구의 1/4이 실업자로 전락했던 대공황에 대한 공포는 미국 국민들의 뇌리에 지금도 뿌리깊게 박혀있다. 미국의 정치가들은 국가 경제가 붕괴됐던 대공황 때 긴축정책을 펼쳤던 것이 경기 후퇴를 대재앙 수준으로 몰고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절대 긴축정책을 펼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긴축정책은 국가의 부채가 많아졌을때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미국은 대공황의 트라우마 때문에 긴축정책을 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럼 미국은 어떻게 국가 부채를 줄일까? 답은 돈을 더 찍는 것이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미국은 돈을 찍어서 빚을 갚으면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달러의 가치가 폭락한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달러를 대규모로 찍어내면서 이러한 달러 약세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외환보유고를 달러로 채우고 있는 약소국들은 앉아서 돈을 까먹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포함한 달러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미국의 화폐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달러 이외에 금이나 위안, 유로 등 여러 가지 화폐로 외환을 다변화시키는 것이다.


"금, 유일하게 남은 가치보존 수단"

위안의 트라우마는 화폐붕괴이다.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 많은 화폐의 명멸을 경험한 중국인들은 자국 화폐의 가치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서 중국은 위안을 은행이 아니라 정부에서 직접 통제하며 위안화의 시세를 타국이 결정하지 못하도록 만전을 기한다. 중국의 경제력에 비해 위안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막대한 상품들을 쏟아내는 중국이 수출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있어 가치가 저평가된 위안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근 기축통화로서의 위안에 대한 기대감이 다소 과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중국의 폐쇄적인 정치 시스템을 거론하며 중국의 위안이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중국이 꾸준히 미국 국채를 매입하며 미국의 위상을 차근차근 해체시키고 세계 여러나라들과 더 활발한 무역을 하게되면 2040년 쯤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소비국가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로의 트라우마는 복합적이다. 유로는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독일의 존재가 바로 트라우마다. 그래서 유로의 다른 나라들, 특히 프랑스는 유로 안에서 독일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무조건 견제하는 양상을 보인다.

반면 독일의 트라우마는 인플레이션이다.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독일은 자국 경제 안에서 극도의 인플레이션을 맛봤고 그래서 항상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며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늘 긴축정책을 선택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최근 유로존 내의 많은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려고 하는데 독일이 계속 긴축재정이 필요하다며 제동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금에 대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치가 흔들리는 지금 '유일하게 남은 가치보존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많은 양의 금을 외환보유고로 보관하고 있으며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도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도 이 흐름에 편승하며 호주 달러나 브라질 레알, 인도 루피 등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화폐에 투자해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화폐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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