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선수와 런던 올림픽에 가는 것"

강석인 감독, '마린보이' 박태환 코치에서 장애인 수영 사령탑까지

등록 2012.05.10 17:59수정 2012.05.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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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석인 충북도체육회장애수영실업팀 감독.

강석인 충북도체육회장애수영실업팀 감독. ⓒ 신용철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가 지난 2008년 10월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 현지에서 8개월 동안 박 선수를 지도했던 코치가 충북도 내에서 수영감독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70~80년대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충북 국가대표 1호)이자, 최연소 국가 대표 코치를 지낸 강석인(54) 충북도체육회 장애수영실업팀 감독.


강 감독은 청주 세광고등학교를 나와 고려대 77학번으로 대학 선배인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를 이을 선수로 거론될 만큼 수영 실력을 인정받았었다. (고려대에서 수영특기생을 받은 것은 조오련 선수 다음으로 강석인 감독 뿐이다.) 하지만 1984년 LA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 용단을 내리고 미국행을 결심한다. 이후 강 감독은 LA와 다우니 돌핀스 수영팀, 라카냐다 YMCA 수영팀 등에서 코치 생활을 해 왔다.

박태환 선수와의 인연은 강 감독이 국가대표 출신으로, 수영 종주국인 미국에서 수영코치를 수십년 간 해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박 선수의 여러 코치 중 한 코치가 제안을 하면서였다.

박태환 선수, 그를 미국에서 만나다

당시 강 감독은 캘리포니아주 아캐디아시에서 '아캐디아 수영팀' 헤드 코치를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모험과 도전의 인생이었기에 강 감독은 다시 한 번 안정된 생활을 내려 놓고, 박태환 선수를 맡게 된다.

당시 박 선수는 400미터 기록에서 6~7초 떨어지며,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박 선수는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쉬기를 원했지만, 언론이 가만히 놔두질 않으니 다시 미국으로 전지 훈련에 들어간 것이었다. 강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박 선수가 "몸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쉬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박 선수의 주 종목은 200·400·1200미터 자유형이었다. 하지만 강 감독은 주위에서 박 선수가 중·단거리 선수라며 만류하는 1500미터 장거리 자유형을 단거리와 함께 미래를 위해 코치했다. 박 선수의 잠재적 역량으로 볼 때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데,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장거리에 대한 집중적인 코치를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후 강 감독은 그해 7월에 열리는 로마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박 선수를 코치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박 선수는 호주로 전지훈련을 가서 볼 코치를 통해 1500미터 자유형을 더욱 연마해,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메달을 딸 수 있었다. 강 감독이 본 것이 정확했다.


보이지 않는 수영계의 알력 싸움 희생양

a  미국에 전지 훈련 온 박태환 선수를 코치한 강석인 감독(왼쪽).

미국에 전지 훈련 온 박태환 선수를 코치한 강석인 감독(왼쪽). ⓒ 신용철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박 선수의 부진한 기록으로 박 선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깊은 고민 끝에 25년 간의 미국 수영 코치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강 감독은 2년 반 동안 경기도 이천스포츠센타 수영감독을 거쳐 올해부터 충북도체육회장애수영실업팀 감독을 맡고 있다.

강 감독은 우리나라 수영 지도자 육성에 대한 부재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박태환이라는 거물을 만들어냈는데, 홀로 박 선수를 호주로 전지훈련을 보냈다"며 "이 기회에 한국 지도자도 함께 따라가서 그들의 수영 기술을 배워오고 해야 하는데, 선수 하나만 달랑 키워내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또 보이지 않는 대한수영연맹의 알력 싸움에 대해서도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전국체전 58·59·60·61회에서 200·400·1500미터 자유형에 출전해 연속 1위를 석권하고 한국기록을 3회 갱신하면서 국가대표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여러 이유로 수영대회에 대한 출전이 막히곤 했다.

이유는 수영계에서 충북은 연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안 이후 그는 한창 청운의 꿈을 꾸고 비상해야 할 20대 초반에 절망하여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고자 '아티반' 신경안정제 4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국내에서 희망을 찾기 못하고 미국으로 가게 된 작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후 낯선 타국 생활 25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었던 것을 풀면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하다. 갖은 모욕과 냉대 속에서도 지난 2002년에는 다우니 돌핀스 재직 중 싸우스 캘리포니아 헤드코치를 하며 신기록 5개를 갱신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올해의 최고 수영코치(Year of best swim coach)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다시 한 번 커다란 결단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는 그에게 수영을 배웠던 학생들과 부모들이 가지 말라며 울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덧 무정한 세월 속에 신체적 나이는 쉰 중반에 접어 들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다. 그는 한국의 수영 강국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대한수영연맹 감독자리가 지금도 공석입니다. 바라기는 수영연맹 감독이 되어 선수들을 잘 지도해 런던올림픽에 가는 것입니다."

충북장애인체육 종목에는 어떤 것이 있나

충북장애인체육회에 개설된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계종목으로는 골볼·농구·댄스스포츠·론볼·배드민턴·보치아·사격·싸이클·수영·양궁·역도·요트·유도·육상·조정·좌식배구·축구·탁구·텐핀볼링·휠체어럭비·휠체어테니스·휠체어펜싱이 있고, 동계종목으로 아이스 슬레이지하키·알파인스키·크로스컨트리·휠체어컬링 등이 있다.

임헌택 충북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은 "종목은 많지만 장애인 체육이 아직 일반 시민들에게 홍보가 안 되어 있다"면서 "먼저 사회 지도층들이 장애인 체육을 일반 체육이 아닌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사무처장은 "그런 측면에서 예산을 많이 늘려줘야 한다. 복지 차원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예산문제로 현재 어려움이 많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역시사주간지 <충청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역시사주간지 <충청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석인 #박태환 #대한수영연맹 #충청리뷰 #충북도체육회장애수영실업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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