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유담에 바위에 조선시대 함양군수 김종직 선생의 이름이 새겨진 모습.
최지용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선에서 차로 달려 20여 분. 가파른 언덕길이 끝나자 산 중턱에 난 도로 아래쪽으로 넓은 지역에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 있는 게 보였다. 빠르게 내려오던 물은 평평해진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연못(담)을 만들었다.
한편에는 조선시대 함양군 현감이었던 김종직 선생이 기우제를 지낸 널찍한 바위가 있고, 그 근처 바위에는 또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비롯해 조선시대 유명 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용유담에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곳곳에 생겨난 포트홀로 인해 기이한 모양의 회백색 바위들과 함께 상류 쪽에는 주민들이 '용의 배설물'이라고 부르는 검정 돌도 간간히 섞여 있다. 포트홀 지형은 용유담과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경기도 가평군 가평천 등 한국에 몇 되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포트홀이 약 18억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리산의 탄생을 알려줄 열쇠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용유담은 빼어난 경관으로 보존 가치뿐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 또한 수달의 서식지로 추정되며,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이동 통로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생태 가치도 가볍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댐건설 추진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현장에 동행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명승지는 단순히 경관만 빼어나다고 지정되는 게 아니다"면서 "그곳이 가진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용유담은 그런 점에 있어 조건이 충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예산을 들여 조사하고 학술회의까지 끝낸 명승예정지에 댐을 짓겠다며 모든 걸 수장시키려는 수자원공사와 국토부의 발상에 황당하다"고 덧붙였다. 명승지 지정을 최종 결정하는 문화재위원회는 오는 6월 열릴 예정이다.
최화연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은 "수억 년 동안 물이 흘렀던 이곳에 물을 채워놓는다면 생태계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당장 수몰지역의 동식물 문제뿐 아니라 용유담 상류 칠선계곡은 한국에 유일하게 남은 원시림으로 불리는데 담수로 인한 안개 발생 등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칠선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 지역에서도 제1비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현재도 예약탐방만 가능한 상황이다.
지리산댐은 용유담에서 하류로 3.2km 떨어진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경계인 마천면 문정마을에 들어설 예정이다. 댐이 건설되면 일대 4.2㎢가 물에 잠기게 된다. 전북 남원의 실상사 1.7㎞ 아래까지 수몰돼 사찰에 보관 중인 문화재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칠선계곡과 더불어 백무동도 수몰지역과 맞닿는다. 주변 도로 11.2km가 물에 잠기고, 25일 완전 개통되는 '지리산 둘레길'도 끊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성 없어 무산된 다목적댐, 홍수조절용으로 되살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