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순 헌책방 고구마 대표
유혜준
헌책방 고구마에 도착해서 건물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구마를 찾아오신 분이시군요."취재차 찾아왔다고 신분을 밝히니, 반색을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같은 진보언론에서 고구마를 취재한 적이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 대표는 기자를 헌책방 고구마 건물 안의 아담한 카페로 안내해 감미로운 향이 감도는 원두커피 한 잔을 내놓았다. 카페는 고구마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범순 대표가 헌책방 고구마를 금호동에서 시작한 것은 지난 1984년. 지난 해 7월에 금호동의 매장의 문을 닫고 경기도 화성시의 지금 장소로 이전했다. 헌책방을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50만 권이나 되는 책, 수집했던 LP들을 옮기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이 대표는 소장하고 있는 LP가 5만여 장이 된다고 밝혔다.
이사한 지 11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책들은 전부 정리되지 못했다. 현재 10만 권 이상이 150평 규모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 이 대표는 차츰차츰 정리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전시회는 처음 하시는 건지? 전시회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전시회를 열기는 처음이다. 헌책방은 책들이 빽빽하게 쌓여 전시를 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뿌리깊은 나무>에 대한 소개도 하고,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애지중지 모아온 잡지들이 헌책방 고구마를 홍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헌책방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시를 좋아해서 청계천에 있는 헌책방에 드나들었다. 70년대만 해도 책이 귀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받으면 달력이나 비료부대로 쌀 정도로 책을 귀하게 여기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헌책방에 드나들다가 헌책의 매력에 이끌려 헌책방을 금호동에서 시작했다."
- 서울에서 경기도의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순전히 '똥배짱'에 무모한 도전이었다. 헌책방이지만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헌책방 외에도 카페, 추억의 음악감상실, 세미나실 등을 만들었다. 화성시에는 동생이 살아서 자주 오가면서 눈여겨봐왔던 곳이라 이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 이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50만 권의 책을 옮기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서울에서 화성으로 오면서 직원 10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둬 숙련된 사람이 없어서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곳에서 새로 직원을 뽑아서 정리를 하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 이사하면서 손해는 보지 않았나?"매출이 줄었지만, 다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근의 평택, 오산, 안산, 수원을 비롯해 대구, 청주, 부산에서도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특히 화성 지역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문화에 대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어떤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책 명이 긴 책이다. 3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책은 수십 년이 지나고 계속해서 읽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명이 길다. 안 좋은 책은 제 아무리 표지를 현란하게 만들어도 시장에서 금방 검증이 된다. 대작이 아닌 시류에 편승하는 책들이 쏟아지는 게 안타깝다."
- 앞으로 계획은?"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추억의 LP, 추억의 만화, 추억의 교과서 등 추억을 향유할 수 있는 전시를 꾸준히 열 계획이다. 헌책방 고구마를 문화의 불모지인 화성에서 문화의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자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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