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이 오는 9월 14일에 여는 '수로부인 헌화가 학술 심포지엄' 행사 소책자의 표지
영덕군
예(濊)의 본거지였던 고구려 땅 하슬라(何瑟羅)는 인명,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꾼 757년(경덕왕 16) 명주로 개명된다. 명주는 고려 후기 이후 강릉이라는 새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곳 강릉태수로, 신라 성덕왕(702∼737) 때 순정공이라는 관리가 부임한다. 삼국유사에 보면 그는 경주를 떠나 강릉으로 오던 중 바닷가 어느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 식사 도중 사건이 발생한다. 높은 절벽 위에 철쭉이 활짝 핀 것은 본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누가 저 꽃을 꺾어 오겠느냐?(折花獻者其誰)"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곳(非人跡所到)"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不能)"하다면서 모두 사양한다(皆辭).
'사양'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거부'다. 강릉태수 부임 행차이므로 무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순정공이다. 수로부인은 그의 아내이다. 그러므로 철쭉꽃을 꺾어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사양한 '따르는 사람(從者)'들은 부하 공무원과 노비들이다. 시키는 일을 못 하겠다고 거부한 것이다.
사랑은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사람'이 할 수 없는 일, 그것을 또 다른 '어떤 사람'은 한다. 육사는 그를 '초인(超人)'이라 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만해는 '님'이라고 했다. 시인은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라고 찬송한다. 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를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갈파한다.
수로부인에게 눈이 먼, 그러면서도 초인이 나타난다. 그런 사람이 출현하지 않으면 삼국유사에 수로부인 이야기가 실릴 까닭이 없다. 도(道)의 상징인 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붉게 핀 바윗가에 / 잡은 손 암소 놓으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兮不喩慙兮伊賜等 花兮折叱可獻乎理音如)"하고 노래를 건넨다.
노래에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노라"로 되어 있지만, 노인은 사실 이미 절벽에 올라 꽃을 가지고 온 다음 그렇게 말했다(聞夫人言折其花 亦作歌詞獻之). 수로부인이 부끄러워할 리 없다는 것을 노인이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로부인인들 공연히 철쭉꽃을 탐냈을 리가 없지 아니한가.
헌화가의 노인(老人)은 '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거뜬하게 감당해내는 능력 있는 초인이다. 헌화가의 '老'는 '노련(老鍊)하다'의 뜻이다. 삼국유사는 견우노인(牽牛老人)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其翁不知何許人也)'고 정리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고전 연애소설의 말투를 빌어 정의하자면 그는 수로부인의 '정인(情人)'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꽃을 꺾어올 능력이 없더라도 목숨을 걸고 절벽을 오를 '사랑'이었다는 말이다.
수로부인, 견우노인만큼 순정파는 아니었던 듯그러나 표면상으로만 보면 수로부인은 견우노인만큼 순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목숨을 던져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을 정인에게 시키는 것을 보면 그녀는 별로다. 절벽 위에 핀 꽃은 결코 정인의 생명과 대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판단은 세속적 상식이다. 헌화가의 '꽃'은 상징이므로 꼭 가파른 천길 절벽 위의 철쭉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순정공과 기타 다른 일행들에게는 아니지만, 수로부인과 견우노인 두 사람에게만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그 무엇이다. 만약 견우노인이 떨어져 죽는다면 수로부인 또한 그를 따르거나,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실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 말이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설화는, 견우노인이 거뜬히 철쭉꽃을 꺾어오기 때문에, 그런 비극적 구조로 전개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