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마음도 해모 마음 읽듯이 좀 읽어봐요!"

나의 건강을 걱정했던 아내의 말... 그 어떤 상황도 감사해요

등록 2012.10.25 14:50수정 2012.10.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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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는 수십 년을 탐구해도 여전히 아내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수십 년을 탐구해도 여전히 아내를 모르겠습니다. ⓒ 이안수


애완견 해모는 동물을 좋아하는 저의 아들이 주인입니다. 초등학교을 졸업하면서 6년 동안 부었던 학교적금을 찾아 해모를 입양했으니까요. 3개월째 되는 때에 제가 사는 모티프원으로 온 어린 해모는 아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다시 서울로 옮겨가고 해모는 모티프원에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형견을 서울에서 키울 수 없을 뿐더러 새벽에 등교해서 밤늦게 하교하는 아들의 상황에서는 애완견을 돌볼 수 있는 형편이 되지았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모티프원의 나이와 같은 7세의 해모는 저와 고락을 같이해야했습니다. 제가 해모를 정기적으로 운동시킬 수는 없었고, 먹는 것도 가려주지 못했습니다. 대형견의 일생에 해당하는 나이를 사람의 그것으로 환산하면 이제 막 쉰을 넘긴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유별난 애정으로 엄마 품에서 떨어져 우리 집으로 오게 된 해모는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사는 것'의 변수 탓에 아들과 함께 역동적인 삶을 사는 대신 저와 함께 주로는 묶인 채로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모는 천성으로 선했고, 행실은 온순해서 모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a  7년을 함께 산, 목양견인 트라이콜리, 해모.

7년을 함께 산, 목양견인 트라이콜리, 해모. ⓒ 이안수


저와도 7년을 함께 지내면서 제 말을 거역하는 일이 없었고, 저도 해모의 행동만으로도 해모가 어떤 욕구를 느끼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해모와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해모가 짖는 소리의 톤만으로 목이 마른지, 배설을 하고 싶은지, 자전거가 지나가고 있는지, 멀리 야생고양이가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서재에서 처와 함께 있을 때, 해모가 짖게 되면 간혹 처에게 부탁합니다. 

"지금 해모가 목이 마르니, 물 좀 갖다 주세요!"
"소변이 마려우니, 소변 좀 누이세요!"  


처는 저의 이런 부탁내지는 강제와 같은 어중간한 어투에 대해 간혹은 거절하기도하지만, 대개는 수락하는 편입니다.   

며칠 전 밤, 해모가 10초 간격으로 '컹 컹' 짖었습니다. 한번 짖었을 때, 제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제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알아듣지 못한 것으로 알고, 다시 두 번 '컹 컹'하게 됩니다. 저는 세 번까지 참았다가 해모의 오줌을 누이도록 처에게 요청했습니다. 제가 강의 준비로 여전히 바쁘다는 사실을 아는 처는 마지못해 일어나 정원으로 나가면서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누라 마음도 해모 마음 읽듯이 좀 읽어봐요!" (관련글 :아들의 유별난 동물사랑)

"당신의 전원이 나가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아니다"

지난 10일, 해남농업기술센터에서 오신 분들에게 강의를 하기위해 프로젝터를 켰을 때,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전원코드를 바꾸어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난 6년 간 문제없이 잘 사용하던 프로젝터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구두로 강의를 마쳐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에도 몇 번 더 강의가 예정되어있으므로 필히 프로젝터를 수리해야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처와 함께 서울의 한 행사에 참여하는 길에 샤프제품의 A/S를 맡고 있는 용산역에 있는 한 전자점의 '샤프용산전자'로 갔습니다.  

저는 퓨즈가 나가는 단순한 고장일 수 있다는 기대로 방문했습니다. 그런 단순한 문제의 경우는 현장에서 바로 조치가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간단치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맡기고 갈 것을 요청하셨고, 저희는 어쩔 수 없이 회사 측의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수리된 프로젝터를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을 기대했던 제게 이 복잡한 서울 한복판을 다시 방문해야한다는 것은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주차 빌딩을 빠져나오면서 혼잣말을 뱉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전원이 가버리면 대체 어쩌란 말이야..." 

운전 중이던 처가 제 말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도 불만스럽지 않네요. 당신이 갑자기 가버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프로젝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갑자기 가버려도 하나도 걱정되지 않습니다. 제발, 당신 건강 좀 먼저 챙기세요."  

처의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곳을 재방문하는 일은 별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침내 저의 불만스러운 마음도 차차 누그러졌습니다.

a  처는 요즘 저의 건강에 무척 예민해합니다. 그래서 최근 처의 관심사는 암벽을 타는 일보다 효소공부에 더 열중입니다. 서울에서 파주로 돌아오는 길에 북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플라워 디자이너들의 트리엔날레인 AFDU에 들렸습니다. 그 전시장 입구에 한 작가의 설치작품 앞에 처를 앉히고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흰머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처의 모습이 붉고 탐스러운 꽃과는 대조적이지만 제 눈에 처는 여전히 붉은 장미꽃입니다.

처는 요즘 저의 건강에 무척 예민해합니다. 그래서 최근 처의 관심사는 암벽을 타는 일보다 효소공부에 더 열중입니다. 서울에서 파주로 돌아오는 길에 북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플라워 디자이너들의 트리엔날레인 AFDU에 들렸습니다. 그 전시장 입구에 한 작가의 설치작품 앞에 처를 앉히고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흰머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처의 모습이 붉고 탐스러운 꽃과는 대조적이지만 제 눈에 처는 여전히 붉은 장미꽃입니다. ⓒ 이안수


 
오늘 그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파워보드를 교체해서 몇 시간 실험했습니다. 이상이 없으니 찾아가셔도 좋습니다. 비용은 27만5천 원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그 수리비용조차도 '당신의 전원이 나가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아니다'라는 처의 말을 되새김하니, 오히려 달가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부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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