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과 곶감작년엔 고온 현상으로 곶감의 절반이 피해를 입었다. 늦가을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과 벼나락이 가을의 풍성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종락
귀농한 지 햇수로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아직도 뜬구름같은 농부의 삶에 어색함을 떨칠 수가 없다.
얼마 전, 잘 아는 지인이 내가 사는 마을로 귀촌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마침 마을 한가운데 적당한 빈집이 하나 있어 소개했다. 하지만 재래식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는 치명적 이유(?) 때문에 결국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사실 어린 딸과 엄마, 그들 모녀에게 집 바깥 재래 화장실은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시골에 살고 싶은 간절함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귀촌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저랑 애가 마당 있는 시골집에 살고 싶어 하고, 산촌유학처럼 몇 년이라도 시골에서 학교 다니면 아이한테도 좋을 것 같아서요.""재래 화장실을 친환경적으로 잘 정리해서 사용하면 어떨까요?""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여자들만 있어서..""마당에 풀도 베고, 시골 살면 호미 낫 드는 건 기본입니다.""(난감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배워 가면 되지 않을까요.""저렇게 괜찮은 빈 집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네.. 화장실만 해결되면..."여러 고민을 하며 서울로 올라간 지인은 지방에 근무하는 남편과 상의 끝에 시골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접었다고 알려왔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접을 귀농·귀촌이면 아예 발을 내딛지 않는 게 낫다는 게 귀농 6년 차의 변함없는 지론이다. 귀농을 막연하게 꿈꾸고 망설이거나, 귀농 후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은 더 시간을 갖는 게 낫다. 시골에 대한 간절함이 생겨날 때까지.
자나 깨나 시골생각, 실제 살아보니...내 귀농의 단초는 수세식 화장실 물에 대한 작은 깨달음에서 시작했다. '소변과 대변이 물과 함께 흘러 어디로 가나'에서 시작한 생각은 꼬리를 물었고 결국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데로 집중됐다. 그후부터는 수세식 화장실도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한 3박 4일의 여름 텐트휴가로 귀농 계획은 구체화 됐다. 아파트며 각종 식기며 옷가지들 등 살면서 불필요한 것을 많이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이어진 주말농장 실습과 귀농운동본부의 귀농학교 수료 등 3년에 걸친 준비기간을 보냈다. 직장을 정리한 후 6개월 뒤 귀농을 결행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귀농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했고 먹고사는 문제는 캄캄했다. 그러나 그 어떤 불안감이나 망설임도 귀농에 대한 간절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당시 도시의 번잡한 관계와 타인에 의한 경제 의존, 껍데기만 그럴 듯한 삶에 깊은 거부감이 가득 찬 상태였다. 화려한 도시는 내게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그저 시계추와 같이 왔다 갔다'하는 삶으로 각인되었다. 그렇게 도시를 떠나 귀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