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권우성
이번 대선 기간에 부재자 투표소에 길게 늘어선 20대 청춘들의 행렬을 찍은 <오마이뉴스>보도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절실하였으면 저 젊은 나이에 투표하겠다고 길게 줄을 서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해도 용서가 될 나이에 투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지금 사는 세상이 팍팍하면 저 긴 줄을 서고 있을까 싶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보고 '컵밥'(컵밥은 서울 노량진 노점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이다. 일회용 용기(컵)에 볶음밥 등을 담아 2500원에 판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인기메뉴)이라는 말도 처음 알았다. 젊은 청춘들의 힘든 한끼를 나타내는 이 말을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992년의 기억, 2012년과 비슷했다 특히 20대 진보적인 청년들에게 미안한 것이 있다면 특별한 승리의 기억을 변변하게 안겨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라면 대부분 철이 들고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한 번도 진보적인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한 세대이다. 한마디로 승리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의 20대 초반도 그랬다. 87학번 선배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선배들은 한 때나마 승리의 기억이라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6월항쟁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내 나이 23살에 치러진 1992년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2012년 대통령 선거와 닮은 꼴이다. 진보 세력이 서울과 호남에서밖에 못 이긴 것도 그렇고, 진보 세력의 후보가 명실상부하게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선 것도 그랬다. 야권이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선거에 패배한 것도, 5년 전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대선에 패배한 것도 비슷했다. 선거 패배 후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마음도 지금과 비슷했다.
난 1992년 추운 겨울에 자원봉사를 하며 김대중 후보의 선거 운동원으로 열심히 뛰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꼭 이길 것 같은 생각이 이번 선거처럼 들었다. 나도 승리의 기억을 만들리라 하고 열심히 뛰었지만 200만표 차이가 나는 대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마음이 무척 슬펐다. 아래의 그림은 당시 <한겨레> 그림판에 실린 박재동 화백의 만평이다. 힐링까지는 아니어도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구나 하는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