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조용해서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처럼 느껴지는 여름날 배랏의 오후. 이슬람예배당의 에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홍성식
티라나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4시간 남짓 남쪽으로 달렸다. 인구가 수천 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마을 배랏. 조그만 강이 마을을 가르며 소리 없이 흐르고, 야트막한 산 위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집들.
네온사인도, 시끌벅적한 카페도 없는 깡촌. 고대엔 꽤 번성했던 도시라는데 당시의 영화는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만이 쓸쓸하게 증언하고 있을 뿐, 시내 중심가에도 인적이 드물어 유령마을 같았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Ezan)만이 낡은 모스크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하루 5번 울려나오고.
그런데, 그런 적요함이 나쁘지 않았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는 그 마을에 딱 하나. '배랏 백패커스 호스텔'이었다. 덴마크와 잉글랜드, 핀란드와 체코, 독일과 호주,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이 20명 남짓은 금방 친해졌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독일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거쳐 배랏까지 왔다는 커플은 이제 겨우 열아홉. 놀랍게도 오로지 '히치하이크'로만 1000km가 넘는 길을 왔다고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그리스까지 같은 방식으로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주는 그들의 젊음과 용기가 한없이 부러웠다.
국경을 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유럽에서 태어난 열아홉 소년과 소녀의 가슴엔 스스로 그어놓은 나라간 경계선이 없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슬리퍼 신고 옆 동네 놀러가듯 5~6개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
철조망으로 가로 막힌 북한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육로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는 우리. 1개월이 넘는 외국여행은 큰마음을 먹고 준비해야 가능한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은연중에 자리한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은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