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쓴 <노동의 배신>(2012, 부키) 표지
부키
15년 전쯤이었다. 내 나이 20대 후반. 대학원 과정을 입학한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그즈음 나는 학교 선배, 동기, 직장 선배 등으로 이어지는 지긋지긋한 룸메이트의 계보에 지쳐가고 있었다. 군 생활을 전후로 한 3년은 운 좋게 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학년인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기숙사 배정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 학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선배, 학과 동기, '직장 같은 알바'를 하던 학원의 선배 교사와 함께 살림을 꾸려가게 되었다.
거의 내 또래였던 그들은 모두 정녕 사려 깊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의 인간적인 불화나 사소한 습관 차이에서 느끼는 불편함 따위도 거의 없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순수한(?)' 20대였다. 그 시기를, 나 혼자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채 다른 이와 섞여 혼돈스럽게 보낼 수 밖에 없는 내 알량한 형편과 처지가 가증스러웠다. 순수하고 내밀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참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의식주(衣食住)라는 기본 생활의 방편 세 가지 중에서도 '주'는 독특한 면이 있다. 입고 먹는 일은, 논란이 없지 않겠지만, 당사자의 경제적인 형편과 무관하게 대충 혼자서 어찌해 볼 수 있는 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잠자고 휴식을 취하는 주거 공간의 문제는, 원래 가족이 있는 집에서 살거나 자신의 형편이 닿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냄으로써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노숙'을 선택하지 않으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래, 지하방이든 옥탑방이든 내 방을 갖자.'나는 생활 정보지에 나온 학교 근처의 집들은 다 들러 보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어마어마한 마천루 아파트가 들어선 학교 주변의 상도동 비탈 집들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우선 방값과 내 눈 사이에 너무 큰 괴리가 있었다. 내 눈에 조금이라도 맘에 드는 방(집)은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집주인과의 조정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보증금이었다. IMF 직전이었던지라 생활 전반에 거품이 부풀 대로 부풀어오른 시절이었다. 달동네 코딱지만한 방에도 수백만 원의 보증금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 꼭 대박의 꿈이 아니더라도, 결코 부유하지 않을 집주인들이 나처럼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굳이 인심을 쓸 이유는 없었다. 비록 나와 비슷하게 가난하지만, 나에게는 없는 보증금을 가진 또다른 입주자들에게서 수백만 원의 돈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고적한 달동네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얻은 방은 골목 시장 입구의 지하방이었다. 일층에는 꽤 큰 슈퍼마켓이 있는 삼층 짜리 건물이었다. 두 평 남짓 되는 그 방은 놀라운 번식력을 자랑하는 곰팡이의 천국이었다. 햇살이 단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지하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이 지하의 벽을 따라 다섯 집이나 있었으니 일명 '지하 벌집'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래서 습한 여름이면 부유하는 곰팡이 포자와 시장 특유의 냄새가 뒤섞이면서 묘한 향취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압권은 용변이나 세면을 지하실 한쪽의 공용 시설에서 해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세면 공간 한쪽에 공용 샤워 시설을 마련해 준 것은 집주인의 은덕이라고 보아야 할까? 그래도 그곳에서 석사 논문을 쓰고, 선후배들과 문학을 논하며 이십대의 마지막을 내 식대로 '순수하게(!)'보낼 수 있었다. 적어도 그곳은 다른 누가 아닌 '내 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놀라운 곳에도 보증금은 딸려 있었다. 금액은 무려 2백만 원. 알량한 학원 알바 수입과 조교 급여 등으로 대학원 학비와 책값, 생활비 등을 충당하며 지내던 내게 2백만 원은 어머어마한 돈이었다.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시던 시골 부모님께서도 쉽게 마련하기는 힘들었다. 설령 그럴 형편이 되었다고 해도 서른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부모님께 손을 빌리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결국 학과 친구 몇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한 친구의 사업을 하는 아버지로부터 돈을 빌려 보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날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심각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이들이 정부의 조사와 통계에 거의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와 워킹 푸어의 뿌리에도 바로 이 주거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하우스 푸어나 워킹 푸어는 중산층의 주택 투기나 최저 임금, 비정규직 문제 등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실상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가난한 이들을 포함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안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쓴 <노동의 배신>을 부제에 있는 '워킹 푸어 생존기'가 아니라 '집 구해서 살아남기 프로젝트'로 받아들였다. 저자가 뛰어든 저임금 노동, 곧 식당에서의 홀 서빙과 노인 요양원에서의 식사 시중, 호텔과 가정집 청소, 가게 점원 등의 수입은 거의 모두 주거 비용을 해결하는 데 쓰이고 있다. 1998년 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저자가 직접 저임금 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만난 대다수의 '워킹 푸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주택 양극화 현상에 빠져든 미국은 저소득 계층의 주거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 책에는 도심의 그럴듯한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살던 이들이 트레일러나 트럭, 싸구려 모텔 등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모습이 저자 자신의 체험을 통해 핍진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는 뉴타운과 같은 재개발 사업 계획에 따라 원래의 삶터에서 밀려난 이들이 도시 변두리 가옥의 쪽방이나 주택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모텔 등등으로 전전하는 우리나라 극빈층의 주거 현실과 똑같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사례를 보자. 맨 처음 키웨스트라는 소도시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던 저자는 한 달에 1039달러를 벌어 생활비와 공공 요금 등으로 517달러를 지출하고 원룸 임대 비용으로 500달러를 지출한다. 그 상태대로만 갔다면 매달 22달러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금액만으로는 분명히 몇 달 후에 생길 의료비와 같은 고비용 항목을 충당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약 9개월 정도를 '열심히' 일해서 아파트 보증금과 한 달 분의 집세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열심히'의 조건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몸 어디가 아프거나 차가 고장이 나서 일을 쉬어서는 안 되고, 일 주일에 7일(!)을 쉬지 않고 몇 달 동안 일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살인적인 노동을 몇 달 간 해야 (물론 그 이후에도 주거가 보장된 것은 아닌) 최소의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임금이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는 사실이다. 저자 말마따나,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신처럼)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살기가 아주 힘겨울 정도로 빠듯하다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한 마디로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저자는 지나치게 낮은 임금 체계와 불합리한 주택 시장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결코 저임금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임금이나 주택 문제를 노사나 시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정하고 통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시간 당 5.15달러였던 최저 임금을 7.25달러로 높였다.
'워킹 푸어'는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완벽하게'투 잡'을 해도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투 잡'이 아니라 (풀 타임으로) 한 가지 일만을 해도 가족의 기본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 아닌가. 그런 점에서 '워킹 푸어'는 그 자체로 모순에 가득 차 있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의문이 뒤따른다. '열심히 일하는데 도대체 왜 가난한 거지?'
부자들은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고 게으르다며 비난한다. 자신의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외식을 자주 한다는 식으로 악의적인 뒷담화를 퍼붓는 이도 있다. 내 동료 교사들 중에는 정부 지원을 받는 아이들이 휴대폰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악담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어떻게 국가의 도움을 받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과외를 받고 학원을 다닐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 대한민국은 많은 사람이 이런 말들을 공공연히 내뱉을 수 있는 나라다!
이 악의에 찬 사람들이 자주 들먹이는 것 중에 '엥겔지수'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Ernst Engel, 1821~1896)이 만든 이 지수는, 가계의 전체 지출액 중 식료품류의 구입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수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엥겔 지수가 높을수록(식료품 지출 비중이 클수록) 소득이 낮고, 엥겔 지수가 낮을수록(식표품 지출 비중이 낮을수록) 소득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근거로 소득이 높지도 않으면서 많이 먹는다며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따져 보자. 전체 소득이 많은 사람은 멋진 곳에서 외식을 자주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사 먹는 음식이나 식재료의 수준, 가격 등도 저소득층의 그것보다 높지 않을까? 그러므로 식료품과 관련된 총 비용을 따져보면 저소득층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적인 소득 규모가 저소득층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식료품의 비중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저소득층은 총 소득 규모가 낮기 때문에 아끼고 덜 먹더라도 그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나부자'씨가 보기에, '경제적으로 무능하면서도' 먹는 것에는 목숨을 거는 '배채워'씨는 월 100만 원의 지출액 중 50만 원을 온통 식료품 비용으로 쓴다(고 생각한다). 이는 엥겔지수 0.5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부자'씨는 '배채워'씨로부터 자린고비 소리를 듣지만 실상 먹는 일에 100만 원을 쓴다. 음식값이 비싼 식당에 가서 자주 외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부자'씨의 한 달 총 지출액은 500만 원이나 된다. 이는 엥겔지수 0.2에 해당한다.
결과적으로 '나부자'씨가 '배채워'씨보다 식료품 비용으로 두 배를 더 쓰지만 엥겔지수는 두 배 낮은 것이다. 가계에서 식비는 꼭 필요한 지출 항목이다. 식료품 비용은 경기 변동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이에 연동된 물가 변동의 영향도 가장 많이 받는다. 이런 세부적인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저소득층의 엥겔지수를 악의적으로 들먹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기실 이런 말들에는 어떤 음험한 의도가 숨겨 있는 것이 아닐까?
'가난한 너희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더 아끼고 절약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야? 불평 불만만 늘어놓지 말고 너 자신을 봐. 능력이 없으면 아껴 먹고 부지런하기라도 해야지. 그러니 입 닥치고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란 말야!'이런 말들 속에서 가난의 문제는 곧 그 개인의 태도와 자질의 문제로 협애화한다. 그 대신 소득 불균형을 가져오는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는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가난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은 한 사회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면서 고착화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가난을 '만들어내는' 몇 가지 사슬이 있다. 우선 위에서 본 것처럼, 가난은 개인의 부족한 능력과 게으른 생활과 무절제한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슬이 있다. 평범한 많은 이를 옭아매고 있는 그릇된 통념과 편견의 사슬이다. '닥치고 열심히' 일을 하기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슬이 있다. 평범한 이들이'닥치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이익을 얻는 가진 자들의 감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딴 짓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위협에 다름 아니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옛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옛날 우리 나라의 속담일 뿐이다. 속담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만들어진다. 이 속담의 탄생지가 21세기의 북유럽이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가난 구제는 나랏님만 한다'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환 못지 않게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새 박근혜 정부의 의지가 꼭 필요한 이유다.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부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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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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