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총소리... 지옥의 공포에 휩싸였다

[서아프리카 모험①] 부르키나파소에서 만난 무장 강도들

등록 2013.02.26 16:12수정 2013.02.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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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내부에서 바라본 다른 총알 자국. 총알은 생각보다 강했다. 버스 외벽을 뚫고, 좌석을 뚫고, 다시 반대편 외벽으로 박혔을 정도다. 영화에서 보는 자동차 문짝으로 방어하고 총 쏘는 장면은 다 거짓이다. 만약 똑같이 했다가는...

버스 내부에서 바라본 다른 총알 자국. 총알은 생각보다 강했다. 버스 외벽을 뚫고, 좌석을 뚫고, 다시 반대편 외벽으로 박혔을 정도다. 영화에서 보는 자동차 문짝으로 방어하고 총 쏘는 장면은 다 거짓이다. 만약 똑같이 했다가는... ⓒ 문종성


"신이시여, 제발 살려만 주옵소서. 제발!"

버스 안은 아비규환이다. 탄식과 울음이 혼재된 곳에서 온전한 판단력을 가진 이는 없다. 승객들은 모두 고개를 처박고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고, 내 옆에 인도 남성은 눈물·콧물·땀까지 범벅돼 긴박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다. 그렇게 5분여가 흘렀을까.


'탕!'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나는, 정말이지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혈류가 머리로 모이는 느낌이었다. 총알이 내 머리 위로 스쳐 갔다. 순간 몸 전체가 급히 뜨거워지는 명료한 느낌이 돌았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되고 있었다. 영화가 아니다.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했지만 생각나는 건 한국에 계신 부모님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그려보지만 자꾸 슬픈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아프리카 내전 영화를 본 기억 때문에? 아니면 테러 뉴스를 많이 접해서? 당장에라도 버스에 올라타 총구를 겨누고 총알을 갈겨버릴 것만 같아 미치도록 불안했다. 1분, 1초, 숨 쉬는 순간마다 지옥의 모든 공포가 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착한 사람들이 사는 땅' 부르키나파소

 부르키나파소, 국내 정세도 다스리기 어려운데 옆 나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까닭에 주변국 정세는 늘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의 연속이다.

부르키나파소, 국내 정세도 다스리기 어려운데 옆 나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까닭에 주변국 정세는 늘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의 연속이다. ⓒ 구글지도


서아프리카 여행 중 지리 여건 때문에 세 번이나 방문한 곳, '착한 사람들이 사는 땅' 부르키나파소. 국내 정세도 다스리기 어려운데 옆 나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까닭에 주변국 정세는 늘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의 연속이다.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에 도착한 나는 바로 옆 나라인 가나와의 국경이 불과 이틀 전에 폐쇄됐다는 공식 정보를 확인했다. 낙심하기는 이르다. 여기는 서아프리카. 일정을 바꿔 부르키나파소로 되돌아가 가나로 빙 둘러 가면 그만이다. 기차로 26시간, 다시 버스로 24시간이 걸리는 고된 여정이 함정이긴 하지만.


점점 발전하고 있다지만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에서 적어도 개발도상국 정도 되는 수도의 위엄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도로 주변으로 어지럽게 형성된 노천 시장과 길에서 인생을 배운 노회한 상인들의 거칠면서도 절박한 흥정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척박한 땅에 널브러진 쓰레기들과 그 쓰레기 중 쓸만한 걸 주워담는 넝마 걸친 아이들의 야윈 눈빛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이중에 각종 상권이 밀집한 비포장 길을 꼬불꼬불 헤집고 들어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국제버스 터미널 위치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긴, 다른 나라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에 비춰보면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무관심이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버스터미널 한 쪽 벽에 그려진 STC 버스 광고. 서아프리카에선 퀄리티가 좋은 편이다.

버스터미널 한 쪽 벽에 그려진 STC 버스 광고. 서아프리카에선 퀄리티가 좋은 편이다. ⓒ 문종성


나는 출발 당일 오전 일찍 나와 가나 행 STC 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안전하기로 정평이 난 정부에서 관리하는 버스란다.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에어컨이 나오고 내부도 청결해 서아프리카에서는 꽤 고급에 속한다고. 하지만 받아든 자리는 애석하게도 45번, 그러니까 맨 뒷자석에서도 딱 중간 자리 티켓을 발급받았다. 내 뒤로도 몇몇이 더 표를 끊는 이들이 있는 걸로 보아 외국인이라서 일부러 나쁜 자리 골라주는 건 아닌지 의아해진다.

허나 보통 사흘 전에는 예약이 모두 끝난다는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의심의 단계를 벗어나 재빨리 체념을 건너뛰고 감사로 감정 선택을 바꾼다. 오랜 버스 여행에 대비하는 여행자에게 감정 소모는 판단력 상실과 큰 피로감만 불러올 뿐이니까.

버스 맨 뒷자리 가운데 좌석... '저주받았구나'

 서아프리카의 교통 요충지라 불리는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의 버스 터미널. 명색에 걸맞지 않게 단출하다.

서아프리카의 교통 요충지라 불리는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의 버스 터미널. 명색에 걸맞지 않게 단출하다. ⓒ 문종성


짐을 다 싣고도 출발 시각보다 30분 늦게 버스가 움직인다. 여느 아프리카 로컬 버스처럼 기사에게 불평 한 번 하는 이들이 없다. 격 떨어지게 경박하거나 서두르는 모습도 없다. 승객들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패션 센스에 내심 놀랐다. 원색의 정장 차림과 깃 달린 고풍스러운 모자, 몸 곳곳에 치장한 야성미가 담긴 화려한 뱅글 장신구들과 보석들은 사회적 지위와 부의 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대부분 은연 중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버스 안은 어색하리만큼 조용했다.

풍만한 가슴 곡선미가 도드라지고, 미니스커트와 지갑으로 세련된 패션을 연출한 젊은 여성들의 아찔한 자태는 지난 몇 달 동안 본 서아프리카 빈민가의 잔혹한 슬픔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싱긋 웃는 눈동자만으로도 대책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들 역시 또래 친구들은 감히 소유하지 못할 장난감으로 지루한 버스 여행을 견디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이용한 다른 어떤 교통수단에서보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승객들의 자태야말로 '엘레강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45번 자리는 거슬리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일단 폭이 좁고 팔걸이가 없어 양쪽 자리의 남자들과 어깨·다리가 심하게 밀착됐다. 자연히 맞닿은 부분의 습기가 차올랐고,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쉰내가 풀풀 풍겨왔다. 또한 버스가 중간중간 앞뒤로 흔들거릴 때에는 잡을 곳이 없어 손이 몹시 허전했을 뿐더러 졸음이 오면 마땅히 기댈 곳이 없었다.

'아, 정말 이 자리, 저주받은 자리로구나.'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닌데도 자리 때문인지, 버스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장거리 노선인데 가벼운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멍하니 상념에 잠기다가 나도 모르게 병든 닭 마냥 맥없이 졸기 시작했다. 버스는 이제 부르키나파소 밀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맹렬히 다가오는 두 남자의 손에는 총이...

 버스 중간좌석을 향해 쏜 두 발의 총알. 총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사실 '탕!'보다는 '피육!'이 더 어울리는 의성어다.

버스 중간좌석을 향해 쏜 두 발의 총알. 총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사실 '탕!'보다는 '피육!'이 더 어울리는 의성어다. ⓒ 문종성


얼마쯤 들어갔을까. 사방이 나무들로 빽빽한 도로 한가운데서 별안간 버스가 급정거했다. 졸다가 영문도 모른 체 깨어난 나는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약간의 타는 냄새가 나는 것과 도로에 나 있는 스키드 자국 외에는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버스는 오른쪽으로 30도가량 치우쳐 있었고, 승객들은 별 동요가 없었다. 앞에서 몇몇은 창밖을 보고는 되레 잡담을 나누며 웃고 있었다.

"밀림이다 보니 야생 동물이 지나갔나 봐요."

옆 사람들에게 건넨 첫 마디다. 버스 출발 세 시간 만의 일이기도 하다. 그때였다. 앞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엎드리세요! 어서 엎드려요!"

앞쪽의 승객들과는 다르게 뒤쪽의 승객들은 아직 사태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내 눈에는 저 앞에서 맹렬히 뛰어오는 두 남성만이 보일 뿐. 여느 아프리카 시골처럼 중간에 차를 얻어 타려는 것일까. 앞에서 또 다른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도야! 강도!"

맙소사, 이제 확실히 보였다. 버스 쪽으로 거침없이 돌진하는 남자의 손엔 총이 들려 있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뒤쪽 승객들도 버스 통로로 일제히 몸을 납작 붙이기 시작했다. 다들 서로 살겠다고 중앙 통로로 파고들었고, 버스 안은 진정으로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졌다. 순식간의 일이다.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구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튀는 행동을 한다거나 눈만 마주쳐도 죽을 수 있는 분위기였으니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내가 자리한 뒤쪽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이 총알보다 아예 내 머리를 날릴 뻔한 더 위협적이었던 다른 총알은 다음 회에 연재하겠다.

내가 자리한 뒤쪽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이 총알보다 아예 내 머리를 날릴 뻔한 더 위협적이었던 다른 총알은 다음 회에 연재하겠다. ⓒ 문종성


어수선한 틈을 타 총구에 불이 한 번 더 뿜어졌다. 그러니까 최초 버스를 급정거시킨 원인은 바로 첫 번째 총알이었던 셈이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두려워했고, 이미 체면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더욱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꼼짝 않고 떨기만 했다. 이제는 그 어떤 개별 행동도 절대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무장강도와 혹 눈이 마주칠까, 외국인이라 표적은 되지 않을까 애가 타면서 회한 섞인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두 발의 총성으로 질서가 간단하게 잡혔고, 버스는 이제 무장 강도들에게 완전히 장악당했다.

참호 속에 무신론자는 없다고 했던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뺏겨도 좋으니 부디 이 지옥에서 살아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어쩌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천하의 몹쓸 불효자가 될 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언론에서 종종 보도된 버스에 대한 무장 테러나 납치 사건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곳곳에서 절박한 기도 소리가 들렸다.

'탕!'

곧이어 세 번째 총알이 버스 내부를 관통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한 승객의 숨죽인 흐느낌이 다른 이들의 심장에 요란한 망치질을 해댔다.

'이제... 이렇게 죽는 건가. 아! 어머니...'

나는 뜨거워진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무장강도 총기 사건 후 병원에 실려가는 몇몇 승객들.

무장강도 총기 사건 후 병원에 실려가는 몇몇 승객들. ⓒ 문종성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에는 2012년 10월께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블로그(http://blog.naver.com/miracle_mate)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서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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