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최전선에서 세상을 여는 사람들

[서평] 조국이 대담하고 정리한 <조국의 만남>

등록 2013.04.07 11:35수정 2013.04.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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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국의 만남> 우리 시대 최전선을 만나다

<조국의 만남> 우리 시대 최전선을 만나다 ⓒ 쌤앤파커스

"아무 소용없다는 말은 그 사업과 그 물건에 인연을 끊는 말이니 쓰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소용없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며 살고 있는가? '소용없어' 하는 말은 이젠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며 자기 위안으로 삼기에 편리한 말이다. 그래서 '아무 소용없다'는 말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패배의 한숨이지만,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안도의 한숨이 된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고, 대한민국 대표적 진보지식인인 조국 교수가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글을 모은 책 <조국의 만남>은 표지 글에서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내일을 위해 세상과 기꺼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좋은 세상'은 한 판의 승부가 아닌 것

세상이 호락호락하다면 최전선이 어디 있을까? 살기가 팍팍하고 만만치 않은 세상, 변화를 거부하고 관행 속에서 고여 있거나 정체된 사회, 완강한 기득권을 떠받치고 다수를 좌절 속에 빠뜨리는 불공정한 세상에서 최전선은 엄연한 것이다. 이곳에 포진한 사람들은 '소용없음'을 뛰어넘는다.

인터뷰는 2012년 대선 전에 마무리되었지만 책은 대선 이후에 발간한 것이라, 시기의 온도 차를 저자는 염려하지만, 아직도 그가 만난 사람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라 하였다. '좋은 세상'은 어차피 한 판의 승부가 아닌 것. 또한 진보가 어찌 직선이겠는가? 구불구불하면서 한없이 돌아가는 길이며, 오르내리며 출렁거리는 길이며, 끝없이 꼬리를 감추며 이어진 길이므로 현재진행형이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저자는 '모신' 것인데, 대선이라는 중요한 변환기에 만난 터라 그 내용에 간절함이 있다. 그러면서도 대화의 흐름이 매끄럽고 편안하여 읽기가 수월했다. 또한, 저자가 만난 이들이 풀어낸 사유와 삶의 한 소절들이 시대의 정수를 잘 드러내고 있어, 진실로 '최전선'의 경륜을 느끼게 했다. 이는 생각건대, 저자 조국에게서 배어나오는 깊고 따뜻한 이해와 이어지면서 발현된 자연스러운 정서적 융화가 아닌가 한다. 우리도 아무에게나 속내를 다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국이 만난 사람은 모두 17명이다. 저자는 가장 먼저, 지금 당장 현장에서 다급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만난다. 문화방송(MBC)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김태호 <무한도전> 피디와, 제주 강정마을 지킴이 강동균 회장, 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도 생존한 은수연(가명), 그리고 대량해고와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을 겪고 '희망텐트'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을 만나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듣는다.


김태호 피디가 싸우는 이유... "가슴이 울었기 때문"

저자가 예능 피디들은 정치나 사회 참여에 관심이 적은데, 어찌해서 파업에 참여하게 되었느냐고 질문하자, 김태호 피디는 '가슴이 울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대답에서 나는 모든 '싸움의 동력'을 느꼈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싸움도 필요하지만, 정작 끈질기고 역동적인 싸움은 가슴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건 우리의 삶과 삶을 구성하는 관계 자체가 머리보다 가슴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책 사업이라는 해군기지 건설로 대대로 내려오던 삶의 거처와 공동체가 파괴될 처지에 놓이자 분연히 정부와 재벌에 맞서 싸우는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의 가슴도 울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그동안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집행유예 3년 상태이다. 강 회장뿐만 아니라 주민과 활동가 500명이 체포되고 연행되었으며, 순수한 강정 주민만도 200명이 넘는다고 하며, 이는 4·3사건 이래 최대의 인권 탄압이라고 하였다.

제주도 4·3사건을 담고 있는 영화 <지슬>(감독 오멸, '지슬'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이 올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기 위해 43톤의 폭약을 설치하고, 경찰 43기동대를 제주도로 파견하여 제주도민을 우롱하는 공권력은 과연 '4·3' 그때와 같은가 다른가?

'평화의 섬, 제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데, 그리고 구럼비에서 1km 떨어진 범섬 인근 바다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고, 구럼비 앞바다는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된 연산호 군락지이며, 강정천 물은 서귀포 시민 70%가 식수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들의 평화는 지금 위태롭다.

이번 투쟁을 계기로 강정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안보와 군사 논리에 반대하는 상징적인 단어가 되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강동균 회장은 다음과 같이 소박한 메시지를 전한다.

물질은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돼선 안 됩니다. 물질은 수단일 뿐이에요. 입향 10대조 할아버지께서 강정에 정착하신 후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왔어요. 강정에선 자정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웃이 다 잠들 시간이지만 떡 한 조각이라도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전통이 있어요. '출반'이라고 해요. 평화란 것이 큰 게 아닙니다. 술 한 잔 나눠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 작은 것을 배려하는 것 등 평화는 작은 것에서 옵니다. 큰 힘으로 이뤄지는 평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해군기지는 우리의 작은 평화를 깨고 있어요.(본문 47쪽)

'영혼의 살인'에 맞선 '생존자'의 용기

친아버지에게 9년간 성폭력을 당하고도 생존하여, 작년에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 2012)는 책을 통해, 고통의 시간들이 주는 의미를 찾으며 다시 살아난 은수연(가명)의 인터뷰 또한 가슴을 울린다.

은수연에게 '생존자'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성폭력을 '영혼의 살인'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마침 이 서평 기사를 쓰고 있는 4월 6일, <한겨레> 토요판에, '친족 성폭력 생존자 은수연씨 북콘서트' 르포 기사가 실렸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은수연씨는 인터뷰에서도 북콘서트에서도, 이 말을 줄곧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폭력을 통해 자신을 보지 말고, 자신을 통해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보기 원하였다.

은수연씨는 7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한 아버지가 출소하면 자신을 죽일 것 같아 지독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가, '마주쳐야겠구나' 결심하고 출소 1년 전에 아버지를 찾아가 면회한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이 망가뜨리려 해도 망가지지 않았고,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혀지지 않았다" 하고 외치며 두려움을 극복하였다고 했다. 은수연씨의 용기는 참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살인에 맞서 다시 '생존'할 수 있는 용기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인터뷰 후기에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인터뷰가 공개되자 <한겨레> 인터넷에는 불이 났다. 분노, 공감, 격려의 글이 무수히 올라왔다. SNS에서도 이 인터뷰가 매우 많이 회람되었다. 2013년 한국여성대회 조직위원회는 은수연 씨를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동법원이 있었으면..."

"국가 권력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이 말만큼 쌍용자동차 사태를 극명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해고노동자 김정우, 박호민, 고동민과 함께 한 인터뷰는 그동안 쌍용자동차 사태의 전모를 다시 일깨워주는데, 말미에 국회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냐는 저자의 질문에, 노동법원을 만들어달라는 고동민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노동문제를 자본의 논리로만, 민사법의 논리로만 푸는 법원과 판사만 있으니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서, 노동관련 재판에서 판사가 중립만 지켜도 감읍할 지경이니, 상식적인 판사만이라도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오늘날 한국의 노동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저자가 인터뷰 후기에서 든 미국의 사례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비추어보게 한다.

쌍용차 사태를 접하면서 미국 GM 노조 파업 사례가 떠올랐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훨씬 자본 중심적인 나라다. 그런 미국에서도 해고자 모두를 일단 준공무원으로 채용했다. 그 뒤 중앙 정부, 주 정부, 회사는 이들을 다른 관련 직종 직군에 채용해서 임금의 90%를 주고, 임금을 3분의 1씩 부담하고, 회사가 활성화되면 전원 복귀한다는 합의를 이루었다. 한국은 OECD 소속 국가 중 복지 수준이 바닥이다. 사회안전망이 약하므로 직장을 잃으면 바로 바닥으로 추락한다. 해고가 죽음을 낳는 구조인 것이다.(본문 85쪽)

'개념 가수' 이효리가 채식하는 이유

<조국의 만남>은 이어서 '세상의 불청객'이라고 이름 붙인 영화감독 김기덕, 야구감독 김성근, 그리고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를 인터뷰한다.

영화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을 통해 세상의 '잡놈'들에게 '너 자신을 믿어라'는 외침을 전하고,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을 통해 우리 사회의 '패자부활전'을 촉구하며,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실제 주인공인 이제석 대표를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도전하라, 전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또한 시인, 소설가, 만화가, 건축가, 가수 등, 각각의 방식대로 세상에 말 걸기를 하고, 자신이 가진 무기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고은, 조정래, 강풀, 승효상, 이효리다. 무척이나 유명하여 잘 알려진 이들은 모두 다 우리 시대의 길을 열어가는 예술가적 장인들이다. 예술과 삶이 유리되지 않고 서로 깊이 천착해서 정치와 사회 문제, 그리고 환경과 생태 운동을 몸으로 실천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육성으로 내뱉는 체험과 사유가 아름답다.

"자본주의가 판치고 광고문구가 세상을 도배해도 시는 모독당하지 않아."(고은)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조정래)
"사회적으로는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해요. 착한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믿어요."(강풀)
"우리말에 가장 좋은 말이 있는데, '짓다'입니다. 건축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입니다. 건축은 사유의 과정을 거친 창조입니다. 건축을 부동산으로 바라보는 것은 가장 저급한 이해지요."(승효상)

애완동물, 반려동물 보호 운동을 넘어 공장형 사육 반대 운동을 벌이며 채식을 하게 된, 소위 '개념 가수' 이효리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펼쳤다.

붉은 고기, 치즈, 우유는 먹지 않고, 물고기는 먹어요. 내가 동물을 정말 사랑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게 아니에요. 채식하는 이유는 소, 돼지, 닭 등이 키워지는 체제에 반대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고기를 너무 싸게 많이 먹으려 하니까 동물들은 점점 더 열악한 상황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어요. A4 용지 한 장 크기의 공간에 닭 두 마리씩 들어가 평생 사는 걸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해요.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가 어떻게 키워지고, 어떻게 죽임 당하는지 모르잖아요. 고기를 먹든 안 먹든, 현실을 알고 나서 선택해야 해요.(본문 222쪽)

진보진영의 미래를 들추어 보며

저자는 책의 마지막인 4부에 진보정치의 한 길로 오랜 동안 헌신해온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홍세화 진보신당 연대회의 재창당 준비위원회 상임대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전순옥 '참신나는옷' 대표이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인터뷰하며 진보 진영의 내일을 물었다. 나에게 그들의 존재는 오래되었으나 낡지 않은 집 같아서 든든하고 넉넉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제목인 '참여하면 변화가 온다는 믿음'이 가슴에 와닿았다.

박근혜 위원장을 인터뷰하고자 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였고, 그가 대통령이 된 지금, 저자는 도리어 <동아일보> 민동용 기자의 인터뷰이가 되어 저자 자신의 목소리로 박근혜 정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실어놓았다. 

저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진보진영이 단일화과정에서 잠시 내려놓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탁월하게 낚아채는 능력을 보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진보가 제기한 시대정신을 받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대선 때 공약으로만 보면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보이지만, 영국의 대처보다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대처는 비록 정책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했지만 측근과 인사관리는 탁월했으므로.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모양을 언급하며, 머리 모양도 바꿔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맞는 머리 모양은 더 이상 없을 것 같고, 박 대통령 자신도 다른 머리 스타일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조국의 만남> 조국 대담 및 정리, 쌤앤파커스, 2013. 3. 20. 1만5000원

조국의 만남 - 우리 시대 최전선을 만나다

조국 지음,
쌤앤파커스, 2013


#조국 #강동균 #은수연 #이효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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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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