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에 대한 총체적이고 균형잡힌 인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개정증보판)을 읽고

등록 2013.06.03 11:04수정 2013.06.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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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걸까? 지금 소외되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사회에서는 어깨를 펴고 당당해질 수 있을까?

2년 뒤인 2015년이면, 한국인은 현대사를 개척하기 시작한 해방된 때로부터 70년을 맞게 된다. 해방이후 한국사회는 수많은 변화의 고비에 직면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여왔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는 다시 한 번 변화의 기로에 직면해있다. 어느덧 완전하게 정착되었다고 여겨진 민주주의는 여전히 그 뿌리가 부실한 것이 드러났고, 성장지상주의적 산업화는 경제의 양적팽창에는 일단 성공했으나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보장해줄 수 없음이 드러났다.


이 현상을 흔히 양극화라 부르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중간층이건 하층민이건, 노인세대이건 젊은 세대이건 간에 저마다 팍팍한 삶에 지쳐있다. '늘어나는 빚더미와 불확실한 앞날.' 이게 현재 한국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오죽하면 '푸어'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일까.

이렇게 성장지상주의의 한계가 사회 저변으로 확산되자 지난 18대 대선에서는 수구 정당마저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 정치적으로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가 누적되면서, 미흡하지만 개헌문제가 정치공론화 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적 기운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다.

이렇듯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함이 확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뜻 지금 우리사회가 어디쯤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또 우리가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좌표가 무엇인지조차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사회 변화의 계기로 유력시된 18대 대선의 결과는 '새로운 좌표'를 향한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제민주화' 이슈는 어느새 골방으로 밀려났고, 개헌 논의 역시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졌다. '창조경제'와 같은 공허한 용어만 범람할 뿐이고, 더 나아가선 '4대 사회악'과 같은 퇴행적 구호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또 남북관계는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변화의 기로에 섰으나, 변화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황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현대사 인식을 요구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를 고민하며, 변화를 전망할 필요성이 높아져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정증보판으로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는 그 시의성이 만만찮다.


왜 아직 '사실'과 '진실'인가

이 책의 목표는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전달이다. 그런 맥락에서 무엇보다 현대사의 '진실'이 강조된다. 저자는 이를 서문에서 '진실의 빛'이라 표현한다. 내용의 서술방식이 자못 교과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그런 면과 맞닿아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목표는 자칫 대단히 진부하고 따분할 수 있다. '지식'='검색'으로 통하는 현대사회에서 이제 '지식의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뿐만 아니다. 과연 역사에 '사실'이 존재할까? 이런 물음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회의를 품은 지도 비교적 오래되었다. '사실'을 상대성을 중시하는 사조가 요즘 역사학계의 일반적 경향임을 고려하면, 이 책은 이런 사조에 뒤처져 있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저자가 왜 이러한 목표를 잡았을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우선 한국사회의 '현대사 무관심' 현상은 그 연원이 깊고 오래되었다. 역대 극우반공정권은 권력유지를 위해 무지와 왜곡을 조장했고, 자신들의 폭력성과 비행을 은폐했다. 이를 위해 현대사 연구는 금기의 영역에 가두어버렸다. 이런 속에서 당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리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사실 혹은 근거를 알지도, 또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현대사에 대해 일방적으로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현상이 만연하게 됐다.

이는 현대사가 독자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는 요인이기도 할 뿐더러 현재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세력의 역사조작 역시 이런 점을 무시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또 현대사 서술의 정확성과 객관성, 구체성의 결여는 현대사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무시한 채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재단이 만연한 문제점을 낳았다. 예컨대 경제성장을 박정희 개인의 공로로 돌리는 식의 논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말하는 '진실의 빛'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점은 한편으로 대단히 불행하고 서글픈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할 것이다.

균형잡힌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현대사

그간의 현대사 서술이 독재와 민주화운동의 구도, 혹은 성장신화의 일면에 치우쳐왔다면, 이 책은 양자를 고루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 문학, 영화, 가요, 교육 등의 다양한 소재와 더불어 농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문화운동 등의 사회운동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아울러 각 시기별 사회변화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종합적인 이해와 전체적 균형을 이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6, 70년대 경제성장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들어보자.

저자는 6, 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은 '국내외적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즉 50년대부터 이미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풍부한 산업예비군이 축적되어 있었고, 50년대 말에는 테크노크라트 역시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60년대 들어 미국의 세계전략이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를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한 탓에 한국의 국가주도 경제성장은 이에 많은 지원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미국의 공공차관, 일본으로부터 지급받은 청구권 자금, 베트남전쟁 및 중동 건설 붐으로 비교적 풍부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성장 추동의 주, 객관적 조건이었다. 또 사실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5.16쿠데타 세력은 초기에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정치자금 확보를 위한 4대 의혹사건 따위 부정을 저질러 60년대 중반까지 경제는 어려웠다. 또 유신정권의 중화학공업화 역시 과잉중복투자 등의 문제 등으로 70년대 후반 경제난을 가중시켜 결국 유신체제 몰락을 촉진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시기 경제성장은 짙은 '그림자' 역시 수반했다. 과도한 수출 의존 정책은 경제의 내포적 발전을 외면하게 했고, 이는 도농간, 공업과 농업 간의 격차를 야기했다. 또 과도한 해외의존은 미일 종속성을 심화시켰다. 무엇보다 이 시기 재벌들은 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받으며 경제적 지배력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판쳤다. 정부의 재벌 중심 경제정책은 중소 자산가의 몰락과 더불어 재벌의 비대화를 초래했다. 이는 농촌의 소외, 노동자의 소외를 초래했고, 새마을운동 역시 이농현상을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서 볼 수 있듯 저자는 역사적 현상의 주, 객관적 조건 및 빛과 그림자를 고루 포착해 서술함으로써 공정성과 객관성을 살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박정희 성장신화가 안고 있는 단순성과 허구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기조는 남북의 정부수립을 '분단정부' 수립으로 지칭한 것이나, 반탁투쟁 국면에서 조선공산당이 모스크바 3상 결정을 지지한 것은 민족감정을 무시한 것이었다는 평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현대사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주문한다. 뉴라이트 계열 극우세력이 극우반공정권의 진실을 은폐하며 현대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사실'은 '사실'대로 직필하되 해방 이후 역동적 사회변화에 주목함으로써, 그리고 자유와 민주, 인권의 가치를 향해 투쟁해온 한국인의 모습에서 한국현대사의 긍지와 자부심을 살려내고 있다.  그러면 현대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의 기반 위에 서 있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미래 구상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짧고도 짧은 21세기의 10여년을 가지고 살펴볼 때 젊은 세대가 안일함과 무기력에 빠져 유권자 의식을 망각하면 수구냉전 세력이 활개를 치게 되고 2002년 대선이나 2010년 지방자치 선거에서처럼 젊은이들이 적극 참여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중략) 한 걸음 더 나아가 젊은이들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중략) 한국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차 지점에 있고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 때문에 민족적 대통합을 이루어내면 정치 경제 면에서나 다른 면에서나 대단히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낼 수 있다. 왜 일본과 중국이 한반도가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는가 그 이유를 거듭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489~490쪽)

'참여'와 '통일을 향한 노력'을 통해 한국현대사가 보여준 역동성을 이어나가자는 의미로 들린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역동성에 기반해 "모든 인간이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일구어내야 한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판

서중석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3


#한국현대사 #미래 사회 #변화 #진실의 빛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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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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