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만 높은 키 덕분에 결혼식 때 난감했던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신부 키가 저보다 5만 원짜리 지폐의 길이만큼(가로가 아니라 세로입니다)이나 크거든요(제가 얼마나 능력 있는 남자인지 이제야 아시겠죠?).
sxc
지조만 높은 키 덕분에 결혼식 때 난감했습니다. 신부 키가 저보다 5만 원짜리 지폐의 길이만큼(가로가 아니라 세로입니다)이나 크거든요(제가 얼마나 능력 있는 남자인지 이제야 아시겠죠?).
신부 키가 크다 보니 웨딩 사진도 앉아서 찍어야 하고, 함께 서서 찍을라치면 주변에 있는 돌이라도 가져다 신부 뒤에 놓고(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말입니다),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 돌 위에서 흔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태연한 척 서서 멋진 포즈를 연출하기도 하고, 신랑을 배려한 신부는 결혼식 때 신발을 신지 못했답니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커야 하나요? 도대체 이런 관념은 누가 만든 겁니까? 남자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은 여자가 만든 걸까요? 키가 크면 힘도 셀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아니면 내세울 것 없이 키만 큰 남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창조한 아이디어인가요?
아무튼 저는 이 관념 때문에 괴롭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청춘들의 엉덩이만큼이나 열심히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때도 그렇고, 터질 듯한 김밥 속 같은 지하철에서도 그렇고, 심지어는 모델처럼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학생들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을 때도, 저는 작은 키 때문에 난감하기만 합니다.
"아빠는 왜 그렇게 키가 작아?"... 학생들과 포옹을 해도 애매~ 어제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다들 바쁠 텐데 나를 보겠다고 주말 점심 시간을 희생하고 나왔더라고요. 감동이었지요. 내가 연구년을 갔기 때문에 그동안 못 보았노라고, 무척 보고 싶었노라고(참, 얼마나 듣기 좋은 말입니까!). 어느 선생님은 나에게 어설픈 포옹을 주기도 했지요. 아, 그런데 이 순간에도 선생인 내가 학생을 품는 모습이 아니라, 키가 작은 내가 키가 큰 엄마에게 안기는 형상이 됩니다. 애매~합니다.
해나가 세 살 때는 나에게 "아빠는 왜 그렇게 키가 커?"라고 묻곤 했답니다. 세 살 해나에게 아마도 나는 키가 무척 큰 아빠였을 겁니다. 한참을 올려다 보아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던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보다 키가 큰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최근에 부쩍 커버린 자신의 키 덕분에 눈높이가 바뀌어서 그런지, 며칠 전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러대요, "아빠는 왜 그렇게 키가 작아?" 그래서 내가 꼼시럽게 대답했지요. "그래도 내가 너보다 크잖아!" 아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잇"하고 음흉한 '썩소'를 나에게 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