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콜텍 노동자의 대법원 앞 1인시위
최문선
임재춘의 농성일기 12회는 여러 차례 쓰고 고치다가 버렸다. 임재춘 조합원은 완성 직전에 내게 원고를 주는 대신, "그 글은 버리겠다, 다른 걸로 쓰겠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이 글 전에 그가 쓰고 지워버린 글이 있다. 그 글을 쓸 때 그는 두어 문장을 쓰고 머리를 북북 긁고, 다시 두어 문장을 쓰고 글씨 위를 볼펜으로 지지직 그었다. 특히나 "세월호의 선장이나 그 많은 직원들도 모두 비정규직이니 윗선이 강요하는 수지타산에 얽매어 승객의 안전을 뒷전으로 밀어내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자칫 그런 이야기가 세월호 직원들을 두둔하는 걸로 읽히진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안산의 많은 사람들은 소기업 하청 노동자들이고 그들의 자녀가 이번 참사의 희생양인데, 또 배를 몰았던 사람들 역시 비정규직이니 결국 약한 사람들만 당하고 책임자들은 잡지도 못한다"라고 써가는 대목에서 볼펜은 오래 멈춰 있었다. 끝을 맺지도, 잇지도 못했다.
우리는 글을 쓰는 걸 멈추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다. 임재춘 조합원은 자신의 딸들이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안산의 학생들도 어렵게 수학여행비를 마련했을 텐데…, 해준 것도 없이 그렇게 죽어 돌아온 자식의 모습을 부모들이 봐야 하다니…"라며 한탄을 했다.
또 다른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콜텍 공장 시절 그곳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비용절감 욕심에 안전복장도 갖추지 못한 채 일한 일, 잘릴까봐 부당한 일에 쉬쉬하던 것도 다 세월호와 같은 일이 아닐까…. 그러다 임재춘 조합원은 침묵 후에 일종의 자백 같은 말을 했다.
"나, 사실 세월호 이런 거 고민 별로 못했어. 뉴스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 저 아이들 부모는 어쩌나 그런 생각은 했지. 그런데 그게 나의 일이고, 내 일(정리해고)도 세월호와 같은 거라는 생각, 이제야 하는 거 같어. 공장에 있을 땐 그냥 먹고살기만 했지. 그게 그렇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정말 못했어.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쓰면 안 되는 거였나 봐. 생각을 안 하고 살아왔는걸." 그의 반성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런 말을 글로 옮기면 좋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원고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글이 완성되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극은 서로 나비효과처럼 얽혀 있는데, 정작 새로운 비극이 발생하면 어제의 비극, 일상의 비극, 임재춘 조합원이 겪었던 비극들은 이슈의 자리에서 밀려나곤 한다. 그리고 세상은 역설적으로 돌아간다.
세월호 시국에 뭔 1인시위냐고 따지는 사람을 만나거나, 해고자들 스스로가 할 말을 자제하는 상황들. 안전을 비용으로 여기는 경제논리나 미래의 경영상 위기가 현재의 수많은 해고자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법원의 판결은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 해고자들이 낸 해고 무효 확인 등 소송에서 법원은 사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그들은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콜트-콜텍 해고자들은 19일(월)부터 대법원 앞에서 무기한 노숙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법에서 명시한 정리해고의 요건이 사실상 백지화되는 사태가 법의 판결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며, 대법원의 신중한 심리를 촉구하는 행동이다. 그 상황에서 임재춘 조합원은 '콜트-콜텍이라는 작은 공장의 이야기 속에 세월호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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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 수학여행도 못 보내고... 해고자의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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