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연서면 고복리와 용암리에 걸쳐 자리한 고복저수지 주변으로 공원길이 났습니다. 길은 꽤 운치 있게 출발합니다.
김학현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옛 성현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길 낼 곳이 아닌 곳에 길을 낸 공원길을 걸으며 '길이 없으면 내면서 가라'는 외침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내가 내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이미 친절하게도 멋지게, 탄탄하게, 물에 빠지지 않도록 난간까지 만들어 놓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물려 사는 이 세대에게는 '비도불행(非道不行)'은 패배자의 외침이겠지요.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아침에 잠에서 깨고,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외침이 휘감는 마을에서 자라났고, 국민교육헌장을 앵무새처럼 외우며 큰 나로선, 이런 말하면 안 어울린다는 거 압니다. 그러나 그간의 경제성장이 올바른 성장이었는지 말해야 하는 당위성 앞에 서게 됩니다.
없는 길을 닦는 게 성장이 아니라고, 경제가 성장했다고 잘사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새로 난데없이 생긴 길 위에서 뭐 하는 거지요? 참 묘합니다. 새로 낸 길 위를 걸으며 '비도불행(非道不行)'을 이야기하다니요. 당위성은 곧 비굴함이 됩니다. 길 위에서 난 인간의 교묘한 이중성을 발견하게 되네요. 이렇게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른, 추스르기 힘든 삶을 엮어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내놓은 길은 왜 이리도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인부들) 이 길을 내느라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요? 그 길을 이렇게 쉽게 걷는 난 누굴까요? 우린 이렇게 누군가에 의지하고 기대고 살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을 하죠. 참 감사합니다. 그 누군가에게. 길 아닌 곳에 길을 낸 내 앞의 그 누군가에게.
그가 수고했기에 곧은길을 갑니다. 그가 수고했기에 운치 있는 길을 걷습니다. 그가 수고해 주었기에 산들바람 일렁이는 호숫가를 돕니다. 그가 없었다면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나도 이 길 위에 없습니다. 그가 알든 모르든 난 그가 먼저 내민 손을 잡고 있는 거지요. 그 손이 마냥 따스하기만 한 건 아마도 따사로운 물빛, 싱그러운 바람소리, 푸른 나뭇잎들의 노래, 나뭇가지 사이로 조로록조로록 넘나드는 새들의 군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안전하게 만든 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