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서 용혜인 씨
박종만
- 침묵행진을 처음 제안하셨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세월호 사고를 처음 접하고 나서는, 사람도 너무 많이 실종되었고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보도만 연일 쏟아내면서 그냥 슬프고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일부러 기사를 보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으로 포털사이트에도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4월 19일 시험기간이어서 밤에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실종자 가족들을 경찰버스 10대를 동원해서 막아서는 것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해야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그 다음 목요일에 학교에 대자보를 써서 붙였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친구들 몇 명과 침묵행진을 하기로 했고, 29일에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제안했고 30일에 첫 번째 침묵행진을 했습니다."
- 안산에서 초중고를 다녔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을 것 같아요."안산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단원구에 살고 있거나 오래 사신 분들은 말 그대로 '한집 걸러 한집'이 이번 사고로 가족이나 친척을 잃었습니다. 단원구에 살지 않아 남의 일이지만, 이러저러한 관계들로 얽혀있어서 남의 일이라고 모른척하고 관심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주변에 이번 사고로 가족들을,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학교 동창의 동생이 이번 사고로 희생되었다는 소식, 제 동생의 옛 은사님들이 이번 사고로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침묵행진을 제안했는데, 특별히 그곳에 올린 이유가 있나요."세월호 사고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가 많은 사람들의 대자보처럼 이용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당시 사고가 발생한 후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정부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이 사고와 무관하게 사고 바깥에 있는 인물처럼 행동했고, 또 '책임자'가 아닌 '단죄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청와대에 적기도 했습니다."
- 청와대 홈페이지는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고 알아요. 그래서 따라오는 피해가 두려웠을 것 같은데."사실 그 글로 인해 청와대나 국가권력에서 탄압이 들어오는 것이 두렵다기 보다는, 인터넷 상에서 '신상이 털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실제로 전화번호를 적을까 말까 20분이상 고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신상이 털린다거나, 그로 인한 욕설 문자, 협박 전화 등은 거의 오지 않았고 응원과 지지의 문자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 주위 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부모님은 '너의 생각이니 말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시다보니 걱정도 많이 하십니다. 동생은 별 말은 하지 않는데 묵묵히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일인데, 학교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잊지 말자는 것, 추모하자는 게 선동이라면 선동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