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인물평전만으로 블로그 방문자 700만을 돌파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왼쪽)을 남양주시 덕소의 아파트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른쪽은 김병기 10만인클럽 본부장.
박종근
내 글을 무단 게재하고 복사하는 사람들, 고맙다이날 시사적인 질문과 답변은 여기까지다. 다음은 평전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 지난 9월 28일 블로그 방문자수가 700만을 돌파했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평전에 대한 인기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우리 언론이나 학자들은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자기 잣대로, 특히 보수 계열 인사들은 독립운동가나 민주통일 인사, 노동운동가를 왜곡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겠다는 생각에서 평전을 쓰기 시작했는데, 젊은 층에서도 이런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다. 지역 강연을 가면 20~30대 청년들이 평전을 봤다고 인사를 한다."
- 반응을 보인 사람 중에 인상 깊었던 분이 계시다면? "작년 10월 25일 홍범도 장군 서거 70주기 때 카자흐스탄에 갔다. 해방 후 처음으로 추모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홍범도 평전을 헌정했다.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이 몇 만 명 산다. 그들을 대상으로 고려신문을 내는 분을 만났는데,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홍범도 평전을 베껴서 내고 있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사장에게는 사전 동의를 구했으면 좋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반가웠다.
미국에서도 몇 개 한인신문에서 연재 의사를 밝혀서 동의해줬다. 또 전주에 계신 한 교장선생님은 매일 복사해서 자제와 학생들에게 읽히려고 한다고 양해를 구해서 동의해줬다."
-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6년 동안 19명의 평전을 쓰셨는데요, 그 분 중 가장 닮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지금까지 쓴 인물평전은 모두 24권이다. 감히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을 닮고 싶었다. 그의 평전도 쓰고 전집도 만들었다. 신채호 선생은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을 하셨고 나도 그랬다. 신 선생이 성균관대 박사인데 나는 그곳서 강의를 했다. 신 선생은 국란 극복의 대안으로 영웅전을 많이 썼다. 나는 독립운동가 평전을 쓰고 있다. 그분은 몸이 작고 술을 한 잔 만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말이 어눌했는데, 나도 비슷하다. 아니, 비슷했다고 이야기하면 큰일 난다.(웃음)"
- 평전은 쓰는 사람의 주관에 매몰될 수 있고, 시대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사실을 진실하게 쓰는 게 역사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친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일반 국민 수준에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후하다. 사실조차도 왜곡하는 어용 사학자나 친일 후예들 때문이다. 반면 일제에 저항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에게는 냉혹하다. 나는 사실을 진실하게 쓰면서 주관은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 그래도 주관의 함정을 빠져나오기 어렵지는 않나?"가급적이면 당대의 1차 사료를 원칙으로 한다.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해놓은 신문이나 잡지도 본다. 친일 성향이나 친독재 언론은 인용하지 않는다."
- 평전 인물을 선정할 때의 기준이 있다면? "독립운동가중에서는 자기 철학과 행동이 일치하고 치열하게 항일투쟁 전개했던 분들, 나름대로의 진영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정해서 평전으로 쓴다. 위당 정인보 선생처럼 국내에 있으면서 훼절하지 않고 민족 얼을 찾으려고 국민 계몽에 앞장선 분들을 중심으로 썼다."
시인 김남주의 '노래'를 듣고 싶다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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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 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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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김남주 시인 평전을 쓰고 계신데, 어떤 분인가?"시대와 마찰하고 불화했기에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70~80년대에 깨어있는 청년 노동자들은 그에게 빚지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옥중에서도, 옥 밖에서도 거침없는 발언들을 토해냈고 그 목소리가 유인물로 뿌려졌다.
평전을 쓰면서 자료와 증언을 봤는데 사르트르가 말한 지식인으로서의 엄격성과 정직성을 갖춘 보기 드문 지식인이었다. 광기와 공포 속에서도 정의로운 시어들을 거침없이 쓴 해방 후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자 서정시인이다."
- 김남주의 시 중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조국은 하나다>라는 시다. 20세기 전반기에는 독립 운동가들이 나라 되찾으려고 투쟁했고 20세기 후반기에는 경제건설과 민주화에 기여했다. 21세기 초반기에 젊은 세대들은 과제라면 조국통일인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 김남주 시인이 살아있다면 박근혜 시대에 어떤 시를 쓸 것 같은가? "민중을 외면하고 부자만 챙겨주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 극렬한 시어를 동원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인 아버지, 유신에 저항했던 것처럼 행동으로 나섰을 것이다. 가령 전봉준 녹두장군에 대한 <노래>라는 시가 있다. 실제 노래로 만들어서 저항의 길거리에서 불렸던 시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와서 민주화가 후퇴하고 노동자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남북 대화도 단절되고 사회 정의가 뒷걸음질치고 있다. 민족정기는 친일세력에 역습당하고 있다. 녹두장군이라고 불린 전봉준 장군이 추구했던 이상은 민초들이 주인 되는 국가였는데, 김남주는 우리 모두가 그런 녹두꽃이 되자고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