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동 한 임대아파트. 명랑마주꾼과 주민들이 먼저 간 주민들을 위해 추모문화제를 열고 있다.
명랑컴퍼니
모르는 사람 집의 초인종을 누르기도 하고, 함께 모여 뜨개질도 하고 텃밭도 가꾸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마주이야기>라는 잡지로 엮어내기도 했다. '장보기를 도와드릴 수 있고', '전구도 갈아드리고요', '목욕탕에서 등 밀어드려요', '말벗 해드려요', '집 청소 도와드려요' 청년 쿠폰을 만들어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혔다.
겨울에는 먼저 떠나간 이들을 위한 명랑추모제가 아파트 공터에서 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2년 10명이었던 아파트 주민 자살자 수가 2013년 2명으로 줄어들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7명의 청년혁신활동가와, 20여 명의 마주꾼들. 30명이 안 되는 청년들이 감당하기에 아파트는 너무 넓고 또 깊었다. 1700세대, 4000여 명. 뭔가 '작당'을 하려면 홍보전단지를 붙이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관계 맺기가 일상에 스며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확실히 밖에서 (행사를) 하는 동안은 나오시고는 하는데, 저희가 기대한 대로, 예를 들어 뜨개질 하나를 밖에서 배웠으면, 그걸 일상으로 가져가서 누군가의 집에서 모여서 함께 뜨개질을 하는 쪽으로는 잘 안 됐어요. 아쉬웠어요."(우영)죽어서야 만난 '아저씨'들... 가족의 역할은 무엇일까'고립사'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2013년 가을, 이 아파트 808호 아저씨의 방을 청소하면서부터였다.
"한번은 혼자 살던 아저씨가 돌아가셨는데, 아저씨 장례 치르고 나서 가족들이 방 정리를 안 하고 통장 아주머니한테 부탁하고 간 거예요. 우리는 아저씨 방 청소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통장 아주머니가 혼자 힘들어 하시니까 도와드려야지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집의 상황이… 아저씨가 뇌병변 장애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혼자 몸 컨트롤이 안 되니까 집 상황도 안 좋고 냄새도 많이 나고….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 하고 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냄새도 많이 생각나고…, 그때 제가 구로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가면 마음이 많이 버거웠어요."통장 아줌마, 경비 아저씨, 이웃의 유품을 수거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폐지 할머니. 왜 그곳에 아저씨의 가족은 아무도 없었던 걸까. 아저씨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옆집 부부는 몸이 아파 평소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단다. 어느날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냄새로 알게 된 이웃의 죽음. 부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808호>란 제목의 짧은 다큐로 만들었다.
'북적대는 서울 도시 한복판에서 인연이 끊기는 일, 혼자 살다 죽는 일은 왜 이리 허다할까요. 관계란 무엇일까요. 궁금했습니다. 그 후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고립사를 둘러싼 이웃을 만나고, 만나다 만나다 김경한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명랑컴퍼니 소개글 중 경한 아저씨의 장례 이후 청년들은 또 다른 아저씨의 고립사 장례에 함께하게 된다. 발인하던 날, 고인의 누나와 조카들이 왔다. 20년 만에 삼촌을 만났다는 조카는 삼촌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가족들은 아저씨의 시신을 유택동산에 뿌렸다. 어떠한 비용도 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경한 아저씨, 안녕>에서 유택동산에 묻히는 시신들에 대해 영구차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갖다버리는 거지, 여기는. 무슨 말인지 알지? 가면 개나 소나 다 쏟아 붓는 거야. 그럼 수십 만 사람이 한데 섞이는 거야. 귀찮고, 두렵고. 여기다 쏟아 붓고 가버리는 거야." 5년째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는 우영은 말했다.
"가족이 보편적으로, 절대적인 안전망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잖아요. 꼭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나중에) 너를 부양할 수 있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결혼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해 보니) 결국은 (부모님이) 사시면서 보셨던 다른 어른들의 혼자된 모습들.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끝에 있는 단편들을 보고 나니까 가족이 절대적으로 부양을 해야 하고, 그것을 못했을 때 굉장히 잘못한 것으로 주변에서 보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열매는 "물론 사회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에는 '지상전'을 했다면, 2014년에는 아파트에서 한 발짝 떨어져 '공중전'을 해보기로 했다.
임대아파트 안 청년들을 아파트 밖으로 불러냈다. 함께 영상을 만드는 '명랑여행자학교'를 진행했다. 청년들의 고민을 영상에 담았다. '청년 쿠폰'은 '명랑수리공'으로 발전됐다. 마포구에 사는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방충망을 수리하고, 물이 새는 샤워기도 고치고, '뽁뽁이'도 붙였다.
2014년 한 해, 고립사를 공부하고 취재하면서 <808호>, <경한아저씨, 안녕> 이렇게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마포구 성미산 마을극장, 경기도 광명의 한 교회 등에서 <경한아저씨, 안녕>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경한 아저씨'들인 노숙인들과도 함께 영화를 볼 예정이다.
청년들은 틀에 박힌 장례 문화를 바꾸고 싶은 포부도 갖고 있다. 생전 고인의 삶을 구술이나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해서 빈소를 전시회 형식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다. 마을 단위로 이러한 추모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
"장례 자체가 표준화된 서비스로 제공이 되다 보니까, 그 안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고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여력이나 여백이 전혀 없는 상태예요. 각자가 고인과 맺어왔던 관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사실 누군가 죽는다는 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게,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잖아요. 예전에는 관혼상제가 공동체의 경험이었는데 도시에서는 그런 것들이 말소된 것 같아요. 그런 걸 고유하게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마을 공동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도리)" '고립'은 어쩌면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시 청년혁신활동가 지원사업이 끝나면서 명랑컴퍼니는 인건비를 더 이상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 이런 저런 사업비를 받고 있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걸어간다. 뚜벅뚜벅, 명랑하게. 인터뷰가 끝나자, 네 청년은 "아르바이트 하러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9
공유하기
모르는 아저씨 화장터 동행... '요상한 아이들'의 정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