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옥중편지 여섯 번째
황선
이 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 검사는 공소장에 이 시 중 마지막 연 "그래서 나의 육아일기는 또 다시/ 국가보안법 철폐!/ 국가보안법 철페!/ 국가보안법 철폐!/ 입니다"만을 뽑아 적시하는 한편, <국가보안법을 만드신 분들>이라는 또 한 편의 시와 연계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가운데,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사람들을 친일파, 민족배반자, 반공·친미파로 극렬 매도하는 등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며 이를 선동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로써 피고인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제작·판매하였다.1948년 단독선거 강행에 이어 남북 각각에서 정부가 수립되자, 이대로 분단이 고착화되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의 근심은 깊어갔다. 그러나 단독선거를 강행한 집권세력은 이런 국민의 우려가 달갑지 않았다. 분단고착화를 우려하는 자체로 반정부적이고 내란음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1948년 11월 9일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는 본회의에 '국가보안법' 제정안을 제출한다. 아직 '형법'도 마련하지 못한 시기였다. 숱한 반발을 진압하고 우격다짐 식으로 단선단정(단독선거 단독정부)을 강행했으나 국민들의 열망은 여전히 친일청산이라는 과거사 문제에 닿아 있었다.
해방된 다음 달로 점령주둔을 시작한 미군정에서 친일파의 재산이며 법적지위까지도 보장하는 한편, 심지어 일제시대 조선인 통제를 위한 정치집회 금지법, 선동문서 통제령, 치안유지법 등도 미군정 내내 유지했다.
그로써 '해방'이 곧 '자주독립'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라는 표시를 노골적으로 해왔음에도 '무식한' 조선인들은 포기를 모르고 친일의 기반 위에 선 이승만 정권에게조차 친일청산을 끝없이 요구한 것이다. 여론은 그래도 무서운 것이라, 내키지 않는 속에서도 1948년 10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설치되고야 말았다.
제헌헌법과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까지 지닌 특위의 출현은 친일의 과거를 친미와 반공의 가면으로 덮은 채 기득권을 유지하던 인사들에겐 몹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반미특위가 친일청산이라는 민심을 업고 혼란의 와중에도 태동할 수 있었다면, 이런 민심을 밟기 위해 일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칼이 '국가보안법'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들 등교시간이면 감옥에서 '108배' 당시 이 법안의 제출의도가 얼마나 뻔하고 노골적이었던지 <조선일보>조차 1948년 11월 14일자 사설에서 국가보안법을 두고 '크게 우려할 악법',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광범위하게 정치범 내지 사상범을 만들어 낼 성질의 법안인 점'에서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또한 '형법과의 중복, 일제하 치안유지법처럼 다수의 사상범을 만들어낼 우려, 자의적 해석에 의한 오·남용 가능성'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우려했다.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이 법의 통과를 밀어붙였을 당시 법무부 장관도 국회에서 법률로서의 부족점과 여론의 불리함을 인식하고 "평화 시기의 법안은 아니며, 비상시기의 비상조처"라는 말로 이 법이 한시적인 법임을 인정했다. 1953년에는 여전한 비상시기였음에도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은 '형법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의 체벌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고 밝히며 보안법 폐지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이후, 70년이 다 되도록 국가보안법은 여전하다. 정통성에 자격지심이 심한 정권일수록 이 법을 더 많이 휘두르며, 자신의 무능과 부패를 국가안보라는 말 뒤로 숨겨왔다. 국가보안법이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잣대이긴 했으나, 오히려 명확하게 반대로 위법의 자리에 애국, 정의, 양심, 민주, 인권을 세우는 특이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 법은 나라 안팎에서 반인권 악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으로 해마다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검사가 문제 삼고 있는 또 하나의 시 <국가보안법을 만드신 분들> 전문을 보자. 대체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보안법 제작자 중 그것이 애국인 줄 알고 했다는 분들이 몇몇 있었다 한들, 이 시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주장만큼은 100% 망상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만드신 분들 일제 36년간 꿈에라도조선을 조국으로 여겨본 적 없으신 분 백년 후엔들 조선의 독립은 없어야 할 일그거야말로홍역 마마보다 두려웠을 분 혹시라도 독도는 우리 땅아우성 소리 한 번 들으면독도가 다 무어냐내선일체 내선일체, 호통을 칠교육 너무 잘 받으신 분 무질서한 야만조선의 안보와 치안유지는제국의 치안유지법이 다했노라고그 법이 잡아가둔 독립군은 모조리 불온한 공산비적이요산적이요 화적떼라고무식한 말씀 자랑처럼 하시던 분 친일배족의 훈장이대를 이어 빛날 수 있게구사일생 구원해 주신 아메리카와 이승만 각하가두고두고 고마우신 분 보안법 덕분에 어리석은 백성들속여먹고 등쳐먹고 여차하면 북망산골짜기로밀어 넣어도 일 없고얼씨구 절씨구 또 한 세월 영화로다48년 12월 1일이 광복보다 좋았을 분 생각할수록 몹쓸 분괘씸한 인종역사의 쓰레기들(2004. 9. 18.)아버지를 국가보안법에 뺏긴 채 영유아기를 보내야 했던 딸들은 이 3월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이 되었다. 그 딸들의 새 학년 책가방을 챙겨주지도, 머리를 빗겨주지도 못한 채, 이 어미는 매일 아침 아이들 등교시간이 되면 미안함과 간절함을 담아 감옥에서 108배를 한다. 아직도 나의 육아일기는 '국가보안법 철폐!'이다.
2015. 3. 15.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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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협'한 육아일기... 엄마는 감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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