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인터넷에 올라온 10대 성매매 소녀의 글(십대여성인권센터 제공).
김재용
지난 2013년 어느 날, 한 포털 사이트 묻고 답하는 란에 글이 한 건 올라왔다.
'인터넷에 이런 글 올리기 민망하지만…. 인터넷으로 한 남자를 만나서 모텔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2만 원을 더 줄 테니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에는 차마 지면에는 옮길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16세라고 밝힌 글쓴이는 성 구매자가 자신을 폭행, 폭언하고 감금, 협박, 성기상해, 술 먹이기 등을 해 몰래 도망을 나왔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 글을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사이버또래상담원(아래 사또)이 발견했다.
처음 이 글을 본 사또는 '인터넷 괴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글쓴이와 접촉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니, "가해자를 감옥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해자는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당시 조 대표도 이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피해 소녀를 상대로 심층 상담을 했다. 상담 결과, 피해 소녀가 이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겼고, 자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피해 소녀는 그 가해자가 감옥에 가야 마음이 놓이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십대여성인권센터가 발견하지 않았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다.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누구도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사또들이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성매매 소녀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 상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십대 아이들은 특징이 있는데, 한 번 만났을 때 상담을 다 해야 해요. 내일이 없어요. 잠수타면 그만이에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기 때문이죠." 조진경 대표는 피해 소녀가 거주하는 지역의 경찰서 성폭력전담팀과 함께 피해 소녀를 만났다. 아이가 과연 나올까, 불안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이런 일을 당한 게 사실인지 지어낸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살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본 조진경 대표는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정황을 따져 보니 거짓일 이유가 없었다.
피해 소녀 만난 경찰, 성매매 사건이라며 조사 거부피해 사실을 확신한 조 대표는 아이와 함께 경찰서 성폭력전담팀을 찾았다. 피해 소녀의 진술을 들은 경찰은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가해자와 피해 소녀가 성매매로 만났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서에 가기 전 아이의 고발 내용을 미리 제출하기도 했어요. 이건 거의 '성고문'이었습니다, 감금 폭행 다 있고. 그런데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서 조사를 못한다는 거였어요. 그냥 단순 성매매 사건이라는 거예요." 조진경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시작부터 막혔다. 조 대표는 경찰에 강하게 호소했고, 겨우 아이가 진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동성폭력의 경우, 국선 변호사 입회 하에 여경이 1차 영상진술을 받는다. 그 자리에 조진경 대표도 참석했다.
"근데 글에 나와 있는 것뿐만이 아니더라고요. 듣고 있기엔 너무 역겨운 사실이 많았습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어요. 저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 일을 했는데, 그 사건은 가해 정도가 상당히 심한 경우였습니다. 거의 연쇄살인범의 성고문 수준이었고 그게 16세 아이를 상대로 가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진술을 들은 경찰은 성폭력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진술 영상을 강력계 형사팀에 넘긴다고 했다. 조진경 대표는 이제 수사가 진행이 되는구나 생각하고 최대한 협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 대표는 몇 개월 후까지 피해 소녀를 데리고 경찰서에 세 번 정도 동행을 했다.
조 대표는 피해 소녀를 감금한 가해자의 집으로 가, 피해 소녀를 묶었던 혁대 등의 증거물들을 확보하기도 했다.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 경찰은 '가해자가 이제 구속이 될 테니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 소녀 대신 십대여성인권센터 상담원들이 나와서 진술해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조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며칠 후 피해 소녀를 통해서 가해자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분명히 경찰로부터 가해자가 구속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도망갔다는 건지 조 대표는 의아했다. 확인을 하려고 경찰서에 전화를 했더니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경찰은 "당신들한테 수사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수사를 지원하고 수사 과정에 참여했는데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니요? 흉악범이 돌아다니고 있고, 또 아이에게 보복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 대표는 너무 화가 나서 국민신문고에 진정서를 냈다. 빨리 가해자를 잡고 재발방지책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정서를 낸 후 얼마 후에 경찰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조 대표는 경찰에게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궁금해서 그래요. 우리는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찰이 설명했다. "우리는 영상진술서를 토대로 영장은 청구했어요. 그런데 성폭력 전담 검사가 영장이 안 나올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 이유가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아이가 SM플레이(가학적 성행위)를 조건으로 가해자와 만남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어떤 조건이었는지 먼저 확인을 하라며 영장을 안 내줬다는 거다.
16세 소녀가 자발적으로 가학적 성행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