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포럼 대표. 1월 1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소희
지난겨울 벌어진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언론의 종북몰이와 사제폭발물 테러, 압수수색, 신은미 선생님의 강제출국 그리고 이어진 저의 구속 등을 돌아보면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약 70년 전 1945년 12월 있었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오보사건입니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갓 마무리된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해 '소련이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미국은 조선의 즉시독립을 주장'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5년 신탁통치 후 5년 더 연장하는 안을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모스크바 3상회의가 마무리 될 때까지 길게는 40년 신탁통치 안까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상관없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오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점령주둔을 시작한 미군정도 이 오보를 방치·조장했습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오보로 인해 우리 민족은 좌우합작, 대단결, 자주독립공화국 건설의 꿈을 유실하게 되었고 불필요한 이념대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허위사실을 두고 찬탁-반탁 논쟁에 빠져 그 아까운 시간 분단고착화를 되돌리지 못한 것입니다.
2014년 11월 21일, 그 이틀 전에 있었던 신은미 선생님과 저의 토크쇼를 두고 <조선일보>의 종편인 TV조선과 <동아일보>의 종편인 채널A가 그 자리에서 나오지도 않았던 '지상낙원'이니 '3대세습 찬양'이란 어휘까지 만들어가며 매시간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언론의 허위보도를 그대로 믿은 10대 청소년은 성당에서 진행 중이던 평화로운 토크쇼 자리에 사제폭발물을 가져와 '지상낙원이라 하고 다닌다'며 폭발물을 투척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두 분의 참석자가 화상을 입는 사고까지 벌어졌습니다.
민주국가 법치국가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제폭발물 테러까지 벌어졌음에도 소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테러 피해자인 저는 그 직후 아직 성당 근처 모처에 피신한 채 떠나지도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과 할머니밖에 없는 서울의 집이 압수수색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두 딸의 어머니인 저는 초등학생 어린 두 딸의 새 학년 등교는 챙기지도 못하고 이렇게 구속되어 있습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거대언론의 허위왜곡과장보도가 저나 테러범의 경우처럼 개인의 삶과 일가족의 일상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꼬일 대로 꼬인 민족의 운명을 더 늪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1945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오늘 그와 꼭 닮은 몇몇 언론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보수단체의 고발로 이어진 현대판 마녀사냥의 전리품을 위해 공안당국은 10년 전에 파기 환송심까지 끝내고 사면복권까지 된 사건의 수사자료까지 언론에 악의적으로 유포해가며 저의 구속을 만들었습니다.
토크쇼만으로 표현의 자유 논란도 있고, 문제가 됐던 발언들이 허위사실이었다는 것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지자 토크쇼가 아니더라도 구속사유는 충분하다며, 지난 십수 년간 저의 삶을 관리한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창고대방출' 했습니다. 지은 지 10년 넘는 시도, 6년에 걸쳐 수백 회 진행한 방송도, 1년에 한두 차례 참석했던 행사도 당시에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들을 오늘 모두 불법이라 합니다. 전형적인 '청부수사'요, 고무줄 잣대에 의한 '창고대방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도적인 오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모종의 배후와 기획한 여론몰이 즉, 언론플레이. 이런 '언론플레이'와 '청부수사'야말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잘 알면서 행한 '여론공작'이자 민주주의 파괴 '중대범죄'입니다.
70년 전 최악의 오보사건... 변함없는 <조선>과 <동아>공소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혐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 공소장은 으레 실제보다 과장되고 공포스럽기 일쑤지만 이번 공소장은 유독 발췌, 편집의 기술이 돋보이는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장 내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을 제대로 살피고 발췌, 편집의 의도까지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이 사건과의 관계 유무조차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든 기획문서입니다.
특히, 이적동조의 경우 상당 부분을 제가 작성하지도, 읽지도, 본 적도, 소지한 적조차 없는 문서 내용으로 채움으로써 언뜻 공소장만을 두고 보면 이적동조가 아니라 반국가단체 구성이라도 한 듯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2000년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정상 간 합의문이 발표되었고, 합의 내용에 근거한 다양한 활동과 연대사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서 지속된 대북적대정책과 교류사업의 단절로 그런 활동이 매우 낯선 주장과 풍경처럼 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현 정권의 눈높이로 보면 두 차례 정상회담도 2000년, 2007년 발표된 남북정상 합의문 역시 이적동조나 이적표현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시비나, NLL 포기 발언 시비 등이 계속해서 기획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북관계 발전상 극히 자연스러웠던 일들이, 이 분야만큼은 상당히 퇴보한 정권의 눈높이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범법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정권의 수준이 달라질 때마다 사법부의 법해석이나 법적용도 현격히 달라진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고 행동의 준거를 삼겠습니까. 국가보안법의 무한한 남용을 가능하게 하는 '이적동조죄'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검사는 2002∼2008년에 걸쳐 제가 쓴 시를 이적표현물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쓴 시들이 시를 쓸 무렵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을 반영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은 참여시인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시들이 쓰이는 사회라야 민주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한 번도 저의 싯구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작가가 '용비어천가'만 쓰고 부르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시와 관련해서 공소장에 인용한 부분마다 상당한 오역이 있습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문제 삼은 시마다 시의 배경과 비유에 대해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진행한 방송 또한 방송의도와 해당 방송시기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에서 핵심이슈와 전문가 의견 등을 재판과정에서 분석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답보상태의 6자회담,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전전협정, 북미 간 비핵화 공방, 서해문제와 10·4 선언, 방위비분담금 전용문제 등,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에도 기존의 방송이나 우리사회가 애써 외면해 온 문제들에 대해 내실 있게, 특히 사실에 근거하여 다뤄왔다고 자부합니다.